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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Jun 03. 2024

오스트리아에서 케이블카타기

그리고 고사우와 할슈타트

 시골의 불빛 없는 밤은 얼마나 깜깜한가. 헤드라이터 불빛하나에 의지해 달려온 길은 주변 10미터 이상을 볼 수 없이 어두웠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밖을 보자 푸른 초원과 저 멀리 보이는 산 꼭대기에 하얗게 쌓인 눈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오스트리아 시골이구나.


 창을 열고 오스트리아 시골 풍경에 한껏 감탄하는 중 바깥이 분주하다. 산책 겸 내려가보았더니 숙소 바로 앞에 각종 치즈와 소시지를 파는 트럭이 와있다. 트럭 옆에선 채소를 팔고, 작은 길 건너엔 빵집이 있다.

아이들을 불러 함께 내려가 장을 봤다.


 어젯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못 만난 주인아주머니를 드디어 만났다. 웰컴! 숙소 앞에 주말마다 이렇게 장이 서고 마트는 6시면 문을 닫고 등등 친절하게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시곤 손에 들고 계시던 표를 건네주신다. 케이블카 할인 표인데 꼭 여기 가 보라고. 케이블카는 인스브루크에서 탈 계획이라 오늘은 계획에 없었으나 주인아주머니가 건네는 케이블카 할인표에 우리는 츠뷀퍼호른 케이블카 일정을 추가했다. 바깥 날씨가 황사 때문에 아쉬워서 어쩌냐고 이야기하시길래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안개 낀 듯 살짝 뿌옇게 보이긴 한다.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바람이 일으킨 황사라니 유럽에도 황사가 있구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침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장크트길겐으로 차를 몰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아름다운 볼프강 호수가 보인다. 호수옆에 작은 마을과 함께 어울려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다. 정상에 올라가니 여러 하이킹 코스가 보였다. 우리는 산능선을 따라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오솔길 옆 경사면 높은 곳에 위치한 소나무숲에서 엄청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걸어가니 뻥 뚫린 능선이 나왔는데 사방의 풍경에 감탄도 잠시 바람이 어마어마하다. 두 발에 최대한의 힘을 주고 있지 않으면 발을 떼고 걸어가다가 균형을 잃으면 날아갈 거 같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바람주머니 풍향계가 사정없이 펄럭이고 옆 표지판에 순간 시속 55km의 바람이 불 수 있다고 적혀있다.

 

 위잉~부웅~ 불어오는 바람에 언제 적 낙엽인지 모를 바싹 마른 갈색낙엽이 마치 메뚜기떼가 날아다니듯 공중에서 군무를 춘다. 둘째 아이 친구 Y가 춤추는 낙엽을 배경으로 K POP을 추고 있다. Y는 이를 닦다가도 신발을 신으면서도 춤을 추는 친구다. 들은 바로는 거울이 눈앞에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춤을 춘다고 한다. 이 Y가 낙엽의 군무에 영감을 받았는지 낙엽들을 백댄서로 두고 춤을 춘다. 이모 저 멋지죠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 너 멋지다. 사사사사삭 슈웅 촤아. 타탁. 아얏. 별안간 낙엽 두 개가 내 얼굴을 차례로 때리고 지나갔다. 저기서도 누군가 낙엽이 얼굴을 때렸다며 불평이다. 우리는 낙엽의 군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 낙엽  소용돌이 속 정신없는 와중에 저기서 형님이 아주 즐거운 얼굴로 외치신다.


 "저기 꼭대기에 가볼 사람."

 "저요. 저요."


 형님네 애들이 익숙한 듯 따라나선다. 의욕만 가득한 우리 애들도 따라나섰다. 겁이 많은 나는 이 바람을 이겨내고 저 양옆이 뚫린 뾰족한 꼭대기를 따라 걸어갈 자신이 없다. 역시나 겁이 많은 둘째는 아이들이 다 간다니 가고 싶어 해서 남편이 따라나섰다. 부웅부웅 귓가를 때리는 바람 소리를 뒤로하고 형님이 선두를 서고 아이들이 능선을 따라 나아간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쏠리고 잠바가 풍선처럼 한쪽이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뒤에서 보니 앞서가는 아이들 셋이 네발로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두 손으로 앞에 있는 돌을 잡아가며 걸어가고 있었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우리 집 둘째는 결국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에 앉아 바람에 맞서는 것 초차도 힘들어 보였다. 아이들이 날아갈까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언니와 나는 형님을 선두로 나아가던 아이들이 방향을 틀어 보이지 않을 때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소나무숲 반대편으로 돌아오자 바람은 멈추고 소리만 들린다. 부우우웅 훼에에엥 혼을 쏙 빼놓는 바람이다.


"언니네 애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 따라나서요?"

"우리 애들은 단련이 되었지. 항상 셋이 꼭대기를 향해 떠나며 나만 낙오돼. 남편이 시골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데오면 좋아해."


 아, 아까 처음 본 형님의 표정이 바로 그래서였구나. 세상 신난 표정.


 무사히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어른 하나에 아이 셋과 중도 포기한 아이 하나를 다시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만났다. 꼭대기를 정복한 사람들은 모험담을 늘어놓기 바쁘고 중도 포기한 우리 딸은 아쉬워 죽는다. 다음번엔 꼭 정상에 도전해 보겠단다. 나는 계속 시속 55km가 아니라 초속 55km 아니냐고 물었다. 언니랑 내가 애들이 날아갈까 봐 걱정이었다고 하자. 형님이 이야기한다. 올라갈만했다고 그리고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니 아래도 잘 내려다 보이고 더 멋졌다며.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빗고 비뚤어진 겉옷을 다시 탁탁 제자리로 한 다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너무 바람을 맞아서일까 허기지다. 내일 있을 잘츠부르크 시내투어 가이드분이 공유해 주신 고사우 호수 앞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고사우 호수는 가이드분께 우리가 할슈타트 관광 예정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근처에 있는 고사우 호수의 경치도 매우 좋으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준 곳이다. 차에 타니 노곤하다. 인스브루크에서 케이블카를 탈 건데 그곳도 정상에 가면 이렇게 바람이 부는 건가.


 고사우 호수를 둘러싼 푸른 산 뒤로 만년설이 쌓인 솟아오른 산을 보니 이 또한 달력에 나올 법하다. 저 멀리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 돌산에 일 년 내내 녹지 못할 눈이 쌓여 있고 그 봉우리 사이사이를 깊이가 얼마나 될지 모를 눈이 메꾸고 있다. 아마 그 옛날 빙하 위에 눈이 쌓이고 쌓여 저리 평평해진 것일지도. 돌산의 큰 바위가 하얀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호수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너도 나도 점프샷을 찍었다. 한두 명이 없어져서 보면 어느새 호숫가 근처로 내려가 탐험을 하고 돌아왔다. 자자 이제 가자.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할슈타트로.


 할슈타트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마을 풍경이 호수에 비쳐내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드라마 봄의 왈츠에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할슈타트에 도착했더니 한국인 관광객이 관광버스로 단체 관광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 분이 알려주신 대로 4시면 대부분의 관광차가 빠져서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이제 막 단체관광객들이 빠지는 시간이었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 반대쪽에 커다란 호숫가 앞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잔디와 놀이터가 있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 왼쪽 편에 있으면 우리가 서있는 곳의 오른편은 놀이터였다. 놀이터를 발견한 아이들 넷이 놀이터로 달려간다. 일단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가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할슈타트 호숫가를 배경으로 하는 놀이터는 색다른 풍경이다. 특히나 집라인이 하나 있었는데 집라인을 타고 슝 나가면 호숫가와 가까워졌다. 이곳의 어린이들은 매일 이 호수를 배경으로 뛰어놀겠지. 놀이터에서 더 놀겠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집이며 상점이며 건물 모두 동화에 나올 법 한 모습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보면 집 벽면에 딱 붙어 자란 나무들이 간혹 보였다. 신기하게 생각하던 중에 할슈타트에서 커다랗게 집벽을 따라 자라난 나무를 볼 수 있었다. 호숫가를 향해 지어진 나무집들, 호수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 때마침 부활절이라 부활을 기념하는 각가지 노오란 장식품이 상점 쇼윈도에 즐비하게 진열돼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우리가 신비로운 동화 속 마을 거리를 걷고 있는 거 같다. 자그마한 광장을 지나치고 교회도 들어가 둘러보고 조금 더 걸어 할슈타트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뷰포인트까지 가서 할슈타트 대표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긴 하루였다.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는지 물어봤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거센 바람을 뚫고 돌부리를 잡아가며 정상에 오른 거란다. 아, 그게 젤 기억에 남았구나.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라 하고 어른 넷이 마주 앉아 어제 면세점에서 산 오스트리아산 와인과 아침에 숙소 앞 트럭에서 산 소시지와 치즈를 뜯어서 오늘 그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 내일의 일정은 어떻게 할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낮에 피로가 풀린다. 함께 오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 수 있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놀 수 있어 좋구나.

 

 우리, 오스트리아. 그렇게 본격적인 여행의 첫째 날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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