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는 더위와 함께 식어가고 있었고, 대통령선거의 열기는 찬바람을 시샘하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덧 20대의 끝자락에 와 있었다. 유통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면 식품매장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대가 지나면 지금 생활에 안주해 버릴 것 같았다. 패션매장에서 생활용품매장으로 갈 때 선배들이 말렸었다. 양복 입고 편하게 일하면 되는데, 왜 굳이 까대기 해야 하는 곳을 제 발로 가냐는 것이었다. 이번엔 식품매장으로 가겠다고 하니 더욱 난리다.
“머리에 총 맞았냐? 발령이 난 것도 아닌데, 왜 니 발로 기어서 내려가냐?”
“거기 내려가면 평생 다시 못 올라온다, 잘 생각하고 가라.”
그 말은 맞았다. 식품매장은 지하에 있었고, 식품매장에 발 디딘 이상 탈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식품매장의 일은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손품 발품 다 팔아야 했고, 계산기를 사용할 겨를도 없이 손익계산을 해 내야 했다. 공산품, 농산품, 테넌트코너 등 각 파트의 담당역할을 시작으로, 유통의 꽃이라고 하는 본사 매입부에서 MD(머천다이저) 업무도 2년을 했다. 이후 서른다섯 다소 이른 나이에 식품관 총괄팀장이 되었다.
내가 관리하는 매장은 1000평이 넘었다. 책임져야 할 직원도, 관리해야 할 거래처도 많았다. 협력해야 할 부서도, 모셔야 할 상사도 많았다. 매출 목표는 시간단위 별로 관리를 해야 했고, 경쟁업체뿐만 아니라 타점포, 타 부서 와도 목표달성을 위해 경쟁해야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운영해서 우수사원 연수도 가고, 동기 중 제일 먼저 진급도 하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다.
직급이 올라 갈수록 관리해야 할 매출은 높아졌고, 책임져야 할 직원은 많아졌다. 윗사람에게 아부도 해야 했고, 줄도 잘 서야 했고, 사내 정치도 잘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뒷목을 잡아당기고, 양쪽 어깨를 짓눌렀다. 아침에 혼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웠다. 더 이상 나에게, 이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한밤 중 술이 만취해 사무실에 갔다. 흔들리는 글씨체로 꾸역꾸역 사직서를 채워 넣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휴대폰을 끄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미친 듯이 일했고, 후회 없이 일했다. IMF를 겪은 X세대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의 30대는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