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X세대론 2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건우 Sep 25. 2024

4-2. X세대와 교육

4장. X세대와 함께한 대한민국 사회

교육은 한 인간의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어떠한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생각의 형성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인간에 대한 관계 등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중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공교육은 국가가 원하는 인재상이나 국가의 정책에 맞추어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 수행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초·중·고등학교에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지침을 내리거나 구체적인 교육방침을 제시한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지침에 따라 교수자는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학습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결과물이 남아 있을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국가가 요구하는 인재상도 달라졌고, 이에 따른 교육과정도 여러 차례 변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 

대부분 X세대는 4차~6차(1981~1997) 교육과정 중에 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하지만 제3차 교육과정에서 만들어진 토대 위에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제3차 교육과정(1973~1981)은 유신과업의 추진과 기술인력양성을 중심으로 반공과 도덕교육이 교과 활동에 포함되었으며 ‘국민교육헌장’ 교육이념을 실천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제4차 교육과정(1981~1987)은 신군부가 쿠데타로 집권을 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교육과정으로 교육과정 전반에 반공 교육이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국민 정신교육 및 전인교육을 강조했고, 진로 및 과학기술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었다. 

제5차 교육과정(1987~1992)은 6월 항쟁이 일어났지만, 교육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제4차 교육과정의 연장 선상에서 부분개정이 이루어졌으며, 사회변화에 따른 정보화 사회에 대비한 교육 등이 실시되었다. 

제6차 교육과정(1992~1997)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동구권이 개방·개혁의 길로 접어듦에 따라 세계화가 강조되었으며,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으며, 지금까지 교과서 앞에 실렸던 국민교육헌장이 사라진 시기이다. 

이렇듯 교육과정은 정권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빨리 변하였지만, 정권이 원하지 않거나 기득권이 원하지 않는다면 잘 바뀌지 않았다. 교육과정은 사회변화보다 언제나 늦게 변해왔다. 1960년에 일어난 4·19는 고등학생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첫 세대가 당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육과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X세대가 학교 다닐 때의 교육환경은 어떠했을까?

일제문화와 군사문화의 교육을 강요받았고 학습자인 우리는 그 교육에 길들여졌다. 학교마다 넘쳐나는 학생들을 감당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린 학생들에게 가혹한 군사문화를 감당하게 하는 것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선생님도 당연하다는 듯 학생을 억압과 물리력으로 가르치고 통제했다. X세대는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제식훈련을 받고 얼차려와 벌을 받았다. 게다가 각종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무릎 꿇고 양팔을 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책상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앉아 있기, 걸상 들고 서 있기 등 학년을 거듭할수록 체벌의 수위는 올라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첫 남자 담임 선생님은 시멘트 바닥에 원산폭격을 시켰으며 본격적인 매타작도 시작되었다. 중학교부터는 선생님의 구타나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말보다는 물건이 날아오거나 손과 주먹이 얼굴을 향했고, 선생님 각자의 창작물인 무시무시한 폭력 도구들이 난무했다. 머리카락이 3센티미터를 넘어가면 학생주임의 바리깡에 의해 머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고속도로가 생겼으며, 선생님의 폭언과 폭력이 심해질수록 친구들 간의 욕설과 싸움도 거칠어졌다. 사회적 폭력은 점점 줄어들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선생님의 폭력은 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친다는 명목의 법적으로도 정당한 권한 행사였다. 중국 고사(故事)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던가? 국가폭력과 가정폭력 그리고 선생님의 폭력은 X세대가 학창 시절을 보낼 때까지,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정당한 권한 행사였다.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 사회는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학교는 여전히 권위주의교육과 권위적인 선생님에 의해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교육현장은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야 뒤늦게 바뀌는 곳이었다. 6월 민주항쟁의 여파로 1989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되었고, 이를 계기로 ‘참 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협의회’도 만들어졌다. 드디어 체벌과 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지만, 그 당시 분위기만 해도 교육과 체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보완적 관계라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이었다. 이후 교육부의 체벌불허 방침 등으로 체벌이 줄어들기 시작해 2010년에 진보교육감이 당선되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면서 학교체벌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정치적 권위주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학교의 권위주의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학창 시절 전교조 선생님을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전교조 선생님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항상 궁금했다. 솔직히 학창 시절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거나 딱히 존경한다고 할 만한 선생님이 없다. 학창 시절 내가 존경한 유일한 선생님은 책과 영화에 존재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던 선생님이 아니라 자존감을 키워주는 선생님을 너무나 원했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존감 있는 인재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와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재상도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반공사상이 투철한 인재상을 최고로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X세대는 성장하면서 잘 극복해 냈다. X세대는 공권력에 맞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며 자신부터 바꾸어 나갔다. 폭력의 부당함도 알았고, 인권의 소중함도 알았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존감과 자아에 대한 사랑의 소중함을 알았다. X세대는 후배세대나 자식 세대에게 권위를 내세우거나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은 잘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중함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소중함도 아는 X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전 19화 4-1. X세대와 이데올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