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가 말을 해 놓고 후회하는 때가 있다.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하는 말, 속이 좁은 것처럼
편협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말, 과장되게
억지스러운 말...
맘에 들지 않은 말들은 마구 쏟아내면 곧바로 후회가 썰물처럼 밀려온다.
"괜히 얘기했어"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자책을 하게 된다.
말은 신중해야 하고 생각을 거쳐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쉽게 나오는 말.
말의 그릇이 넓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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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시외삼촌 내외분들과
셋째 시외삼촌네서 밤늦도록 술 한잔을 했다.
시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이 네 분이 계신다.
큰 외삼촌 내외는 돌아가시고
셋째 넷째 외삼촌 내외분들과
우리 부부가 모여서 밤늦게까지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막내외삼촌하고 남편의 나이차는 세 살 차이가 난다.
남편과 비슷한 연배로 어린 시절에는 살갑게 지내고 친밀하게 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 되면 막내 외삼촌은 조카인 남편을 데리고 가서, 고향마을 또래 친구들과 싸움 붙인 처음 듣는 이야기부터 깨알 같은 남편의 어린 시절을 재미나게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은 마음속에 깊이 접어둔 그때의 시간과
따뜻한 품을 만난 것처럼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흥분된 기분을 하고 있었다.
한 톤 높아진 감정으로 그때 그 시간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남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셋째 시외삼촌의 넉넉하게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와
넷째 시외삼촌의 살갑고 인정이 듬뿍 들어있는
말들에서 남편은 이미 두 분의 말의 품위에
감동하고 오랜만에 지원군을 만난 듯 행복해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내가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옆자리에 앉은 남편을 보았다. 기분 좋은 떨림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눕는
얼굴 표정에서 남편 마음이 그때의 감정들이 따뜻하게 일렁이고 있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외삼촌들과 함께 놀던 이야기와 남편의 어린 시절을 진하게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르게 품위를 지키며 이야기하시는 분들.
말을 참 예쁘게 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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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여러 사람에게 씨를 뿌리고 다양하게 열매를 맺기도 한다. 말은 상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한 사람이 쓰는 말은 자식들에게 까지 이어지고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 그 무엇보다 말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그릇이다.
주위에서 보면 말을 품위 있게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꽉 들어찬 앎이 저장된
사람이 품위까지 장착을 한 사람을 보면 매료가 된다.
말의 품위와 말 그릇이 잘 다듬어진 사람의 관계는
깊이가 다르다.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오래도록 만남이 지속되고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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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솜씨 좋은 사람이 대단히 탐나는 능력이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나에게 필요한 것은
깊이 있고 관계의 편안함이다.
겉만 화려한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편안하게 다가오는 품위 있는 말이 좋다.
말 그릇 속에 깊이 사람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품위 있는 말은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지켜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