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두 개의 길.
창은 시선만 통과할 수 있으나,
문은 내 모든 것이 통과할 수 있다.
이른 새벽, 눈을 떠 거실 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본다.
고요라는 옷을 걸친 새벽은 차분히 나를 맞아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손에 닿지 않는다. 그 고요함은 어둑한 시각으로만 감지될 뿐, 진짜 소리도 온도도 없다. 창을 통해 세상을 훔쳐보고 있을 뿐이다. 내 시선만이 통과할 수 있다.
문은 다르다. 문을 열면 그 앞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몸을 기울이고 발을 떼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문 앞에 선다는 건, 더 능동적이다. 창문 밖에서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문은 내가 나를 넘겨주는 경계다. 문 밖으로 내딛는 순간, 시선뿐 아니라 내 숨, 내 생각, 내 존재 전체가 세상에 닿는다.
문 앞에 주저하기도 한다. 창문을 통해 본 것들이 사실과 다를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창을 통해 본 세상은 늘 평화롭고 일정하다. 내가 원할 때 들여다보고, 내가 원할 때 뒤돌아설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나는 더 이상 관객이 아니다. 그 세상 속에 던져진 내가 된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내가 소유한 것이었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그 세상이 나를 소유한다.
가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가고 싶다."
편안한 거리, 편안한 장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만만해 보인다. 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가면 눈이 아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시선만으로 상상한 온도는 진짜 바람의 감촉과는 다르고, 창을 통해 보인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문을 여는 것은 그래서 더 어렵다. 내가 통과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문이 아니다. 문 앞에서 나는 내 고정관념을, 나의 안락함을, 심지어 내가 설정해 둔 한계마저 넘어서야 한다. 문을 나서면, 더 이상 나만의 안전한 시선으로만 세상을 규정할 수 없다.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온전히 섞여야 한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진짜 '세상'이지만, '진짜' 세상은 아니다.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 세상은 그림, 사진일 뿐이다. 진짜 세상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경험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괴로워하고, 환희를 맛보며 진짜 나를 알아간다.
세상은 우리에게 늘 창과 문을 통해 제시한다. 가볍게 시선만을 건네며 안전한 거리에 머물게 하는 창과 모든 것을 걸고 내딛게 하는 문. 나는 언제나 창을 통해 세상을 엿보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때론 문을 열고 나가기도 했고, 굳게 닫힌 문 안에 조용히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그 문을 열고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문이 없고 창만 있다면, 문을 만들어야 하고,
문이 보이면, 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