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비율.'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하는 황금비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얼굴 속에 조화롭게 자리 잡은 그녀의 눈, 코, 입은 매력적이었다. 새하얀 그녀의 피부는 마치 화창한 날씨의 '우유니 소금사막' 같았다. 살면서 그렇게 새하얀 피부는 본 적이 없어서 연예인을 보듯 힐끔힐끔거렸다.
호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영어학원을 등록하는 것이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단어에 'English', 'Study'라는 단어는 들어있지 않지만, 호주 워홀을 오면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학원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날 테고, 그러면 빠른 영어실력을 기대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옹알이하는 아기들끼리 모여봐라. 말할 수 있게 되는가.
영어학원이 딱 그 수준이었다. 레벨 테스트를 통해 클래스가 정해지는데,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반에 배정되었다. '그 수준'의 학생들의 대화는 말 그대로 딱 '그 수준'이었다. 20대 다양한 국적의 성인들이 모여서 기초적인 대화만 나누고 있었다. 처음 학원을 3개월 등록하고 주 2~3회 있는 수업의 첫 시간을 듣고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영어실력을 키워나가는 건 불가능하겠구나라는 것을..
학원을 정할 때 규칙을 하나 정했다. 한국인이 잘 안 가는 학원을 가는 것이었다. 타지에서의 한국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한국인임을 인지하는 순간 무한 친화력을 발휘한다. 다른 국가 친구들보다 유독 심하게 느껴졌다. 학연, 지연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국연'은 자연스러운 끌림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한국인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학원을 골라갔다. 그곳은 남미 학생들이 많이 다녔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 열댓 명 중 한국인은 나를 제외하고 남자 한 명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이 학원에 들어온 이유도 내가 선택한 이유와 동일했다. 그래서 서로 한국인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말을 안 걸었다. 친해지면 한국말만 계속하게 될 것 같아서..
그를 제외하고는 동양인은 태국인 두 명뿐이었고, 포르투갈, 콜롬비아, 페루 등 유럽과 남미 친구들이었다. 포르투갈어는 그렇다 쳐도 스페인어는 영어랑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에스파뇰을 쓸 줄 아는 친구들이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들도 타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특한 청춘들이구나.. 문화권은 많이 달랐지만 동질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BTS나 K-Pop, 한류 열풍이 왜 남미 쪽에 불기 시작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흔히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라고 하면 엄청나게 개방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나만 그랬는지도..) 생각보다 문화, 가치관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럽이나, 미국, 호주 사람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남미 쪽은 우리나라처럼 사람 친화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아니 훨씬 흥이 많고, 정열적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거의 MBTI 극대문자 'E'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문화의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에 K-Pop이 남미에서 인기가 많았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때도 그들에게 허여멀건 동양인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학원에 동양인이 거의 없었기도 하거니와 그들은 상대적으로 까무잡잡한 피부였던지라 내 피부를 무척 부러워했다. 덕분에 그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살면서 그런 관심을 받을 기회가 또 있을까? 그때 BTS가 이미 있었다면 나도 인기가 더 많지 않았을까라는 몹쓸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매번 지각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처음 학원을 간 날도 그녀는 지각했다. 늦게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순백의 깨끗함. 같은 콜롬비아 출신 학생들과 다르게 그녀는 하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작은 얼굴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말 그대로 '황금비율'이었다. 갈색 머릿결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삐쭉거리는 입술 위로 솟은 높은 콧날은 나도 모르게 '아.. 이게 서양인의 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내가 실제로 본 서양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첫눈에 반했다. 이 반했다는 단어는 '사랑에 빠졌다.'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사람들이 연예인을 보고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종족의 생명체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와 마주할 때면 숙연해졌다. 연예인에게 다가가서 사인해 달라거나 사진 찍자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와는 달랐다. 콜롬비아 출신의 학생들은 모두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내가 술을 한껏 마셨을 때나 나오는 텐션을 이른 오전부터 하루 종일 유지했다. 술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말을 하다가도 흥이 오르면 춤을 출 때 나오는 손동작을 보여줬고, 골반과 엉덩이를 수시로 씰룩거렸다. 라틴 아메리카의 흥은 춤으로부터 나왔다.
콜롬비아 친구들과 친해지고부터는 그들의 문화에 빨려 들어갔다. 하루는 그녀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불렀다.
"오늘 뭐 해?"
"글쎄?"
"그럼 우리랑 놀자."
나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시드니 도심을 가로질렀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한 술집이었다. 내가 자주 가던 곳처럼 음악이 나오고, 홀 전체가 테이블로 가득한 술집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낮시간인데도, 술도 안 마셨는데도, 홀 중앙에서 스텝을 밟고 있었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는 '라틴 펍'이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오늘 춤을 추는구나..'
나는 살면서 가장 무서워하는 게 춤이다. 리듬감이 없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뻣뻣한 몸뚱이는 리듬을 타는 법을 몰랐다. 학교나 회사에서 장기자랑 하라고 춤을 시키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장기자랑으로 춤을 추라는데 무대에서 뛰어내려 도망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라틴펍이라니.
"너네는 정말 밥먹듯이 춤을 춰?"
평소에 내가 라틴계 친구들에게 많이 하던 질문이다. 그 질문을 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흔들며 대답하던 그녀들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드디어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에 황당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는 이유였을까,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나의 한쪽 손은 어깨에, 다른 손은 본인의 잘록한 허리에 옮겼다. 내 손은 굳어버렸다. 자두 같은 크기의 어깨와 매끈한 허리가 느껴졌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딱 팔뚝 거리만큼이었다. 그리고 '원, 투, 원, 투' 말하며 스텝을 밟았다. 한때 나무젓가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뻣뻣한 나조차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하나, 둘, 하나, 둘 따라 하며 그녀에게 집중했다. 허여멀건 피부의 한국인 청년의 얼굴은 터질 듯 열이 났지만, 어두운 조명 속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스텝을 밟을 수 있는 리듬감으로 충분했다. 물론 기초적인 수준을 말하는 거다. 그녀와 손을 잡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웃으며 그들의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그녀들은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바라보듯 흐뭇해했다. 그곳에서 춤을 잘 못 추는 나는 어색했고 웃겼지만, 그녀들의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춤을 통해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며 나오는 진정한 기쁨의 미소였다.
그날 라틴 펍에서의 경험은 내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아니, 전환점이 될 뻔했다. 시드니에 라틴 댄스를 배우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그들의 춤 문화는 매력적이었다. 춤이라는 행위는 여전히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한 그 순간의 춤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손길, 그녀와의 거리, 그리고 그 공간에서 느껴지던 그들의 열정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며칠 후 학원에서 마주친 그녀는 나를 보며 생긋 웃어주었다.
"춤 너무 어려워. 너네는 정말 춤 멋지게 추더라."
"내가 말했잖아, 우린 정말로 밥먹듯이 춘다고."
"그런데 춤추는 거 정말 좋았어."
그녀가 더 환하게 웃는다.
그렇게 그녀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주말이면 콜롬비아 친구들과 모두 모여 바다와 공원을 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파티에 초대받아 바비큐를 했고, 울려 퍼지는 음악에 몸을 흔드는 일상은 새로운 행복이었다. 내 몸짓이 여전히 뻣뻣해서 우스꽝스러워도 그녀는 해맑게 웃어주었다. 그녀와 함께 춤을 추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순간이 내게 새로운 감정을 일깨웠다.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매력적인 외모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넌 호주에 왜 왔어?"
"내가 사는 콜롬비아는 너무 위험해.. 콜롬비아를 떠나고 싶어."
"왜?"
"사촌이 집 근처에 살았는데, 몇 년 전에 총에 맞아 죽었어. 너무 위험해서 밤에 돌아다니지도 못해."
나는 가끔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뭔가 슬픔을 안고 있는 듯했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몰랐다. 그녀는 자유를 찾았고, 자유로움 속에 계속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호주를 좋아했다. 호주의 자유로움을 사랑했다. 아니, 안전하고 자유로운 나라면 어디든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는 부모님과 어린 남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콜롬비아로 돌아가면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호주에서의 1년의 시간은 그녀에게 일종의 도피였다.
우리 이야기의 끝이 다가옴을 느꼈다. 그녀는 곧 시드니를 떠나 콜롬비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서 특별히 시작한 것은 없었지만 여느 헤어짐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녀라는 춤사위가 이미 내 심장을 물들였다.
"콜롬비아 돌아가면 내년에 한국으로 놀러 와. 내가 매일 가이드해 줄게."
"그래 알았어. 꼭 갈게."
한국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두고 떠날 수 없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조차도 온전한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 수 있는 호주에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비행기로 10시간 넘는 거리에 떨어져 산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것을..
"춤 알려줘서 고마워. 잊지 못할 거야."
우리는 마지막으로 포옹했다. 그녀의 작은 체온이 내게 전해졌다. 그녀는 항상 그랬듯 밝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 미소 뒤에 슬픔이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녀가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국 꼭 와야 해."
"응."
그녀가 떠난 후, 술집에서 라틴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나에게 춤은 더 이상 몸짓이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 그 자체였다.
온전히 자유롭지 않았던 그녀는 나에게 춤이라는 자유를 남겼지만, 그 자유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춤은 그녀였고, 자유는 그녀였다. 그녀의 춤에 물들었던 내 심장은 그녀가 떠난 후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