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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3, 이별은 이별일 뿐.

by 라텔씨

아이들을 좋아한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학생들도 좋아했다. 그들의 풋풋함을 좋아했다.

하지만 호주, 시드니에서 악마 같은 중학생들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시드니의 서늘했던 7월. 쌀쌀한 날씨여서 가벼운 바람막이를 하나 걸치고 시내를 걷던 중이었다. 스마트폰은 없던 시절이고 숙소의 인터넷은 너무나 느렸다. 웬만한 상점은 오후 5시면 모두 닫았다.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저녁이 되면 거의 가족들과 함께였다. 내가 일하던 'Beautiful Burger'라는 수제 버거 레스토랑 겸 카페도 오전 8시에 열어서 오후 3시면 닫았다. 밤낮없이 24시간 즐길거리가 많았던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에서는 강제로 절제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선택한 건 산책. 그렇게 시드니 도심지를 걷고 있었다.


평소에 잘 가지 않는 골목을 지나 코너를 도는 순간 비니모자를 쓴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처럼 풍경이 슬로우 모션처럼 변했다. 정확히 3초 뒤돌아서며 뱉은 한 마디.


"어?"

"어?!"


그 사람과 나는 동시에 돌아보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니 너 뭐야?"

"그러는 넌 어떻게 된 거야?"


잠깐 스치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외모의 그는 군대 동기였다. 정확히는 군대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받기 전, 보직 훈련을 받는 곳에서 내 옆자리 동기였다. 군대 전역 후, 한 번 보자던 다짐들은 몇 년이 지나 기약 없는 약속이었는데, 호주 시드니, 낯선 골목길에서 만난 것이었다. 반가웠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길게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넌 언제 왔어?"

"몇 달 됐어."

"전화번호."

"연락할게."


다음 날 바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나랑 일 같이 할래?"

"뭔데?"

"학교 청소하는 일인데, 시급 11달러야."

"몇 시?"

"4시부터 9시"

"좋아."


남자들의 대화는 그렇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차차 알아가면 될 테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굳이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며칠 뒤부터 그와 함께 학교 청소 하는 일을 시작했다.


♟️Sydney, Australia.jpg 매일 건넜던 '시드니 하버 브리지'


청소할 곳은 내가 살던 곳에서 트레인을 타고 '하버 브리지'를 건너가면 바로인 중학교였다.

남자 3명이서 매일 맡은 구역을 청소하면 되는 것이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대걸레로 닦고, 화장실에 락스를 뿌려서 구석구석 청소하는, 말 그대로의 청소 일이었다. 그냥 바지런히 움직이면 시간 안에 충분히 할 수 있고, 조금 더 격렬하게 속도를 내면 빨리 끝낼 수도 있었다. 군필 남자 셋의 협업은 꽤 대단했다. 본인이 맡은 구역이 빨리 끝나면 느린 사람들 구역에 자진 투입했다. 4시부터 10시까지 부지런히 6시간을 청소해야 하는 양을 거의 5시간 만에 끝냈다. 물론 학교의 시설 관리자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9시에 퇴근할 수는 없었다. 매번 9시에 검사를 맡으면 6시간 일당이 5시간으로 줄어들 수 있었으니까.


군대 동기와 나, 그리고 한 명의 형이 있었다. 서른 살이었던 그 형은 여자 친구를 따라 호주에 왔다고 했다.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는 10년 넘게 사귀었고, 그녀는 시드니에서 대학을 다니며 영주권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형은 여자친구의 정착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다. 여자친구의 학교 졸업과 영주권 취득이 형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영주권을 얻고 결혼을 하면 자연스레 호주에서 함께 살 수 있었다.


형은 영어를 잘 못했다.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영어를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만 해왔다고 했다. 청소, 청소, 청소.. 청소 관련된 일만 했다. 당시에 시드니에서 청소 관련 업체는 한국인을 매우 선호했다. 새벽에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꼼꼼하고, 재빨랐다. 그만큼 형은 청소를 잘했다. 하지만 그런 베테랑도 하기 싫어하는 구역이 있었다. 바로 화장실. 구체적으로 남자 중학생의 화장실.


직접 호주나 유럽의 중학생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악랄했다.(내가 청소한 학교는 남자 중학교였다) 악동이라기 보다는 악마에 가까웠다. 다른 곳은 괜찮았는데 유독 화장실만은 매번 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수라장이었다. 매일 청소하기 때문에 더러울 이유가 없는데, 그 안의 풍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루틴은 이렇다. 첫째, 휴지를 풀어 물에 적셔 뭉친다. 뭉친 휴지를 높은 벽에 던져서 붙인다. 겨울에 눈을 뭉쳐서 벽에 던지면 붙어서 안 떨어지는 것처럼 화장실과 화장실 주변 복도, 계단 벽에 온통 휴지 뭉치가 붙는다. 이 정도는 이해했다. 나도 어릴 때 그랬던 기억이 있으니까. 번거로울 뿐이지 더러운 건 아니니까.

둘째, 두루마리 휴지를 양변기에 쑤셔 박는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래야 하는데?? 이게 왜 너희한테 재밌는 건데? 그렇다. 그냥 청소하는 우리를 괴롭히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 아무 이유는 없었다. 10칸이 넘는 양변기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화장지가 통째로 박혀 있다. 십여 개의 물에 젖은 화장지 뭉치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끌고 다니면 너무나 무겁다.

셋째, 양변기를 두고 왜 그 옆에....?? 양변기 뚜껑을 덮고 왜 그 위에....?? 왜?? 도대체 왜??? 너네 중학생이라고.. 인도계 학생들은 양변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개똥 치우듯 휴지로 치워야 하는 상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이 밖에도 다양했다. 대부분 화장실에서 허용된 물품인 휴지로 발생하는 것들이었다. 휴지를 모두 풀어서 문과 문을 연결해서 장식을 만들고, 휴지로 배수구를 막아놓고 물을 틀어놔서 콸콸 넘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만큼은 정말로 악마였다. 오죽하면 학교 청소 관리자(현지인)도 화장실을 청소하는 우리를 보며 항상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함께 청소하던 형은 늘 표정이 어두웠다. 오늘은 어떤 폭탄이 터져있을지 모르는 화장실 때문은 아니었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는 고등학생 때부터 10년을 넘게 사귄 사이였다. 호주에 사는 것은 그녀의 꿈이었는데, 형은 호주에서의 생활을 버거워했던 것 같다.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면, 말할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시급 11달러 정도 받으면서 12시간 일하는 것(형은 오전에 다른 곳 청소를 더 했다)으로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았을 거다. 시드니에서 대학을 나와서 취업을 하고 영주권을 따는 것은 1~2년 안에 끝낼 수 있는 과정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형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렇게 어두운 표정이 이어지던 어느 날, 형이 보이지 않았다. 군대 동기에게 들은 말로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럼 여자친구는?"

"나야 모르지."

"그렇지.. 알 수 없지."


호주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수많은 인스턴트 연애의 이별과 십 년 동안 푹 묵혀온 연애의 이별은 무엇이 다를까? 헤어지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처럼 모두 똑같은 이별일까? 훗날 그는 그녀를 위해 낯선 땅에서 작은 악마들과 고군분투하며 견뎠던 그 시절을 어떻게 회상할까?


이 생각은 하루를 채우지 못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생각 틈으로 물에 젖은 휴지뭉치가 들어왔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펼쳐진 광경은 이별의 슬픈 감정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물에 젖은 휴지 뭉치, 넘쳐흐른 배수구,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흔적들.


청소를 마치고 하버 브리지를 건너오는 트레인 안에서야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10년의 시간을 보낸 그녀와 헤어지기로 결심하면서 그는 허망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할 만큼 했다는 안도감을 느꼈을까? 형과 얘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한국의 그녀를 만날 거라는 일념으로 이 곳 생활을 견디고 있던 나였기에.

하지만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어떤 결론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형도, 형의 그녀도, 나의 그녀도 내 삶과는 멀어진, 멀어져 있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잠시 엮였을 뿐,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스쳐 지나갈 운명이었다.


나는 형을 생각하며 응원을 빌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그는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낯선 땅에서 싸워본 사람이었다. 그 시간들이 결코 의미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형이 견뎌냈던 시간이 그의 삶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있든, 그건 형만의 것이다. 그의 선택이고, 그의 결과다. 나도 호주에 올 거라고 말하던 그녀를 기다리면서 악마와 싸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시드니에서의 이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그녀가 이곳에 온다면, 웃으며 이 시간을 회상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녀와 나도 형과 그의 여자친구처럼 각자의 선택과 결과 속에서 갈라서게 될까? 함께하지 않고 있었기에 이별은 절대 없을 거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눈을 감고 트레인의 덜컹거림에 몸을 맡겼다. 나는 이곳에 있고, 답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정답이든, 오답이든. 작은 악마들과 싸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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