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믿지 마세요.
시드니에서 생활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었다.
사람은 두 부류로 구분된다는 것. 사기꾼과 사기꾼이 아닌 사람.
호주에 가기 전까지는 사람을 보이는 데로 믿는 편이었다. 성인이 되고, 20대 중반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악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없었다.(군대 때는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돈을 떼인 적도 없고, 사기꾼을 만난 적도 없었다. 맨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났기 때문일까?
너무 좁은 세상에 있다가 넓은 세상에 던져지고 나니, 다양한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그저 친절하고,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어학원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오빠, 오늘 저녁 먹어요. 시드니 구경시켜 줄게요."
한 반에 8명 정도였던 탓에 단기간에 사람들과 친해졌었다. 그중 한 여자애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시드니에 아직 친구도 별로 없고, 아는 곳도 별로 없어서 타인의 호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작은 문제가 있었다. 시드니에 정착하면서 보증금을 걸고, 월세를 내고 나니 수중에 250달러가 남아 있었다. 그 당시 시드니의 외식 물가는 학생 신분에게 꽤 높아서 대부분 장을 봐서 집에서 해 먹거나, 아주 저렴한 식당을 갔다. 스테이크가 5달러로 저렴하고, 맥주를 곁들일 수 있는 <5불 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곳이 가난한 유학생에게 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스테이크와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 10달러 안팎.
'둘이 저녁 먹고, 커피 한 잔 하면 3~40달러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녀를 만났다. 250달러가 전 재산인 나에게 3~40달러는 일주일치 식료품비로 쓸 수 있는 소중한 돈이었지만,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호의를 거절할 정도로 걱정을 앞서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오빠, 뭐 좋아해요? 제가 아는 데가 요 앞에 있는데 거기 가요."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어어어??' 하다가 그녀가 안다는 가게로 끌려 들어갔다. 한국식 레스토랑이었다. 일반적으로 코리안 레스토랑은 대부분 비쌌다. 한국에서 보던 가격표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시드니의 코리안 레스토랑 메뉴판은 상상 초월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국밥 한 그릇은 5천 원이었지만, 시드니에서 국밥이나 찌개 한 그릇을 사 먹는다면, 만 원이었다. 상대적으로 긴장될 수밖에 없는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사장님과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를 보면서, '단골이어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인가 보다. 그러니까 아는데라며 나를 데리고 왔겠지?'라며 기대를 했다.
"오빠 여기는 OO가 맛있어요. 그거 먹어요.
사장님, 여기 OO랑 소주 하나 주세요."
응? 소주? 소주는 내 예상 밖인데? 뭐지? 얘 나한테 작업 걸려고 술 시키는 건가?
주문하는 그 짧은 몇 초 사이 내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그 당시 시드니의 소주는 한 병에 20~25달러 정도로 무척 비쌌다. 나중에 저렴한 가게들이 생기긴 했지만, 가난한 유학생, 워홀러들이 함부로 마실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소주를 주문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내 주머니 속에 얼마의 현금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당황스러움을 숨기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주머니의 250달러를 꺼내 확인해보았다.
'둘이 소주 한 병으로 끝날 거 같지는 않고, 두 병 마신다고 하면, 50달러에, 음식 하나 해서 100달러... 그래, 오랜만에 소주 맛 좀 보면서 기분 낸다고 생각하자.'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먹기로 하고, 나온 음식과 소주를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감정이 없었다. 한국에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녀는 이성적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어수룩한 남자일 뿐..
그녀 역시 나에게 딱히 호감을 가진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이 활달하고, 말을 잘하는 성격일 뿐, 이성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어떤 포인트도 없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한국말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그 시간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부담스러운 것은 한 병에 25달러인 소주 가격일 뿐.
소주는 참으로 재밌으면서 위험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섭게만 느껴졌던 25달러라는 가격이, 한두잔 들어가다 보니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소주의 맛은 25달러 이상의 달달한 가치가 있었다. 딱 그 순간만큼은 말이다.
소주 2병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무참히 깨졌다.
그녀의 주량은 대단했다. 소주 한 병, 두 병.. 세 병, 네 병. 내가 살면서 소주를 그렇게 음미하면서 아껴 마신 적은 없었을 거다. 내가 소주 한 병을 감질나게 음미하는 동안, 그녀는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더요.'라며 3병을 들이부었다. 오랜만에 마신 소주의 효과였을까, 아니면 자포자기한 심정이었을까, 나의 250달러라는 잔고는 25달러 단위로 녹고 있었다.
다음 날 눈을 뜨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 같이 저녁 먹어요.'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 그 2시간 동안, 나의 잔고는 50달러로 줄어있었다. 아는 오빠 가게라고 가놓고선 소주 4병에 전골 하나, 기타 등등에 200달러..
계산할 때, 아차 싶었지만, 아마 이렇게 될 운명임을 알고 있었을 거다. 마지막 소주 몇 잔을 내가 연거푸 들이켰던 걸 보면..
그녀는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저녁 먹자고 말했던 날이 그녀의 어학원 마지막 날이었다. 소주를 3병이나 마시는 동안 나에게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었지만 말이다.
<삐끼 :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삐끼였다. 일부 가게들이 여자애들이 손님을 데리고 오면 매출의 몇 %를 알바비로 준다고 했다. 그제야 그녀가 뜬금없이 나에게 저녁을 먹자고 한 것과 시드니를 구경시켜 주겠다며 물 건너온 소주 맛만 알게 해 준 이유가 이해됐다.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친절하면서도 적당한 거리감이 느껴졌던 이유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킥 차기 딱 좋은 추억이면서도, 그때부터 사람을, 특히 여자를 경계하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녀의 호객행위에 넘어가서 지불한 200달러는 추후 나에게 불손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몇몇 여자들을 경계할 수 있는 꽤 비싼 수업료였다.
수중에 50달러밖에 남지 않게 된 나는, 당장 일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조금 더 빨리 냉혹한 현실에 나를 던질 수 있었다.
이번엔 악덕 업주를 만나러 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