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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X들 3-2. 돈이 모이는 곳에 그들이 모인다.

친절한 사람은 어디서든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by 라텔씨

2주에 150달러에 잠을 잘 수 있고, 주방과 샤워장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니.. 가난한 워킹 홀리데이에게 환상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로즈베이 카라반 파크'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게 된 스토리 : 13화 그 X들 3-1. 돈이 모이는 곳에 그들이 모인다. )


울타리 너머 은은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텐트 문을 열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있는 환상의 숙소에서 '이렇게 행운일 줄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뜬 것은 오전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조금 이른 기상 시간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호주의 태양은 일단 얼굴을 드러내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높은 산 없이 드넓은 대지가 펼쳐진 이곳은 이른 시간부터 세상 깊숙한 곳까지 태양의 빛이 닿았다. 내가 지낼 텐트는 순식간에 찜통이 되었다. 아침 6시에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달궈졌다. 바람이 통하게 텐트 창을 열면 직사광선에 닿아서 뜨거웠고, 직사광선을 피하려고 닫으면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것과 같았다.


아침 6시부터 있을 곳이 없었다. 첫날 아침,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아.. 이거 안 되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2주 동안 어떻게 버티지?라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나무 그늘 밑에 있는 텐트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이미 주인이 있었다. 수십 팀이 머무는 이곳에 유일하게 남았던 내 텐트의 자리는 '남아있을 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카라반 파크 주인을 찾아가 얘기해 보기 위해 마음먹기까지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음..... 혹시 카라반은 빈 곳 없을까?"

"다음 주에 하나 나올 거야. 카라반으로 옮기고 싶어?"

"응, 그럼 그거 내가 쓸게."

"그래, 그렇게 해."


카라반 파크 주인은 마치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왜 옮기고 싶어?'라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늘 없는 곳에 하나 남은 텐트 자리는 카라반으로 옮기기 전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곳이었나 보다.


카라반으로 옮기기로 했으니, 다음 주부터는 숙박비 지출이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단 돈이 된다는 토마토 따는 일은 아니더라도 어떤 일이라도 구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인포메이션 센터를 가보고, 대형 마트의 게시판에 혹시 사람을 구하는 구인 광고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포메이션 센터의 담당자는 '매일 와도 아직 일 없어.'라는 표정이었고, 구인 광고는 없었다.


갈 곳이 없어서 마트 앞 주차장에 나의 동반자 '시리'를 대놓고 멍하니 있을 때였다.


길 건너편을 달리던 승용차 한 대에서 누군가 소리치며 환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Alex~~~~~"

"어? 누구지?"

"Hey~Alex, What are you doing here?"

"Hey~~ Sha~~!"


그였다. 지난 농장에서 이 지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해줬던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친구. 지난달까지 농장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함께 축구를 했던 '샤'라는 이름의 친구였다. 그가 호주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차량인 나의 '시리'를 알아보고 단번에 나임을 알아챘다.


"여기 온 지 며칠 됐는데, 일이 없데~~ 몇 주 있어야 일이 생길 거라는데?"

"그랬어? 잠깐만 기다려봐."


그가 어딘가로 전화했고, 짧은 통화 후 내게 말했다.


"내일부터 일 할 수 있지?"

"응? 그게 돼?? 나야 고맙지!"

"나 '톰'이랑 같이 지내고 있어. 나 집에 가서 씻고 데리러 올 테니까 저녁 같이 먹자."

"그래, 난 '로즈베이 카라반 파크'에 있어."

"응, 거기로 데리러 갈게."


안도의 미소가 절로 퍼졌다. 지난 농장에서 축구를 함께 한 것 말고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었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그가 축구할 때마다 웃옷을 벗고 뛰었다는 것이다. 땀이 많았고, 나는 땀이 많은 그와 살끼리 닿는 게 부담스러워서 절대로 웃옷을 벗지 않았다. 그렇게 운동과 땀으로 빚어낸 사나이들의 우정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와 함께 지낸다는 '톰' 역시 지난 농장에서 매일같이 축구를 함께 했던 형인데, 한국인이었다. 그는 한국인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내가 한국인이 많은 영어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다른 나라 친구가 있을 때는 무조건 영어만 사용했고, 한국인끼리 있을 때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스스로 한국어를 봉인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도 그 형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건, 그의 축구 실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청년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경기를 지배하던 그 형의 모습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Hey~Tom, Good to see you again"


나이 차이는 얼마 안 나지만 콧수염을 기르고 무뚝뚝해 보이는 톰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도 처음의 무뚝뚝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린 지난 농장에서 재밌었던 이야기와 함께 양고기를 곁들인 커리와 난(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빵)을 먹었다. 그리고 '샤'가 말해주기를,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얘기한 것처럼 본격적으로 일이 많아져서 사람이 많이 필요한 시기는 몇 주 더 있어야 된다고 했다. 지금도 토마토 따는 일을 할 수는 있는데, 그 일은 매년 이 농장에서 일해오던 사람들에게 먼저 순서가 가고, 놀랍게도 '샤'는 이 농장에서 벌써 5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 국적임에도 호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매년 여기를 온다는 그였다.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근데 Alex는 카라반 파크에 산다고? 거기 자리 나기 쉽지 않은 곳인데, 럭키맨이다!"

"어 그게 어제 텐트에서 잤는데,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못 지내겠더라고. 그래서 오늘 물어봤는데 다음 주에 카라반이 하나 빈다고 그랬어. 혼자서는 비싸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

"혼자 살아? 카라반 하나면 셋이 지내도 충분할 텐데?"

"그렇긴 한데, 혼자 와서 어쩔 수 없었지.... 너네 내 카라반으로 올래?"

"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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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태양열을 머금은 텐트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바로 그날, 일자리와 룸메이트를 모두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카라반으로 옮기자마자, 한 한국인 여자가 내가 머물던 텐트, 그 자리로 들어왔다. 나는 '여자 혼자서 텐트에서 지낼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네'라는 생각과 함께, '아침에 해 뜨면 못 버틸 텐데...'라는 측은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그 자리 햇빛이 너무 세서 힘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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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호주에서 만난 '그 X들'의 마지막 주인공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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