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굳이 대전까지 내려가는 이유
요즘에는 직접 지방에 내려가지 않고도 서울에서 어렵지 않게 지역 맛집의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방에서 유명해진 식당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분점을 내기 때문인데요. 그 덕분에 대형 쇼핑몰에 가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죠. 하지만 이 대중화의 흐름 속에서도 서울에 진출하지 않고 지역에서만 자리 잡아 굳건한 성공을 누리고 있는 가게가 있습니다. 오로지 이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 기차표를 끊어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빵지순례’ 유행이 번지고 있을 정도인데요. 빵과 기차, 라고만 해도 바로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죠. 바로 대전의 ‘성심당’입니다. 성심당의 계절 신메뉴는 출시될 때마다 SNS를 뜨겁게 달구곤 합니다. 이번 겨울에도 슈톨렌과 팡도르 등 달콤한 빵들이 새롭게 나왔다는 소식에 에디터 역시 입맛을 다셨는데요. 서울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성심당이 대전에만 있는 데는 나름의 확고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대전은 내 사랑
성심당은 대전시의 대표적인 향토 기업이고, 이제는 상징적인 관광 명소로까지 자리 잡았습니다. 성심당은 지역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명성을 얻게 된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성심당이 주목한 건 대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대전은 기차, 버스 등을 타고 몇 시간을 내려가야 하는 여행지이죠. 그러니까, 따로 시간을 내어 대전을 방문해야만 성심당을 경험할 수 있는 겁니다. 이 희소성 덕분에 성심당은 단순히 빵 가게를 넘어 대전 여행의 중요한 목적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성심당은 대전시의 캐릭터인 꿈돌이 모양의 마들렌, 유성구 DCC점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유성퐁당’ 등 활발한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하며 지역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굳혔는데요.
올해 5~6월, 성심당이 서울 중구의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2024 로컬크리에이티브 팝업에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성심당은 이 행사에서 빵을 팔지 않고 브랜드 전시만 진행하여 소비자들로부터 ‘뚝심 있다’, ‘이유 있는 고집’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대전 하면 성심당, 성심당 하면 대전. 지역 특화 이미지를 유지하는 한결같은 운영이 돋보이죠.
이 가격에 이게 된다고?
1956년 설립된 성심당이 그토록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도권에 비해 낮은 운영 비용도 한몫했습니다. 대전은 서울과 경기에 비해 비교적 지대가 저렴합니다. 운영 비용이 낮으니 품질 높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죠.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등 케이크 수요가 높아지는 시기가 될 때면 비싼 호텔 베이커리의 케이크와 성심당의 ‘갓성비’ 케이크가 어김없이 비교선상에 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만 원을 우습게 넘기는 고가의 케이크가 논란이 될 때마다 성심당의 옹골찬 케이크는 반사이익까지 누리게 되는데요. 성심당은 오직 대전 운영을 고수하며 로컬 브랜드로서의 정체성과 더불어 비용 절약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겁니다.
빵이 전부가 아니야
성심당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모두를 위한 경제, ‘EOC(Economy Of Communion)’의 가치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심당은 기업의 매출과 세금 납부 내용을 모든 직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윤의 15%를 직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해, 모두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기도 하죠.
대전의 자부심이라는 타이틀도 말뿐만이 아닙니다. 당일 제조 당일 판매 원칙을 따르는 성심당은 남는 빵이 생길 경우 대전 내 복지시설에 즉시 기부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기부하는 양이 매달 평균 3,000만 원어치에 달합니다. 또한 대전 소재의 대학교와 협약을 맺어 취업까지 연계하고, 지역민의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등 다방면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는데요. 모두와 공생하는 성심당의 운영 방침은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에 매몰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노잼도시’라는 악명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떨어지던 대전은 이제 성심당의 꾸준한 상승세에 힘입어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죠. 여행 리서치 전문 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대전은 올해 실시된 ‘여름휴가 만족도 조사’에서 16개 시도 중 10위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10위권에 올랐다고 하는데요. 2016년부터 지난 8년간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만년 꼴찌를 도맡다가, 올해는 급부상에 성공한 겁니다. 성심당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대전을 방문하고, 대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성심당 또한 더 번성하게 되는 선순환 속에서 성심당의 ‘착한 경영’은 더 많은 사람들을 돕게 될 겁니다. 과일이 가득한 케이크를 서울에서 먹지 못해 아쉬웠던 에디터 역시 속내를 알게 되자 성심당의 경영 방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지요. 지역사회와 기업이 서로 돕는 사례가 더 증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모범 사례 성심당, 이번 겨울에도 기차표를 끊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