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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람 Dec 03. 2023

극J가 파워P인 육아를 대처하는 자세

시간이 답이다

나의 MBTI로 내 소개를 시작해 보겠다. 


ISFJ-T. 그중에 특별히 강조를 하자면 극J다. 


여행에 진심이기도 하고 극J라서 여행을 갈 때 A안, B안까지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치밀하게 짠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에 큰 희열을 느낀다. 하루를 보내는 일도 내가 생각한 일과표 대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일정이 딱히 없어도 쉬는 것까지 계산된 것이기 때문에 즉흥적인 약속은 매우 싫다. 아마 많은 J들은 공감을 할 것이다. 갑작스러운 약속이 우리 J들을 얼마나 화나게 하는지 말이다!


그런데 극J인 나에게 엄청난 위기가 찾아온다. 

파워P의 대명사인 육아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극J와 파워P의 만남이라니, 육아가 나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존재인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육아가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보겠다. 


육아라는 아이는 내 생각대로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다. 매우 즉흥적이며, 맥락이 없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난 날은 피곤하니까 낮잠을 2~3시간씩 자야 되는데, 갑자기 1시간 만에 부스럭 소리가 난다든지. 마트를 갈 때, 운동할 겸 유아차를 끌고 가는데 마트를 가는 중간에 유아차에서 나오고 싶다고 생떼를 부려 무겁게 아기 띠를 하고 간다든지. 새 차를 뽑고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집에 돌아오려는데, 출발하자마자 똥을 싼다던지. 한 번은 교회에서 똥을 너무 많이 싸서 등까지 젖은 일이 생겼다. 급하게 교회 주방으로 데려가 김치 담그는 대야에서 목욕을 했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육아 경험을 토대로 극J인 나는 엄청난 부담을 느끼며 더 철저한 J가 되었다. 


도영이가 이유식을 먹던 시절, 요리도 익숙지 않은 내가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육퇴 후 야채를 다지고, 쌀을 불려 냄비에 죽을 끓였다. 죽이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었으니 도영이가 맛있게 먹어주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이유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도영이의 이유식 거부가 시작되었다. 도영이는 이유식을 먹을 때마다 입을 꾹 닫고 뱉어버리고 숟가락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울면서 이유식을 주방 싱크대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왜 안 먹을까. 육수를 끓이면 좀 더 단맛이나 짠맛이 난다고 하기에 귀찮지만 육수를 직접 끓여 이유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다 소용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봐도 이유식 거부는 시간이 답이라는 말밖에는 없었다. 2달 정도 이유식 거부를 겪다가 유아식으로 넘어갔다. 그러니 잘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또 안 먹다가 지금은 갑자기 밥을 잘 먹는다. 이유식 거부가 무색할 정도로 야채도 밥도 잘 먹는다. 


* 이유식: 영유아기의 아기들이 젖을 떼고 식사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먹는 죽과 유사한 음식.

* 유아식: 이유식 다음 단계. 일반 음식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드는 고형 제품의 음식.


이유식 거부 사건을 겪으며, '시간이 답이다.'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사례 말고도 육아는 시간이 답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 여럿 있었다. 이렇게 육아는 예측 가능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육아는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J들에게 더 가혹하지 않나 싶다. 


도영이와의 보낸 시간이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나의 육아를 되돌아보며 힘들었다고 느낀다. 아이는 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원인으로 힘든지도 모르고 밤마다 울며 괴로운 날을 보냈다.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에게 울면서 내 힘듦을 토로하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을 때, 육아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육아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문제 앞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두고 그 상황에 적응하며,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없다. 문제로 인해 내가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달라지는 것도 없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게 좀 더 지혜롭지 않을까. 인생도 육아와 마찬가지다. 인생도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고, 역경을 겪으며 오는 성장도 없을 것이다. 


여전히 육아는 나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긴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인생의 가치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육아가 부담이 없을 정도로 가벼운 존재였다면, 그 안에 있는 보물과도 같은 시간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때 이후로 나는 파워P인 육아와 친해지기로 결심했고, 지금도 여전히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육아가 너무 힘들다면 본인이 J가 아닌지 의심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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