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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프롤로그

by 봄아범


가끔은 나도 이해가 안 되는 나를 만난다.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을 하고, 다음에야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음과 행동을 감당하는 건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그날 밤도 그랬다. 토마토 파스타를 맛있게 과식한 아이가 갑자기 먹은 것을 게워냈다. 바닥에 흩뿌려지는 토사물을 치우고, 괜찮냐고 묻는 게 당연했다. 당연한 것을 하지 않고 멀뚱히 있는 나의 귀에 당연한 질문이 쟁쟁하게 들렸다.


“뭐 하고 있어? 어서 도와야지.”


그제야 몸이 움직인다. 발길은 아파하는 아이가 아닌 문으로 향한다. 손길은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아닌 문고리로 향한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30대 후반의 여름밤, 나는 가출을 했다. 이유를 찾아 헤매듯이, 목적지 없이 걸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고, 갈만한 곳은 지하철 역사와 버스터미널. 서너 명 남짓 남은 어르신들과 함께 자정 뉴스가 흐르는 TV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놀란 관계자의 표정이 나의 얼굴로 옮아온다.




‘당신 덕분에 일할 수 있었어. 이제는 내가 더 든든한 지원군이 될게.’


그 해, 아내는 승진했다. 퇴근 후에 아이와의 시간을 대부분 담당한 나였기에, 함께 이뤄낸 것 같아서 뿌듯했다. 서로 수고했다고 다독이며 나에게 건넨 카드 속의 문구.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날 밤은 중요한 행사 진행을 앞둔 전날이었다. 정부 기관의 연례행사이자, 추천을 해 준 지인의 면도 걸려있는 일이었기에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원고를 숙지하고, 흐름에 맞게 재구성하고, 그 전날 컨디션을 관리해야 했다. 그럼에도, 아이가 아프다면 병간호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마음을 잠식하니까 모두가 걸림돌로 여겨졌다. 음식을 토해내는 아이도, 도움을 토해내는 아내도. 지원군이 아닌 방해꾼으로 다가왔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를, 나만 생각하는 모습에 놀랐다.




돌이켜보면, 이미 아내는 나와 아이의 믿음직한 뒷배였다. 길지 않은 절대적인 육아시간을 밀도 있게 아이와 보냈다. 밤샘 근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밤을 아이가 잠들 때까지 지켰다.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아식을 만들고 남은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쪽잠을 자고 맞는 아침. 남편의 아침 도시락과 하원 때 아이가 먹을 간식, 저녁 준비를 거른 적이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아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따뜻함 덕분에 우리는 가족이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날 밤의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소년 봄아범과 터미널에서 가족에게 눈물로 돌아오던 봄아범을 토닥여주려 한다. 온전히 나를 만나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 넘쳐서, 부부의 아들로, 아내의 남편으로,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아내와 아이가 함께 키득거리며 읽을 이야기다. 아빠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구나.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표지와 아래 사진 속의 머리를 맞댄 두 사람처럼.


여행 중 아이가 차분했던 몇 안 되는 순간. 지금의 기록을 아내가 읽어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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