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만족 못했던 소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할 때, 모의 면접 중 하나에 한참을 고민했다.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을 말하는 것은 판에 박힌 대답이다. 지원하는 직종에서 성공한 사람을 말하는 건 진부하다. 그 때문에 면접자들은 종종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답변한다. 아빠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다른 스터디원의 천진한 표정이 부러웠다. 존경은커녕, 대화도 없는 아버지와 나의 무거운 집안 분위기가 생각났기 때문에.
나에게 말할 때 귀에 꽂히는 유난히 큰 목소리. 식사하실 때마다 항상 곁들이는 소주 한 병. 나까지 괜히 시원해지는(?) 트름. 저러다가 치아가 부러지는 것 아닌가 싶은 거친 양치질. 저러다가 토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가글까지. 나에게 아버지는 존경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나는 반대로 하면 딱 좋겠다 싶은 선생님이었다. 양치하듯이 시원하게 들어 준 보증. 국가와 함께 부도가 난 우리 집에 붙은 차압딱지. 사춘기 소년의 걱정을 불만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밤이 되면 유난히 더 어두운 반지하의 천장이 싫었다. 마음의 병으로 몸의 병까지 얹어 수술을 받는 어머니의 모습이 슬펐다. 원하지 않는 이사를 가면서, 친구들과 헤어져 우는 동생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분노는 단절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데시벨보다 더 크게 방문을 닫았다. 묻는 말에는 입을 닫았다. 무엇보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다.
겨우내 잠들었던 모든 것들을 깨우는 계절. 찬란한 날에 태어난 아기의 태명 ‘봄’처럼 새 생명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열었다. 오랜 시간 닫혀있었던 아버지와의 대화도 조금씩 물꼬를 틔었다. 손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당신이 산책할 때 봤던 장난감은 어디서 파는지, 출산 후에 얼마 안 되어 회사에 복귀한 아내의 건강은 괜찮은지. 종종 전화로 들려오는 질문들보다 아이를 보는 아버지의 웃음이 더 반가웠다.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은 표정은 집 안 전체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안고 웃는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나에게도 이렇게 웃어주셨던 적이 있었나.
초등학생 때를 떠올렸을 때,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넘치는 추억 중 하나인 운동회. 나에게는 근육통을 만들었던 줄다리기도 아니고, 점심 먹기 전 힘껏 던지는 공던지기도 아니고, 마무리를 장식하는 이어달리기가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만들어낸다. 왜 그런 구성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와 아이가 바통을 주고받는 계주였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 순서였다. 당시 나는 키가 크지도 않았고, 달리기도 빠른 편이 아니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건네는 바통을 잡고 무작정 달리는데 함성 소리가 커졌다. 뒤쳐지던 2반의 아이가 나를 거의 다 따라잡은 것이다. 이렇게 역전당하는 건가 싶을 때, 아버지는 이어받는 포인트보다 한 발 앞으로 와서 바통을 낚아채고 달렸다. 그 때의 싱그러운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힘있게 바닥을 구르면서, 가볍게 코너를 달리는 주법. 역전당할 뻔했던 순서를 공고히 하는 속도.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한 아버지가 나에게 달려왔다. 나를 안아 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청춘,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오늘도 공원을 한 바퀴 걷는다. 동네의 작은 공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반 걸음걸이로 1시간 남짓한 거리의 5km.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해도 아버지는 그 길을 걷는다. M자로 시작하여 윗통수까지 빠지는 머리. 세월을 피하지 못한 주름. 규칙적인 음주로 톡 튀어나온 배. 누가 봐도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마음은 여전히 싱그럽다. 어떤 날씨든 공원을 걷는 것처럼, 어느 어려움이든 일을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성실함, 그 자체였다. 보증을 잘못 서고, IMF로 퇴직을 하더라도 사업을 시도했다. 사업체가 문을 닫아도, 영업으로 일을 이어갔다. 기력이 쇠하는 순간은 온 지 오래지만,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아들이 당신을 초롱초롱하게 보던 아기 때도. 당신을 원망하며 밀치던 사춘기 때도. 취업에 성공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던 때도. 손주를 안고 서로 고생했다고 다독일 때도. 당신의 마음은 그대로였다. 가족은 하나이고, 나는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 그제야, 애써 닫아놓았던 아버지의 빛나는 부분을 들춰내고 마주한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는 모습.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바통을 이어받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