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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아범 일기 Jan 19. 2024

#7 여섯번째 복(福)

(640일째 기록)

 그거 오복(五福) 중의 하나야! 치아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한 마디씩 한다. 구순이 넘으신 할머니는 LA갈비를 뜯으실 정도로 이가 건강하다. 구운 오징어를 즐겨 드시는 아버지도 치과의 도움 없이 살아가신다. 유전자의 힘이 나에게도 미쳤는지, 교정 한 번 안 했는데 치열이 고른 편이다. 사랑니도 귀엽게 나와서 뽑지 않고 공생중이다. 3대를 이어온 건치의 유전자. 아이에게도 이어지길 내심 바랐었다.


미끄럼틀이 이렇게 위험한 기구일 수 있단 걸 깨달았던 주말.


 "쾅!"

 부딪히는 소리보다, 아이의 입에서 흘러 치아까지 번진 피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지난 주말, 어린이 박물관에서 와다다다 달리던 아이의 발이 턱에 걸렸다. 넘어지면서 미끄럼틀 모서리에 얼굴을 그대로 부딪혔다. 언제 다칠 지 모르니 눈을 떼면 안된다는 어르신들의 말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뒷모습을, 아내는 앞모습을 보고 있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버선발로 뛰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신발도 못 신은채로 아이를 들쳐안고 나와서 외쳤으니까. "도와주세요! 피가 안 멈춰요!" 무작정 나와 달리는데, 오른쪽 어깨가 뜨끈했다. 아이의 조끼와 아내의 손, 내 어깨죽지에 물드는 피를 어쩌지 못하고, 아이를 달래기만 했다.


 "괜찮을거야."

 의무실에서 아이의 피가 멎길 기다리며 되뇌었다. 말의 힘 덕분일까. 아이가 부딪힌 부분은 보호쿠션이 있었다. 다친 부위는 입술로 그쳤다. 조금만 위로 부딪혔으면 이가 부러졌거나, 빠졌을 거다. 당장 아이의 이를 확인했을 때 빠지거나 흔들리는 곳이 없었다. '괜찮을거야.'라는 말은 '괜찮아.'로 바뀌었다. 얼굴을 파묻은 내 어깨가 지혈제로 작용하여 피가 잦아들었다. 아내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와 서로를 다독이며 말했다.


조금 안정을 찾고 다시 놀다 지쳐 잠든 아기.

 "이만하길 감사해."

 그 동안,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들어하기만 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는걸까. 우울하고 지친다.' 혼잣말을 하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어려움을 마주하니까 모른체 지나갈 수가 없었다. 파도를 온 몸으로 막아내듯이, 위기를 직면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괜찮다고 서로 다독여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힘들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감사함을 찾는 것. 그제야, 임플란트가 필요없는 치아처럼 마음이 단단해졌다. 건강한 치아보다 더 중요한 것. 감사하는 마음. 그것이 여섯번째 복(福) 아닐까. 그 복을 찾고, 누리고 있으니 더 감사해졌다. 지혈 후에 유아차에서 새근새근 잠드는 아이의 입술이 빨리 낫길 기도하며.


+ 사실 오복에 치아 건강은 없다(!). 장수, 부, 강녕, 보람있는 봉사, 편안한 죽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오복이 함께하길.


#봄아범일기 #오복 #치아건강 #2080 #육복 #여섯번째복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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