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새롭게 만났다
반지하에서 살면 소리와 친해진다. 땅에서 들리는 소리를 제일 처음 만나는 곳에서 이십 년 이상을 살았다. 달걀을 파는 트럭의 오래된 엔진과 스피커 음향. 유치원이 끝나고 뛰어가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 아슬아슬하게 공을 차면서 달리는 중학생의 뜀박질. 몰래 빌라 뒤 화단으로 넘어가 담배를 태우며 뱉어내는 고등학생들의 욕설이 섞인 잡담. 오래되어 금이 간 벽을 연결하는 드릴의 굉음. 곧 천정이 젖어 물이 샐 것을 예고하는 굵은 빗방울. 정겨움과 불편함이 뒤섞인 속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소리가 있었다. 사락. 사락. 스스스. 스스스. 침대에 거꾸로 엎드려 책을 읽다가 벌떡 일어났다. 자전거 탄 풍경이 사박사박 소복소복 수북수북 내린다고 노래한 친구. 겨울과 가장 가까운 만남. 이만한 낭만이 있을까. 그날의 하얀 결정체는 바닥에만 쌓이지 않았다. 창문을 넘어 창틀까지 덮었다. 세상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건넌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던 동생과 함께. 친구들이 연락이 닿으면 학교 운동장에서. 그 누구도 없다면 혼자라도.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면서. 공원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눈이 온다! 눈이 온다고!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몽촌토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잔디밭. 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측백나무. 오히려, 혼자여서 좋았다. '나홀로나무'가 펼치는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때문에, 눈은 어떤 모습이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기뻐하기만 할 수 없었다. 도서관의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지 이 년 차. 주차장 관리 업무에 깨끗한 아스팔트도 포함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이미 낙엽을 쓰느라 가을 아침을 가득 채운 터라, 내리는 눈도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겨졌다. 그날의 눈은 모든 것에 쌓여 얼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 이용자인 시민들까지 미끄러지게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내가 두 번 엉덩방아를 찧었기 때문에. 곳곳에 뿌려진 염화칼슘보다 더 깊은 구석으로 침투하는 녀석을 이길 필살기는 없었다. 그저, 빗자루와 넉가래로 쓸고 밀어내는 것뿐이었다. 아니. 쓸고 또 쓸고. 밀고 또 밀어내도 그 위에 자리를 잡는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일 자고 일어나면 팔에 알이 밸 것 같았다. 허리가 꽤 묵직했다. 땅만 바라보던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눈이 온다고! 알았다고! 그만 오라고! 학생 때의 기쁜 외침이 멈췄으면 하는 토로로 바뀌었다. 그제야, 왜 어르신들이 눈이 올 때 한숨을 쉬는지 알게 되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환희만 하던 소년이 무섭게 내리는 눈을 걱정하는 청년과 닮아갈 무렵, 나는 소집해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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