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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an Apr 19. 2023

<제철 재료 비건 레시피> 두릅 된장 파스타

주연과 조연에 대한 생각


두릅의 맛을 처음 깨달았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서울에서 내내 살다가 근처 경기도의 학교로 가는 과감한 선택을 한 뒤,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고, 주말을 빼면 매번 저녁 식사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야 했다. 나도 그랬고, 친구들도 대부분 석식을 급식으로 선택했다.


나와 한 달 안에 무척 가까워진 한 친구는 급식 대신 도시락을 먹었다. 엄마가 일을 한다고 하셨는데, 점심과 석식까지 챙겨 오는 걸 보면, 엄마가 무척이나 부지런한 분이셨을 거다. 그때의 나는 무섭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긴 했다. 일을 하면서 딸의 두 끼 도시락을 다 챙겨주는 엄마라니.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판단하기 싫어 그런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친구 도시락의 반찬들은 꽤나 화려했다. 그중 한 번은 데친 두릅과 초장이 포함된 도시락을 가져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릅은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일 뿐이었다. 먹기는 했는데, 늘 고기 같은 동물성 단백질에 곁들여 먹었기 때문에, 본연의 맛은 잘 몰랐다. 두릅은 내게 딱히 인상적인 재료가 아니라, 늘 조연 같은 존재였다. 


친구는 가끔 석식 시간 전에 반찬을 꺼내 간식처럼 나눠주기도 했다. 그날도 가져온 두릅과 초장을 꺼내 나와 다른 친구에게 권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거절하는 법을 잘 몰랐던 나는 두릅 하나를 집어 초장을 찍은 뒤 입에 넣었다. 이게 웬걸. 두릅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잘 데친 두릅의 식감은 폭신했고, 쓴 맛과 단 맛이 적당히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이 났다.


그 뒤로 매번 두릅 철을 기다리게 되었다. 


내내 조연인 줄 알았던 무언가가 갑자기 주인공이 될 때가 있다. 두릅이 그랬고, 다른 많은 채소들이 갑자기 내 식탁 위 주인공이 되고 있다. 채소만이 아니다. 사람도 가끔 그렇다. 작년 봄, 나는 두릅을 열심히 먹었고, 어떤 남자를 가끔 만났다. 그는 4개월 뒤면 한국을 떠날 예정이었다. 여러모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웃을 일은 많았다. 똑똑했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엑스트라처럼 대했다. 내 인생에서 아주 잠깐만 존재할 사람처럼. 그리고 나의 판단을 확신했다.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웃고 있는 그를 보는데, 어떤 생각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웃는 게 왜 이렇게 예쁘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내게 같이 있고 싶고 자꾸 궁금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이미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계속 상처를 주었단 사실 때문에 자주 슬프게 되었다. 나의 오만한 판단이 미웠다. 


물론 내 인생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항상 주인공처럼 모실 순 없다. 그렇게 한다면 인생이 매우 피곤해질 거다. 하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하찮게 대하는 건 오만한 일이다. 두릅으로 파스타를 만들면서 그를 생각했다. 지난날이 부끄러웠고, 어쩐지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아니지만, 맛은 정말 좋았다. 두릅이 주연이긴 하지만, 들어간 재료들 각각이 제 역할을 잘 해준 덕일 것이다. 




두릅 된장 파스타 레시피


<재료>

두릅 5-7 줄기

마늘 2알

양파 1/4 

두유 190ml

된장 1/2큰술

표고 1

양송이 1

푸실리 1인분

페페론치노 가루 조금

올리브오일

소금 조금

후추



<레시피>


1. 야채들을 손질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냄비에 굵은소금을 넣고 물을 끓인 뒤, 끓는 물에 손질한 두릅을 밑동만 잠기게 넣고 1분 정도 끓인다. 그 뒤 전부 다 물에 넣고 잎 부분이 익을 때까지 조금 더 끓인다. 찬 물로 헹군 뒤 물기를 빼둔다.

3. 달궈진 팬 위에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르고 양파에 소금을 살짝 뿌린 뒤 중불에 15분 정도 볶는다. 양파가 캐러멜라이징 되기 시작하면 마늘도 넣고 같이 5분 정도 더 볶는다. 

4. 이제 두릅과 버섯을 넣고 볶다가 버섯이 익기 시작할 때쯤 두유와 된장, 페페론치노 가루를 넣고 불을 살짝 줄여 끓인다. 

5. 동시에 소금을 넣고 물을 끓인 뒤 파스타면을 삶는다. 평소보다 1분 정도 빨리 건진다.

6. 두유가 졸아들면 취향에 따라 소금과 후추를 더한다. 소금 대신 된장을 조금 더 넣어도 된다. 면수도 두 술 정도 넣어주면 좋다. 

7. 소스에 면을 넣고 1분 정도 더 끓이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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