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san May 02. 2023

우울할 땐 피자를 굽자

비건 화이트 소스, 홈메이드 토마토 소스 레시피 

비건 화이트 소스와 비건 모짜렐라, 캐러멜라이즈드 샬롯, 양파, 느타리를 올린 피자


오늘은 여기저기 써먹을 수 있는 비건 화이트 소스(간단 버전)와 생토마토로 만드는 진하지만 간단한 토마토 소스 레시피를 소개할 건데, 이와 관련된 우울 이야기를 안 쓰고 달랑 레시피만 적어버릴 순 없다. 정 레시피가 급한 분들은 맨 아래로 내려가서 레시피를 찾으시고, 우울한데 왜 피자씩이나 해 먹는지 궁금한 분들은 이 글을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우울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면, 당연히, 우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땐 자물쇠 달린 일기장이 유행이었는데 그곳에 죽고 싶다고 적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4학년 시절의 나는 달리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학교가 끝나면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동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가끔 놀이터도 한적하고 책도 재미없는 날이 있었고 꼭 그런 날엔 빌려둔 만화책도 비디오도 집에 없고, 동생에게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하고 싶어도, 동생도 친구를 만나러 나가고 없었다. 아무튼 팔자가 좋은 초등학생이긴 했다. 하지만 지루하고 나른한 건 바쁜 학원 생활만큼이나 어린이에게는 힘겨운 일이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결국 낮잠을 자기도 했다. 


4학년의 어느 봄 날도 꼭 그런 날이어서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잔 뒤 갑자기 잠에서 깼다. 온 집안이 고요했다. 아빠는 퇴근 전이고, 엄마는 어디를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집안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조용했다. 창 밖을 보니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꼭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사무치게 외롭고, 그래서 갑자기 슬펐다. 그때 느낀 감정은 외로움과 슬픔을 포함한 어떤 복합적인 것이었는데, 한 번 마음에 들어온 이 감정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다행히 엄마는 금방 돌아왔다. 동생을 데리러 나갔다 온 거였다. 아빠도 얼마 뒤 퇴근하고 집에 왔다. 집안은 다시 복작거렸지만, 내 마음은 계속 시큰거렸다. 


홀로 남겨지는 마음을 이해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리적인 남겨짐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남겨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10년 정도 인생을 살아오며 큰 문제가 없었던 친구 관계가 처음으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우울했다. 


그래도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땐 좀 괜찮았다. 특히 엄마가 동네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해 줄 땐 우울한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가게의 피자는 지금 생각해도 좀 특별했다. 특히 도우가 대단히 맛있었다. 겉은 기름에 튀긴 것처럼 바삭했고, 안은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맛있는 음식이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동생이 남긴 피자의 바깥 부분까지 집어먹으며 이 짧은 행복을 유지해보려고 했다.


가족에게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당시 겪었던 친구 문제를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그저 나에게 문제가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고, 눈물이 났고, 책상 두 번째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일기장 자물쇠 열쇠를 꺼내 일기장을 열고 우울함을 글로 옮겨 적는 일 말고는 달리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때 내 인생에 찾아왔던 우울은 주기적으로 다시 나를 찾는다. 어떤 시기에는 멀어지는 것 같다가도 또 갑자기 내게 달려들고, 파고든다. 한 번 우울과 깊게 만났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우울감과 쉽게 헤어지는 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생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소스, 비건 화이트 소스와 비건 치즈를 베이스로 한 피자


아니나 다를까 우울은 작년 여름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곤 아주 끈질기게 내게 파고들어 지금 내 마음속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예전엔 우울해도 사람들을 만나는 편이었지만 이번 우울은 아주 독해서 사회적인 에너지마저 갉아먹고 있다. 이 독한 우울과 지내며 알게 된 랜덤한 사실 하나는 반죽을 하는 게 마음을 약간 달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죽과 발효, 성형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반죽을 굽거나 찌는 등 조리를 하면서 집중력이 다시 살아난다. 결과가 좋거나 지난번 시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땐 자아효능감도 생긴다. 힘으로 무언가를 누르고 늘리고 뭉치고 또 누르는 과정 역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반죽기 없이 20분간 손으로 만든 동글동글 피자 도우


무엇보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는 기분,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나의 시간과 노동력의 결과를 온전히 내 손으로 통제하고, 내 혀로 만끽하는 기분은 일시적이긴 하지만 꽤 효과적으로 우울감을 상쇄해 준다. 어른이 된 뒤에 직장 생활을 하고 일을 하면서도 내 일을 내가 온전히 관리할 수 없다는 게, 돈 외에 다른 형태로 내 일의 결과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게 가끔 서글펐는데, 몇 시간은 들여야 완성되는 반죽 베이스 요리가 그 서글픈 마음을 달래준다.


근본적인 치유는 아니지만, 이 일시적 위안은 일상을 지속하는데 중요한 에너지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도우 만드는 순서를 머릿속으로 되짚어본다. 그리곤 이스트를 깨우고, 강력분을 꺼낸다. 가족과 앉아서 나눠먹던 동네 가게 피자를 생각하기도 하고, 작년에 함부르크에 가서 먹었던 맛있는 비건 피자를 생각하기도 하고, 그 피자를 먹게 해 준 사람도 떠올리면서, 올해 팝업에서 열심히 만들었던 포카치아 피자와 아직도 그 피자 정말 맛있었다고, 내가 답장을 잘 못해도 꾸준히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언젠가 사람들을 만나고 살뜰한 시간을 다시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반죽에 20분 정도 힘을 쏟는다. 


반죽이 발효되는 동안, 소스도 하나하나 다 만든다. 귀찮은 과정이긴 하지만, 이왕 반죽을 해버린 거 맛있는 피자를 먹을 거야,라고 사소하지만 결의에 찬 다짐을 하면서, 마늘을 다지고, 양파와 샬롯도 채친다. 토마토를 데치고 바질을 씻어 자른다. 왼손으로는 양파와 샬롯을 볶고, 다른 손으로는 다른 팬에 데쳐서 껍질을 벗긴 토마토와 마늘을 올리브유와 섞고 간을 한 뒤 뭉근히 끓인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적어도 지금 사는 동네에 있는 피자 가게들에서 나는 냄새보다는 맛있는 냄새라고 자부한다. 한 시간이 지나고 2배 정도 부푼 반죽을 여러 덩어리로 나눈다. 2차 발효를 하며 토마토 소스를 마무리하고 화이트 소스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간다. 지금이 대낮이라면 4시간은 발효를 할 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하지만 발효가 끝나는 대로 바로 피자를 오븐에 넣을 수 있게 재료들을 다 꺼내 준비한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으니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이탈리아 요리와 식당을 다룬 책을 꺼내 읽는다. 2차 발효까지 끝난 뒤 피자를 굽는다. 첫 판이될 도우를 얇게 피고 화이트 소스를 바른 뒤 비건 모짜렐라를 갈아 올린다. 캐러멜라이즈드된 샬롯과 양파도 잔뜩 얹고, 느타리 버섯을 올려 오븐에 넣는다. 2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다시 책을 읽다가 첫 판이 나오자마자 예쁘게 사진을 찍고 잘라서 한 입 베어문다. 맛있다. 고소하고 적당히 느끼해. 캐러멜라이즈드된 야채들이 주는 달콤함도 마음에 든다. 두 번째 판을 준비한다. 이번엔 남은 화이트 소스를 제일 밑에 바른 뒤, 위에 토마토 소스를 듬뿍 올린다. 그리고 또 비건 치즈를 갈아 더하고 남은 캐러멜라이즈드 샬롯과 양파를 쌓고 표고를 그 위에 예쁘게 둔다. 기다리는 동안 이번엔 피자를 먹는다. 도우가 고소하고 바삭하지만 쫄깃함을 위해선 더 연습이 필요하다. 우울해서 뭐든지 하기 싫은 상태지만, 괜찮은 피자를 만들어 먹고 나니 더 괜찮은 버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판이 나온다. 재빨리 준비해 둔 바질 잎을 올리고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은 뒤 아직 뜨거운 피자를 먹는다. 카옌 페퍼를 더해 매운 맛을 추가한 토마토 소스는 진하고 존재감이 강하다. 두 번째 판이 확실히 더 펑키하고 재밌는 맛이 난다. 잠깐동안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비건 치즈는 생략해도 충분히 맛있지만 더해주면 그것대로 좋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요즘 진짜로 우울하다. 원래는 극단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인데, 카카오톡에 쌓인 연락을 즉시 보는 게 힘들고 귀찮은 지경에 이르렀다. 알림이 오는 것도 부담스러워 방해금지 모드를 켜둔 상태다. 그래도 피자는 만들었다. 그니까 우울해도 피자는 만들어볼 만하다. 아니, 만들어보는 게 좋다. 3시간 정도 걸린 이 과정의 결과와 맛을 내가 오롯이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울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해볼 만한 일이다. 


내가 아직 도우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피자 도우 레시피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소스는 도우보다 훨씬 자신 있으므로 레시피를 공유해 본다. 화이트 소스와 토마토 소스 모두 피자뿐만 아니라 샌드위치, 샐러드, 파스타 등에 활용이 가능하다. 



<비건 화이트 소스 레시피> 


*참고로 간단 버전이다. 비건 베샤멜 소스 레시피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올리겠다.


재료

: 30분 이상 불린 뒤 물기 제거한 캐슈넛 한 주먹

마늘 1쪽

소금 1작은술

후추 

이탈리안 허브 믹스 (오레가노나 타임 등으로 대체 가능) 한 꼬집

화이트 와인 비네거 1/2작은술

물 3큰술

올리브오일 1작은술


레시피

: 다 섞고 믹서기에 곱게 갈면 된다. 더 짠맛을 원하면 소금을 추가해 한 번 정도 더 간다. 



<생토마토 소스 레시피>


*중간 크기 피자 2판, 혹은 파스타 한 번 해먹을 분량


재료

:완숙 토마토 3개 (작은 칵테일 토마토 6개도 가능한데 방울토마토로 만들면 너무 달고, 우리가 아는 소스 맛과는 조금 달라짐 주의)

마늘 2쪽

설탕 2작은술

소금

후추

발사믹 비네거 1/2큰술

이탈리안 허브 믹스 (오레가노나 타임 등으로 대체 가능) 한 꼬집

올리브오일 3큰술

바질 3잎 (옵션)

다진 양파 2큰술(옵션)

카옌 페퍼 파우더 혹은 페페론치노 파우더 1작은술(옵션)


레시피

1. 마늘이나 양파, 바질을 잘게 다져서 준비해 둔다.

2. 토마토 위에 칼로 십자 모양 칼집을 내고, 끓는 물에 넣고 1분 정도 데친 뒤 꺼낸다. 

3. 토마토 껍질을 벗긴다. 

4. 가열된 팬 위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양파를 올린 뒤 5분 정도 중불에 볶는다. 양파가 어느 정도 익으면 토마토를 올려 살짝 으깬 뒤 불을 조금 줄인다.

5. 발사믹 비네거, 설탕, 소금, 후추, 이탈리안 허브 믹스와 잘게 자른 바질을 넣고 토마토가 완전히 풀어질 때까지 천천히 끓인다.

6. 중간중간 저어준다. 간을 보고 필요하면 소금 등을 더한다. 매운맛을 원하면 카옌 페퍼 파우더 혹은 페페론치노 파우더를 이때 더해준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몬 파스타를 만듭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