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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an Apr 12. 2023

내 무조림과 소면 사리가 특별한 이유

나의 연애사와 매운 요리 이야기


점심으로 만들었다는 게 한이었다. 완벽한 안주였는데.


매운 양념이 있는 요리에 밥을 비벼 먹는 것도 좋지만, 소면을 말아먹는 것도 별미가 될 수 있다.

입 안이 얼얼해지는 매운맛과 묵직하고 고소한 탄수화물의 조화는 입맛을 다시게 하는 뭔가가 있다.


엄마는 가끔 매운 오징어볶음을 만들어주셨다. 밖에서 사 먹는 것처럼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할머니가 직접 말려 만든 매운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갔고,

집고추장에 잘 어울릴만한 야채를 아낌없이 넣어 그런지 자꾸자꾸 당기는 맛이었다.

건더기도 건더기지만 양념을 자작하게 밥 위에 부어 조금씩 비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운 볶음 요리는 내 연애의 장면에도 자주 출연했다.

사실 20대 시절의 연애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몇 가지 생생한 장면들이 있다.


여덟 살 많던-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아저씨를 왜 만났나 싶다가도, 30대가 된 입장에서, 30대면 또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마음도 생긴다.- 당시 애인은 20대 초반이 잘 모를만한 맛집을 많이 데리고 다녔다.

종로에 있는 유명한 낙지집에도 몇 번이나 갔는데, 맛있었지만 너무 매워서 자꾸 콧물이 났다.

모든 게 어색하고 어설펐던 만 21살의 나는 콧물을 닦아내며 화장이 자꾸 지워지는 게 싫어서 평소보다 밥을 적게 먹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긴 낙지볶음 생각이 간절했다.

이상하게 자연스러운 내가 되는 게 힘들었던 이 관계는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서 끝났다.

나는 결혼을 할 만한 나이도 아니었기에 그 문제가 대체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결정적으로 내가 결혼을 생각하게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선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인지했다.

그땐 힘들었는데, 지금 제일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정작 음식이다.

아무튼 그 사람은 소주를 잘 못 마셨다. 매운 한식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도 같이 못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나도 같이 살기 싫다고 말할걸.

그런 식으로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제대로 나인 적이 없었다.




영국에서 잠깐 살면서도 매운 볶음 요리와 연애는 끊이지 않았다.

한국 요리의 냄새를 싫어하는 스리랑카 주인 부부를 피해

방에서 당시 애인이 만들어준 닭볶음탕도 한동안 자주 생각이 났다.

맛있었는데 먹으면서 좀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 음식의 위상이 조금 달라진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10여 년 전에는

한국 음식을 만들거나 김치를 먹으려면 눈치를 좀 봐야 했다.


닭볶음탕은 작은 방에서 멀티쿠커로 만든 것치곤 무척 맛있었다.

영국은 사 먹는 건 비싸도 마트에서 장을 보는 건 저렴한 편이었다.

닭볶음탕 안주와 함께 비싼 소주 대신 오히려 저렴한 진과 보드카를 잔뜩 마시고 취했는데,

나는 당시 애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편했고, 나한테 잘해줬다. 지나치게 잘해줬다.

매번 요리를 해주고, 새로운 집을 알아봐 주고, 이사를 할 때는 귀찮은 일까지 다 처리해 줬다.

그런 식으로 빠르게 내 삶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때의 나는 외로웠기에 그 사람의 빠른 속도를 받아줬다.

하지만 빠른 속도를 조심해야 한다. 그 사람은 결국 양다리를 걸쳤다. 그리고 그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앞두고도 나를 만나려고 했다. 마음의 속도가 빠른 게 잘못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내 빠른 마음, 그 사람의 빠른 마음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지.



영국에서 두 번째로 만났던 사람과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공교롭게 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한국 남자였는데,

이 사람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딱히 결심을 한 건 아닌데, 그놈의 “오빠” 소리가 싫었다.

내가 오빠라는 말을 뱉는 것도 싫고, 남자가 자신을 오빠라고 지칭하는 것도 싫어졌다.


이 사람과는 비싸고 맛없는 것들을 주로 먹었다.

요리를 못하진 않았는데 아마도 돈이 많아서 사주는 게 편했던 것 같다.

그때 영국의 한식당들은 대체적으로 맛이 없고 비쌌다.

그래도 한식을 먹고 싶어 하면 꼭 한식당에 나를 데리고 가서 매운 요리들을 시켜줬다.

한식당의 음식들에선 제법 익숙한 맛이 났지만 한국에서 먹는 것들보다 전반전으로 맛이 맹맹했다.

그리고 나도 편하고 맹맹한 일상에 익숙해졌다.

이전까지 내 안에 있는 속물근성을 부인하던 나는 이 사람의 재력 앞에서 내 속물근성을 인정해 버렸다.

재력도 매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재력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지킬 게 많아 바쁘고,

가진 게 적은 사람은 지킬 게 상대적으로 적으니 덜 바쁘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 불편한 권력관계가 생기기 쉽다.





이제 나는 누가 사주는 매운 요리를 먹는 대신, 누가 만들어주는 것을 즐기는 대신,

내가 직접 매운 요리를 금방 만들어낸다. 내가 나를 위해 요리하는 이 과정에서

내가 20대의 어리숙한 연애 속에서 찾지 못했던 것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된다.


그건 아마도 “나”인 것 같다. 내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연애로 확인받았던 시절을 지나,

나는 이제 누구를 만나든 안 만나든, 이렇게 요리로라도 조금은 나를 말할 수 있다.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자꾸 묻고 싶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은 아마도 평생 내 곁에 머물면서

나를 약하게 하려고 기회를 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의 입에서 확인되는 나보다,

내가 오늘 어떻게 사는지,

스스로에게 무엇을 만들어주고 먹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건 이제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만든 무버섯조림 소면말이는 그래서 특별하기도 하지만

양념맛도 좋았고, 무를 먼저 익혀서 무의 식감도 남달랐다.

대낮부터 안주를 만들어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양념장은 두루 활용이 가능하니 레시피를 꼭 확인해 보시길!




무버섯조림 소면말이 레시피


재료


양념


고춧가루 3큰술

고추장 1큰술

간장 3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다진 생각 1/2작은술

참기름 1큰술

물엿 혹은 올리고당 1큰술

유기농 설탕 1/2큰술

매실액 1/2큰술

물 200ml



나머지 재료


무 1/4 (1.5cm 정도 두께로 자르기)

새송이 버섯 1개

대파 반 대

양파 1/4

자른 양배추 1/3 컵

채 썬 당근 1큰술

소면 1인분

포도씨유 약간



레시피


   

양념 재료를 넣고 잘 섞는다.

야채들을 다듬고 썰어 준비한다.

양념을 바로 쓰기보단 최소한 30분 정도 야채들을 재어둔다. 전날밤 양념장을 만들어 재어두는 게 더 좋다.

가열된 팬 위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재어둔 야채 중 무만 먼저 꺼내  양쪽을 5분 정도 익힌다.

무가 어느 정도 노릇노릇해지면 새송이 버섯만 따로 꺼내 무와 같이 굽는다.

무와 버섯 모두 표면이 노릇노릇해지면 남은 양념과 야채들을 전부다 팬 위에 두고 같이 익힌다. 양념이 너무 졸아들면 물을 조금 더 넣는다.

무가 다 익어갈 때쯤 소면을 준비한다.

무버섯조림과 소면을 같이 접시 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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