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언젠가 죽는다. 불멸의 존재가 아니기에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후, 온갖 질병이 인간을 괴롭히고 생명을 앗아가지만, 그에 맞서는 인간의 노력은 의학 기술로 이어져, 어느덧 ‘백세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인간 대부분은 채 100년도 살지 못하면서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질투를 하고 실수를 범하고 화를 내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한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순간마다 끊임없는 선택의 벽에 부딪힌다. 두 갈래 길 중 한쪽을 택해야만 하는 선택의 연속. 정답은 없다. 어느 쪽 길로 가야 올바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한쪽 길을 택한다.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 길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아무도 채워주지 못하는 상대적 상실감과 자신이 택한 길에 대한 확신 없이 후회만 거듭한다.
그렇게 후회를 거듭하는 주제에, 우리는 또 수만 가지 기준으로 인간 유형을 나누기까지 한다. 그중, 인생의 큰 그림을 토대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꼼꼼하게 점검하고 실천해 나가는 계획형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다.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느 폴더 하나에는 '계획형 인간'이라는 폴더가 있고, 철두철미한 계획에 따라 인생을 설계하고 실행하며 한치 흐트러짐 없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겪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온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살아왔다.
뭔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꿈과 희망에 따라 계획이 세워지면, 그 계획을 제대로 실천해서 꿈을 이루게 될 텐데, 꿈과 희망은 늘 가득하지만 그에 따른 철저한 계획이 뒤따르지 않는 그런 무난하고 평범한 삶.
하지만 그런 비(非) 계획형 인간인 나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살면서 맞닥뜨린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새로운 장(章)을 펼치는 순간이 되었고, 그 새로운 장을 제대로 꾸리고 싶다는 꿈과 희망이 마구 샘솟는다. 그리고 그 꿈과 희망을 우선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누고 싶어졌다.
우선 내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어를 꼽아보자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영화'였다.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대사를 말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다양한 형태의 연기를 하는 배우가 등장하기도 하고, 도심의 북적거림이나 대자연의 광활한 풍광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편집하고, 소리를 가다듬어 완성된 영상을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투영하는 영상 매체.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뜻에서 ‘모션 픽쳐 Motion Picture’라고도 하고, ‘시네마 Cinema’, ‘무비 Movie’, ‘필름 Film’, ‘피처 Feature’ 등 그때그때 용도에 따라 다른 표현을 쓸 수 있지만, 결국 귀결되는 것은 ‘영화’, ‘영화예술’이다.
워낙 고민 자체를 깊게 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긴 하지만, 제대로 채우고 싶은 나의 새로운 장에서 ‘영화’를 빼놓고는 스토리 전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영화 자체로는 인상 깊지 않았지만, 56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애정의 조건 Terms of Endearment(1983)>의 억지스러운 속편 <애정의 조건 2 The Evening Star(1996)>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전편에서 사랑하는 딸 엠마(데브라 윙거)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엄마 오로라(셜리 맥클레인, <애정의 조건>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가 자신의 인생을 총망라하는 스크랩북을 만들기로 한다.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슬펐던 기억, 자기 자신에 대한 소회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모은 일종의 회고록. ‘나 이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야’라고 알릴 수 있는 한 개인의 역사.
세상의 모든 영화가 모두 감동적이거나, 뼛속 깊이 아로새기는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째 심드렁하게 봤던 영화 <애정의 조건 2>에서 나의 새로운 장을 열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그래, 일단 주제는 정해졌다. 그다음, 제목은 무엇으로 하지. 그러다 사회초년생, 낙하산 ‘대리’로 ‘영화사’에서 시작한 이십여 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아니, 그보다는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직급을 붙여 호칭하지 않는 회사에 소속된 지 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조 대리’로 불리던 시절, 몇 편의 외화를 개봉하면서 함께 일했던 마케팅 회사 대표님 C를 당시 다니던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뵌 일이 있었다. 기쁜 마음에 인사를 드리자, C 대표님 또한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해 주시면서,
“조 대리, 진짜 오랜만이에요! 아, 이제 대리가 아닌가.”
당시 내 직급이 대리였는지, 과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조 OO님’으로 불린 지가 꽤 되었을 때니까.
C 대표님을 오랜만에 뵀던 때도, 나를 ‘조 대리’라고 기억하고 불러주셨던 일도 어느새 꽤 오래전 일인데, 문득 그때 그 시간, 그 공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결정했다.
콜로세움이 내려다 보이는 고급 펜트하우스에 사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연극평론가인 65세 젭 갬바르델라의 유유자적한 삶을 그린 파올로 소렌티노 Paolo Sorrentino 감독의 영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 The Great Beauty(2013)>를 떠올리며, 새롭게 인생 제2장을 열어가는 영화사 조대리의 영화로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