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태어난 나는 아주 어릴 적 내가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이 궁금할 때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 후가 생일이었던 어린 내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새하얀 눈이 마치 밀가루처럼 하늘에서 나풀나풀 떨어지던 그날 밤, 눈과 함께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내려온 너를 내가 손으로 받았다.”
물론 나의 각색을 거치긴 했지만, 만약 내가 나의 자식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저런 문장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딘가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사실과 전혀 관계없는 나의 탄생 이야기 덕분이었는지, 말을 떼기도 전부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어른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막연하게 영화 혹은 영상과 관련한 모든 것에 관한 관심이 일찍부터 시작된 것 같다. 오죽했으면 글자도 TV를 보면서 깨쳤달까.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나의 관심이 다른 것에 생겼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정답 없는 의문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지 않은 길, 하지 않은 일 등 자신이 실행하지 않은 다른 것에 대해 늘 궁금해한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누군가 미리 쓴 각본에 따라 살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편집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부분을 임의로 잘라낼 수도 없고 삭제할 수도 없다. 태어나서 처음 자신의 창조주인 부모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때마다 우린 누구를 어떻게 만나고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미리 알 방도가 없다.
영화 속에 존재하는 타임머신도 현실에는 없다. 과거의 무언가를 되돌리기 위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일은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다.
만약 그때 내가 그랬다면,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는 소회와 후회와 반성과 발견과 재발견이 뒤범벅된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그 자체일지 모른다.
그래서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상상력으로 구현된 판타지나 공상과학(Science Fiction) 영화를 보며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 속 상황에 몰입하나 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에 섞여 아버지의 두 손위에 떨어진 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실제 상황이 아니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