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映畵) 로운 인생이 시작되다
영화관 안의 조명이 꺼지고, 필름이 돌아가든 디지털 파일이 재생되든, 본 영화가 시작하기 전 아주 잠깐의 완전에 가까운 어둠이 내 주위를 감싸는 순간이 있다. 잠시 후, 스크린에 빛이 들어차면서 이제 영화가 시작된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 사대문 안 단관 개봉관 시절도, 요즘의 복합영화관에서도,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에 느껴지는 떨림은 같다. 언제부터 그 떨림에 매료되었는지, 대체 어떤 계기로 그렇게까지 ‘영화’와 사랑에 빠졌는지 또렷이 기억할 수 없다.
아주 어릴 적 어른들 틈에 껴서 어느 극장의 간판을 올려다봤을 때였는지, 사대문 안 극장 앞을 지나칠라치면 상영 중인 영화 간판 못지않게 예정작 광고에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두고 그 앞을 떠나지 못할라치면, 어른들은 대체 내가 어떤 연유로 이렇게까지 영화에 관심이 많은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새 영화와 친해지고 있는 나를 기다려주시곤 했다.
그런데 얄궂게도 초등학교 시절에 장래 희망을 어디다 적어서 낼 때, 보무도 당당하게 ‘연예 담당 신문기자’라고 나의 꿈을 밝힌 적이 있었다. 왠지 연예 담당 신문기자가 되면 영화배우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나의 진로를 그렇게 정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연예 담당 신문기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랍시고 신문가판대에서 팔던 주간지 『TV 가이드』를 사서 읽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친구 중 누군가가 담임선생님에게 내가 학생이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연예 주간지를 읽는다고 일러바치는 일이 발생했다. 마치 죽을죄를 지은 듯, 당장 퇴학이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겁에 잔뜩 질린 내게, “조 대리는 나중에 연예 기자가 될 사람이니까 괜찮다”라고 말씀해 주신 그때 그 선생님의 평소답지 않게 자상하던 말투와 온화한 표정이 문득 떠오른다.
결국 나는 연예 담당 신문기자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1988)>의 토토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영화 <벨파스트 Belfast(2021)>를 연출한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 <파벨만스 The Fabelmans(2022)>의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처럼 영화감독이 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