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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Jul 18. 2023

S#1-4. 비디오를 너무 많이 본 청소년

'나 상가' 비디오 가게

최근 재건축 이슈로 뉴스에 자주 등장한 초대형 아파트단지에서 초중고 12년을 살았었다. 4개 단지로 구분되어 단지마다 상가가 있었는데, 단지 정면 입구 쪽에 ‘종합상가’, 2단지 쪽에 ‘나 상가’, 3단지 쪽 ‘다 상가’ 중, 내가 살던 3단지에 인접한 다 상가 대신 조금 떨어진 나 상가에 있던, 상호는 기억나지 않는 비디오 가게가 내 단골집이었다.


중1 때였나, 첫발을 디딘 이후, 2~3년 정도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일등단골로 드나들었던 그 비디오 가게 사장님께서는, 10대 중반이 될까 말까 한 주제에 영화 선택의 스펙트럼이 꽤 넓었던 나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고, 충분히 자주 드나들어서 단골이 된 이후에도 결코 말을 놓지 않으시고 존대해 주셨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다 보러 다닐 수 없었던 내게 나 상가 비디오 가게는 최신 영화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빌릴 수 있는 보물창고였고,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1988년 한국 영화 흥행 1위 작 <매춘(1988)>, 포스터 비주얼에 반해서 어느 비 오던 날 밤에 시민 게시판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떼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게 했던 <애란(1989)>, 1989년 대종상 8개 부문 수상작 <서울 무지개(1989)>, 이문열 작가 원작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강수연, 손창민 배우 주연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등, 주로 ‘연소자 관람 불가’ 등급의 한국 영화 최신작들을 섭렵했었다.


직장인이 된 후, 중고등학교 동창 누군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갔다가, 당시 기준으로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때, 중2 즈음 한창 친하게 지냈던 친구 H가 나를 보더니, “너희 집에서 <악령 속의 사춘기(1979)> 볼 때 진짜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크게 당황했었다.


내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를 돌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악령 속의 사춘기>라는 영화를 봤던 것 같기는 했다. 그것도 나 상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와서, 호기롭게 친구들까지 초대해 다 같이 왁자지껄하게 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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