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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Jul 18. 2023

S#1-3. 나 홀로 극장에

하이틴 씨네필의 탄생

어린 시절, 1년에 두 번 있는 큰 명절 연휴를 기다리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친척들이 둘러앉아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이모가 나와 이모의 아들이자 나의 사촌 동생과 함께 사대문 안 개봉관에서 상영 중인 ‘명절 특선 영화’를 보러 데려가 주시곤 했다.


BEST 고집, 앞서가는 극장, 당신의 음향 감각과 영상 수준을 알고 있습니다
     

70mm 대작을 볼 수 있는 초대형 스크린과 2,000석을 갖춘 충무로 대한극장의 자신만만한 홍보문구는 요즘 IMAX, 4DX, SCREEN X, 슈퍼플렉스, MX 등 훨씬 발달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특별관들을 압도하는 듯한 거장의 기개가 느껴진다.



그때는 모바일이니 인터넷이니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신문물이 없던 때라, 일간지 영화 광고에 포함된 상영시간표를 보고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아카데미 9개 부문 수상작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1987)>를 ‘X-마스 & 신년 특선영화’로 내걸었던 대한극장 앞에는 영화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었다.


또 언젠가는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스카라 극장에서 상영 중인 니컬러스 케이지, 숀 영 주연의 <아파치 Fire Birds(1990)>를 보러 가던 길,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던 중앙극장에서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1990)>을 상영 중이었는데 명절답지 않게 한산한 극장 앞 풍경을 보며, ‘흥행작’으로 보이는 <아파치>를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었다. 만약, 드로리안을 타고 그해 그 시각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주저함이 없이 중앙극장으로 가 <아비정전>을 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태어나서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나의 내면에서도 설왕설래가 있지만, 태어나서 처음 ‘혼자’ 극장에 가서 본 영화는 분명히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에서 개봉한 존 맥티어넌 감독, 브루스 윌리스, 앨런 릭먼 주연의 <다이 하드 Die Hard(1988)>였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종로3가까지 한 번에 가는 시내버스로 대략 1시간 남짓 거리였을까. 비교적 간편한 코스였지만, 그렇게 혼자 시내로 가는 일 자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마도 영화 <다이 하드>를 보며 느낀 감흥보다,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3가 단성사로 갔다가 오는 왕복 코스가 내게는 더욱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 떠올려도 이렇게 설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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