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수술 후 죽을 먹으면서부터 조금씩 변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변비가 오면 안 되니 하루 세 번 식후 약 처방으로 변을 무르게 해서 내 보내도록 하니 그런 거라 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퇴원 후에도 계속 그런 현상이 있어 병원에 전화를 하니 잠시 약을 중단해도 된다 했다. 그러나 약을 안 먹으니 다시 변비가 와서 복부팽만감에다 답답함이 있어 다시 약을 먹으면 화장실을 하루 열두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하느라 진이 빠진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이리 힘드니 당분간은 먼 길 가거나 오랜 외출은 안 하겠다 하지만 퇴원 일주일 후 첫 병원 방문은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가는 동안 자가용으로 가니 수시로 볼일도 보면서 가면 되겠지 했는데 다행히 갈 때는 속이 부글거리지도 꾸르륵 거리지도 않아 안심을 했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 아들집으로 가는 도중에 일이 터졌다. 장 수술은 반드시 식후 조금은 걸어주라 하기에 차를 둘째 아들 아파트 주차장에 두고 걸어왔는데 그 걸어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밀려 나오는 변에 황당해서 진땀이 났다. 보통은 손을 잡고 걷는 큰 아들인데 그 손의 온기도 참을 수 없어 손을 놓고 휘적휘적 급히 앞장서 걸으니 아들이 엄마 괜찮냐? 하는데 괜찮다며 입을 앙 다물었다. 신호등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 그리도 길 던 지!... 둘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밀려 나오는....ㅠㅜ
현관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옷 챙겨 바로 욕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기저귀 위에 팬티 위에 화장지도 두툼히 깔았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신혼의 아들 며느리집에서 대형참사가 날 뻔했다. 한참을 수습하고 샤워하고 욕실에 오래 있으니 아들이 다시 엄마 괜찮냐? 며 다시 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지난주 병원방문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서 다시 두 번째 변실금 사고가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남편은 내게 화장실 안 급하냐? 묻는데 나는 내가 필요하면 얘기한다며 휴게소를 그냥 통과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갑자기 배에 가스가 차고 신호가 오더니 급한 상황으로 돌변했다.
어쩌나? 나 지금 급하다며 네비를 보니 좀만 참으면 졸음쉼터가 있다고 한다.
의자에서 최대 막을 자세로 앉아서 안절부절못하기를 정말 분초를 참으며 졸음쉼터에 도착해서 겨우 무사히 볼 일을 보았다. 쉼터화장실은 고속도로 휴게소보다 조용한 데다 널찍한 장애인 화장실처럼 되어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차 타고 다시 가다가 다시 휴게소가 나타났고 이번에도 괜찮냐? 는 남편에게 나는 마치 '전쟁과 평화'를 골고루 체험한다며 웃었다. 장 속이 고요 잠잠할 때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가 갑자기 변의가 느껴지고 터져 밀려 나오려 할 때 그 당황스러운 기분은 바로 생 땀나는 초를 다투는 시간이 되고 마니 ㅠㅜ...
그런데 그 평화의 시간은 잠시였고 다시 신호가 와서 두 번째 졸음쉼터 화장실을 달려갔다.
휴지와 물휴지를 쥐고 뛰다시피 걸어가는데 화장실에 삥 둘러가며 줄 쳐진 게 보인다. 남편은 폐쇄된 화장실이라며 다음 휴게소가 멀지 않으니 그리로 가자 한다. 그런데 급할 데로 급한 나는 화장실건물 공터 옆의 칸 막이가 눈에 들어오고 남편더러 나 지금 못 참는다며 망 보라 하고 바로 공터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일촉즉발의 이 일을 어쩌라고 ㅠㅜ
남편도 기가 차 하는데 얼마 전 몽골초원에서의 자연 화장실을 들먹이며 기어이 나도 그렇게 볼일을 보고야 말았다.
이 외에도 집안에서의 변실금은 거실에 있다 주방에 있다 화장실로 뛰어가는 일을 이삼일에 한 번씩 겪는 요즘이다.
사람들은 내가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전화로 밝은 목소리로 얘기하니 아니 요양 중 환자가 맞냐며 의심 나니 한번 가 봐야겠다는 말도 한다 ㅎㅎㅎ
그렇다. 나는 막무가내 긍정에다 묻지 마 낙천주의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변실금을 겪을 때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몰라 잠시 암담해지기도 한다.
지금 브런치에서 대장암 후기를 많이 읽고 있다. 어떤 작가님은 수술 회복 되고 나서도 몇 년을 불편과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한다. 나는 대장암 수술 전 평소에도 남들보다 변비와 급변을 오래 겪은 사람이기에 장담할 수 없다 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식이요법과 운동 등 모든 면으로 최선을 다 하겠지만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기꺼이 감수하며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5년을 지켜봐야 한다는 암이지만 내겐 암 못지않게 '변실금'이란 이 변수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지난 9월 8일 담당의사 선생님 말씀이 나의 병기는 다행히 암조직이 림프절을 뚫지 않은 1기라 항암치료를 안 해도 된다는 말씀에 너무나도 다행스러웠고 감사했다. 지금도 항암치료를 받느라 고생하시고 더러 고통스러운 환우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그러니 이 정도 변실금쯤이야 하고 감내하려 한다.
외부활동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나 제한될 것이다. 계획했던 여행도 다 취소했다. 당분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내 집에 사람 초대하기 등은 못하는 체력이 되었지만 그래도 브런치 덕분에 글 산책 글 마실도 다니고 내게 가장 큰 의미인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어 그나마 큰 다행이다.
'글'을 통해 일상을 하루하루 순례여행하듯 하며 ㅎㅎ
그렇게 소통하고 공감하고 서로서로 북 돋워주며 갈 수 있으니 이 방식도 이 시간대도 썩, 참 괜찮게 여겨진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더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불과 두 달 전에 알게 되어 브런치 작가로서 등록하고 활동하고 있지만 대장암 판정과 수술만 아니었어도 더 활개 치며 국내외 안팎으로 다녔을 나에게 지금은 오히려 이러한 쉼이 안온한 나의 새 보금자리처럼 느껴지고 있다.
이제 몸이 없으면 나도 우주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지금은 그 무엇보다 몸 건강 회복을 일 번으로 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상 루틴으로 당분간은 칸트처럼 살기로 했다. 화장실 가서 볼일 보고 양치하고 나서 물 한 컵 마시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식전 과일 먹고 30분 있다 요구르트식 등등 다 정해진 시간에 암환자 식단대로 정해진 시간에 하루 세끼를 먹고, 걷기 운동 산책하고, 화장실 가서 잘 내보내기, 그것이 지금 나의 생활 목표요 시계 루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