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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06. 2023

몸 마음 리셋

깨끗이 말끔히 초기화~~*

슬기로운 환자생활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집에 와서 남편이랑 아들이 해 주는 세끼 식사와 오직 위로 먹고 아래로 내 보내는 일에만 집중하며 잘 지내고 있다.

아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건 '운동'이다. 섭생 못지않게 장 운동을 위해 걸어줘야 한다. 

그래서 낮엔 가급적 실내운동을 하다 저녁엔 시원해진 바깥으로 나가 잠시라도 걷다 온다.


나는 토끼띠로 올해 환갑이니 인생 육십을 산 건데 내 생 이렇게나 조. 용. 히~~ 편히 지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엄마는 일단 부엌 출입금지' 라며 음식냄새도 못 맡게 하는 아들, 차 타고 내릴 때 일일이 차문 열어주고 비 오면 우산 받쳐주고 혹 낮에 나가면 부채 들고 햇빛 가려주고 ㅎㅎ 

내가 나 요즘 대통이었던 ㅂㄱㄴ보다 더 귀인대접받는다 하니 아들 왈, 기왕이면 엄마, 선덕여왕으로 해라 한다. (내가 경주김 씨니 ㅋㅋ)




30년 직장생활을 명퇴하자마자 친정어머니를 모셔와서 8개월 돌봐드리다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나서 인생 버킷 리스트로 떠났던  혼자 5개월 여행이 작년이었다. 그 후 둘째 아들 결혼시키고 올 상반기에는 첫 여행기 책 내느라 3 달간 골몰했었고 책 내고 바로 중앙아시아와 몽골로 한 달 여행을 떠났다. 물론 다녀와서 바로 암 선고를 받았지만 그렇게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이 달려왔던 거 같다. 시집은 일남팔녀 외며느리로서 이제껏 명절, 기제사 다 치루며 살아왔다. 


나에게 늘 일은 밀려왔었고 내가 스스로 자청하며 작은 몸뚱아리가 부서져라 그냥 몸을 아끼지 않고 쓰며 살아왔었다. 우리 시대에 자주 하는 말,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은 정답이라 외치며 ....

해서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 여기며 그리 살아왔었다. 그러니 쉴 새 없이 움직였고 그때는 그것이 다 옳았고 맞았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편히 주저앉아 쉬어보니 너무나 좋다. 솔직히 너무 좋아서 다시 일어서질 것 같지가 않다 ㅎㅎ

 아침이면 남편이 차려 주는 과일, 요구르트, 미숫가루 등 가벼운 식사, 그리고 하루 두 끼 정성껏 차린 건강식을 앉아서 그대로 받아먹으니 너무 행복하다.


오늘아침 복숭아,사과,자두 과일접시/ 아들이 에어프라이로 연어구이



빨래도 못 개게 하니 그냥 집안일은 올 스톱이고 멍하니 있다 보니 이전 생각이 난다.

퇴근하면서부터 집 가면 뭐 할지 머릿속에 다 세팅하고서 현관 들어서자마자 바로  부엌으로 가 쌀 불려놓고 눅눅해지기 전 베란다에 널었던 빨래 걷어놓고 그러고 나서야 옷 갈아입고 부엌으로 가서 식사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머릿속에 할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해 놓고 시차공격이란 말까지 쓰면서 그렇게 분초를 다투며 살았던 시절, 어떻게 작은 몸으로 그렇게 직장 다니며 살림하며 멀티플레이어로 다 하고 살았을까 싶다. 






 인생은 타이밍이란 말을 노래를 부르며 살았는데 그도 맞다.


일할 때 놀 때 쉬어갈 때로 다 때가 있는 것이라는.

농사도 농부가 씨 뿌릴 때와 김매어주고 수확할 때로 다 때가 있듯이 

그래서 절기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고 그를 모르면 '철 모르는' 농부, 

'철 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하다.


지금 나는 내 좁은 머리로는 여행도 더 하고 뭐도 하고 계획이 있었지만 

이렇게 잠시 쉬어가면서 보니 지금 내게 이 '쉼'이 얼마나 필요했던가! 

깊이 감사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무거운 여행 가방 끌고 다니면서 '쉼, 자유, 평화'를 외쳤었는데 

나는 지금 내 집 안방에서 그 세 가지를 다 누리고 있다. 

실제로!


진정한 , 모든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부엌, 청소, 빨래로부터 자유- 몸을 부산하게 안 움직이니 마음이 무엇으로부터 홀려있었고 묶여있었는지 이제 비로서 깨닫는다. 사람은 내면으로부터 해방되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지는 만큼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이제 묶인 것이 없고 무얼 해야히하며 집착하는 것도 없고 집착이 없어 걸림도 막힘도 없으니 두려움도 없고 편안하고 평안하다. 

몸도 마음도


이렇게 수술 후 먹는 것을 정화하면서 몸도 정화되고

분주하고 번잡하던 마음이 쉬니 마음도 정화되면서 고요해지니


몸과 마음이 절로 리셋되고 있는 시간이다.



ps: 이러니 암도 변장하고 온 축복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아직은 섣부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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