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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05. 2023

초보가 젤 무섭습니다

못 말릴 초보 간호사 ㅠㅜ

대장암 수술 후 삼일 째 낮잠을 달콤하게 잤다. 며느리가 준 핫팩을 손에도 쥐고 허리에도 깔고 가벼운 밍크 담요를 덮고 아주 포근하게 잘 잤다.

그런데 자는 동안 간호사가 혈관 주사로 4시간마다 진통제랑 가래 제거제를 주러 와서 건드렸다. 그래서 잠에서 깼는데 주위가 온통 축축했다. 자는 동안 마치 온천수에 몸을 담근 듯 따뜻했던 것이 소변 줄이 벗겨져 위아래 옷이랑 허리 복부 벨트에 시트까지 온통 홍수 바다였다 ㅠㅜ


이게 뭔 일이야 하며 기다란 호스줄을 쥐고 어쩔 줄 몰라하다 남편에게 옷부터 가져오라 해서 옷을 갈아입으려 해도 침대 시트부터 갈아야 한다 하니 벗고 있을 수도 없고  수술부위 주위에 붙여 놓은 패드까지 다 젖어 간호사에게 그것부터 갈아 달라 했다. 

그런데 간호사가 가더니만 함흥차사다. 어정쩡한 자세로 대충 가리고 있으니 한참 만에 와서는 같은 사이즈 패드가 없단다. 그럼 어쩌라고? 아니 병원에 패드가 없다니 말이 되냐며 한마디 하고 그럼 복대라도 다른 걸로 가져오라 다시 보냈다. 그리고 남편에게 기저귀 사 오라 해서 기저귀 차고 옷을 대충 갈아입었다.


와중에 간호사도 없이 나를 젖지 않은 한 귀퉁이에 두고 침대 시트 갈고 혼자 옷 갈아입히느라 남편이 애를 썼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다 내가 기저귀 갈아주고 했었지만 남편에게 내 기저귀 갈게 한 건 처음이라 우픈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어쩔? 급하면 제일 만만한 사람이 옆에 간병하는 배우자니 말이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나 온 간호사 왈 지하마트까지 내려갔는데 이번엔 복대가 큰 사이즈가 없어 작은 사이즈밖에 없는데 괜찮냐? 한다. 어차피 허리에 찰 벨트인데 사이즈가 뭔 대수 냐며 나도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게 그녀를 내 보내고 남편이랑 기분 전환도 할 겸 밖에 나가 잠시 걸었고 걷고  오다 우리 병동 간호사실을 지나오는데 아까 당? 했던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 신속하게 처리해주지 못한 탓에 나는 어정쩡, 당황한 포즈로 한참을 기다렸어야 했고 와중에 남편이랑 실랑이도 했었다. 간호사가 안 오니 어서 지하 마트로 내려가서 기저귀부터 사 오라는 나와 간호사가 와서 소독하고 패드 처치하는 걸 보고 내려가겠다고 고집부리는 남편 사이에 오고 간 옥신각신이었다. 

결국 간호사는 안 와서 내 말대로 되었지만 패드와 복대 찾으러 멍청하게 돌아다니는 걸로 시간을 지연한 그녀와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 폭발하지 않고는 안 될 거 같았다.

그래서 좀 연식이 되어 보이는 간호사에게 내가 아까 소변 줄이 빠져서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겪었고 그런데 병원에 거즈 패드가 없다고 간호사가 오지 않아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떨어야 했었고 등등을 얘기하며 당장 소변 줄도 빼든 지 어떻게 하라고 환자를 이렇게 자괴감이 들게 하고 힘들게 해서야 무슨 간호를 한다 할 수 있냐며? 언성을 높였다.


소변 줄은 원래 그날 오후 저녁에는 빼기로 되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물론 의사 선생님이 한번 더 정식 오더를 내려야만 할 수 있겠지만 할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기에 그리 말했었다. 그랬더니 서너 간호사가 숙덕 거리더니 알았다며 소변 줄 빼 주겠다 하고 죄송하다 한다.

결국 오줌 줄이 빠져 홍수가 난 건  내 잘못인 지 누구 잘못인지 몰라도 나를 담당했던 그 간호사의 미숙함과 어리 버리함으로 생긴 해프닝인데 다른 간호사들에게 화풀이를 한 셈이 된 면도 있다. 

그 미숙한 M간호사는 보기에도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혈압 재고 당 체크, 체온 체크만 로봇처럼 하는 데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센스도 없는 편이었다. 남편은 저런 아가씨가 간호사 소양 체질은 아닌 거 같은데 직업 선택을 잘못한 거 아니냐며 참 안타깝다는 말도 했었다. 정말 상황 대처력이 평균치 이하의 순발력이었다.


 나중에 나도 소리 지른 데 대해 미안한 마음도 있어서 물어봤다. 앳되어 보이는데 몇 살이냐 하니 24살인데 근무한 지 2달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아~! 그러면 그렇지 하며 나도 속으로 웃었다. 성격적으로  좀 둔한 데다 완전 간호 무경험에 초짜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또 한 번은 한밤중에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놀라 깨니 바로 그 초보 간호사다. 컵에 물을 한가득 넘치도록 따라서 들고 '환자님 왜 약을 안 드셨어요? 언능 일어나서 약 드세요"  한다. 내가 내일 CT촬영 있어서 지금 물 마시면 안 돼요, 하니 자정까지 오 분 남았다며 먹어도 된다 우긴다. 

내가 그 약은 진통제라서 하루 세 번 먹고 자기 전 한번 더 먹는 건데 나는 자기 전에 아프지 않으면 안 먹겠다 하니 다른 간호사가 괜찮다고 한 거라, 하니 아 그래요? 하며 물컵을 내려놓고 나간다. 

그러는 사이 옆에 쪼그려 자던 남편도 뭔 일인가 하며  일어나길래 나는 ' 아 난 저 간호사가 무섭다. 과연 무서운 초보다!' 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병원에서 내가 먼저 짜증을 부리곤 좀 미안해서 다시 상냥하게 군 간호사도 있었고 회진 때마다 긴장하며 기다렸던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그 초보 M 간호사가 나의 병원 생활 열흘 동안 최 강적이었다.
이제는 집에 와서 웃으며 생각하니 모쪼록 그녀가 하루하루 병원 일에 잘 익숙해지고 없던 센스도 생겨서 슬기로운 간호사 생활 잘해 나가길 빌어본다.

주말에도 나와 근무하길래 점심밥은 먹었냐? 니 일이 너무 많고 하도 밀려 밥도 못 먹었다고 하던 그녀는 아직도 어린 티가 팍팍 나는 안타까운 초보 간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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