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대장암 수술 후 환부 보호차원인 지 고무튜브를 항문에 부착해 놓았다. 처음엔 몰랐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물감에다 통증까지 느껴지니 상당히 거북했다.
수술 후 사흘부터 죽을 먹기 시작하니 간호사는 대변보았느냐 묻는데 아니 막대기로 막아뒀는데 어찌 보느냐하니 그래도 삐져나온다 한다. 결국 변이 막대기 주변으로 흘러나오고 ㅠㅜ
처리하기도 어설픈 데다 막대기 끝이 오줌 누면서 힘주느라 튀어나오니 앉아있기도 불편하고 아팠다. 바로 앉지도 못하고 걸을 때도 어기적거리며 걸으니 정말 삶의 질은 급격히 추락한다.
아픈 데다 불편하니 체면도 없다.
이제는 스스럼없이 집도한 박사님께 나 그거 항문에 있는 거 빼 달라하니 하루만 더 참으라 하신다. 결국 5일 후 아침 전문 간호사가 빼주는데 일단 퇴원 환자 우선으로 돌봐 줘야 하니 오전은 지나야 한다 한다. 나는 안 된다고 오후에는 손님(아들과 며느리) 와서 안 된다고 제발 오전 중으로 해 달라 간청하다시피 하고 결국은 해결했다.
튀어나온 막대기 주변도 그렇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기 망정이지 아님 침대랑 옷이 다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15센티 막대기를 묶어둔 실밥을 칼로 잘라 내는데 좀 아팠다. 너덧시간 암 수술은 마취로 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간단한 시술도 눈을 질끈 감아야 하니! 아 병원에선 사소한 것도 다 힘들다.
정말 인간이 안 먹고는 못 사니 먹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일단 먹었으면 그를 내 보내는 것의 중요성을 철저히 백번 실감하는 이번 병원 생활이었다.
간호사가 일단 오늘은 씻지 말라며 엉덩이 주변을 물휴지로 깨끗이 닦아주고 나중엔 남편이 더 섬세히 닦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시원하던 지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 외쳤다.
결국 행복은 감각적 쾌락, 정신적 즐거움, 영혼의 기쁨만이 행복이 아니다. 그 보다 우선적으로 불편함을 해소한 후에 오는 마음의 평안함 이 진정 더 원초적 행복이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하루였다 ㅎㅎ 고상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걸 우선시 여기며 제일로 여기던 마음에서 완전 땅 바닥에 엎드려 납작해진 기분이었다. 이제야말로 한 면으로 치우쳤던 내가 제대로 보고 균형잡고 가려나보다 싶었다.
수술 후 5일 만에 얻은 이 불편을 해소한 큰 해방감은 정말 인간으로서 물리적 신체적 제약, 구속으로부터 얻는 해방감이었지만 결코 정신적 자유감 못지않은 행복이었다.
아픈 사람에게 무엇이 행복인 지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통증 없는 일상과 건강을 말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도 피곤함으로부터, 배 고픔으로부터, 먹고 씻고 자고 배설하는등등 단순한 행복을 소소하게 제대로 누리고 깨달을 줄 안다면 우리는 늘 행복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야말로 지속적인 행복감으로 늘 충만하고 감사하는 생활이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영원히 행복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다 갈 것이기에.
그렇게 오전에 해방되어 오후가 되니 사촌언니가 이쁜 드레스를 입고 지하철,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호박죽과 과일 깎은 통을 들고 병원 로비에 와서 전화를 했다.
뜻밖의 방문에 신이 나서 내려갔다. 친정 사촌들과는 모두 한 가족 형제처럼 각별하게 지내고 자주 본다. 아프기 불과 2달 전에도 고모들과 사촌들 스무 명이 내 집에 와서 함께 일박 이일을 보내기도 했다.
좀 있다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왔다. 착한 아들과 마음씨 깊은 며느리지만 효도도 가르치는 거라 여기니 장모님 회갑 겸 모시고 가는 해외여행에 잘 갔다 오라고 봉투를 건넸다. 며느리가 알뜰해서 좋고 사돈들도 점잖아 좋고 나도 다시 건강해져 좋으니 두루 모든 게 감사했다.
이번에 대장암 수술을 하면서 배운 게 많다.
나는 늘 깨달음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며 정신적인 것을 우위에 두고 살았기에 그간 몸을 경시하면서 살았다.일남 팔 녀 대가족 시집생활이나 교회 다닐 때나 그 이후에도 내 몸 아끼고 돌보는 일은 늘 차후로 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이제 몸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는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몸과 마음, 정신과 육체 둘 다 균형 있게 돌보며 조화롭게 살다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진정으로 아끼고 돌아보며 살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