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23년 8월 한 달은
대장암 판정 이후의 진행과 입원, 수술, 퇴원으로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한달 동안 겪었던 오르락 내리락 고비와 진행상황을 이제 좀 정신을 가다듬고 기록해두려 한다. 그리고 갑작스런 내 발병소식에 음으로 양으로 응원해주신 가족과 친지 분들께 이렇게 적는 걸로나마 내 마음의 감사의 증표를 남기고 가고 싶다.
나는 8월 20일 입원하여 수술도 잘 받고 어제 30일에 퇴원하였다.
지난 겨울 둘째 아들을 결혼 시키면서 나는 주위에 우리 시대에 맞는 시어머니가 되겠다며 큰 소리 쳤었다. 애들 보러 올라가도 굳이 소꿉장난 하는 것 같은 애들 집에 안 자고 호텔에서 자고 애들 얼굴만 보고 오련다고. 그런데 그런 내 말과는 다르게 이번에 입퇴원으로 오가며 병원 가까운 아들 신혼 집에 나흘이나 묶었다.
인생은 내 스타일 안 구기고 내 고집하는 스탈대로 살아가지지만 않도록 설정되는 모양이다.
암튼 그렇게 좁은 곳에서 큰 애랑 남편이랑 다섯 식구가 오불거리며 정말 가족애를 진하게 느꼈다.
밥을 사 먹을 때도 엄마 위주 식단으로 샐러드 바 샤브집이나 우리 콩 두부집으로 데려가주는 아들과 잠자리를 편하게 해 준 며느리를 보며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진 않았다는 안도감을 가졌다. 특히 딸이 없는 내게 화장품,샴푸,슬리퍼 나중에 춥다니 쇼올이랑 담요, 양말, 편한 마스크까지 챙겨보낸 며느리의 살뜰한 마음과 세심한 챙김이 모든 게 대충인 나에게 같은 여자로서 그렇게 든든하게 여겨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족들 보살핌을 받으면서 8월 22일 수술날, 수술실 입장하니 내 바로 위 침대 천정에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카톡으로 친정올케가 보낸 거랑 같은 구절이라 더 새겨진다. 나는 이삼십대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성경도 닳도록 읽었으나 나중 사십대에 진리가 나를 자유케하리라~면서 교회란 담장밖을 나와 나름 다른 종교도 두루 섭렵하면서 영성공부를 해 온 편이었다. 그래도 오랫만에 성경구절을 대하니 특히니 수술을 앞두고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만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Do not fear
I am with you.
이 상황에 더 이상 명료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었다.
첫 번째 다가와서 질문하는 수술실 간호사 말은 따뜻한 봄바람 같이 나긋하고 부드러웠다. 그 후도 대 여섯번 내 이름을 묻고 무슨 수술을 받으러 어느 교수님이 집도하는 지등을 묻는다. 아마도 마취 들어가기 전 환자의 의식상태를 체크하는 듯 했다. 그리고 따뜻한 담요가 좋았다. 마치 온증탕 소독을 한 듯 따뜻하면서도 약간 축축한 담요가 더욱 포근했다.
그렇게 수술대 위로 옮겨졌다. 흡입으로 마취가 되는 듯 크게 숨 쉬라 해서 아 이제 나는 몇 시간동안 천국여행이나 하면 되겠다~~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게 수술준비로 1시간 넘게 걸려서 완전 마취된 후 12시 55분에 수술 들어가서 4시 55분에 수술이 종료되었다고 병실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가 가고 병실 화면에 떴다 한다. 요즘은 수술실 앞에 의자가 없으니 보호자는 병실에서 개인화면을 보고 기다린다. 오히려 그게 마음 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편이랑 연차낸 아들, 며느리랑 큰 아들이랑 네 명이 그렇게 밖에서 수술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다. 아마도 수술시간동안 남편이 혼자 병실에 있었다면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를 생각하니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2시간 걸려 와 준 큰 애와 둘 다 회사 연차까지 내고 와준 둘째와 며느리가 정말 고맙고 대견했었다. 남편도 수술 후 내게 그리 말했다. 이럴 때를 위해서 자식이 필요한 거 아닐까 하고.
그렇게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어난 후 병실에 올라오니 6시 30분이었다. 특이한 건 나는 진통제만 맞고 무통주사는 안 맞았다. 처음 무통주사를 주는데 메스껍다고 하니 멈췄고 그 후로도 계속 안 맞았다. 그런데 통증은 견딜만 했고 특별히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 더러 통증을 잘 견딘다는데 평소 나는 작은 통증에도 오바를 하며 엄살을 떨고 잘 참지 못한다.
뇌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제는 수술이라는 큰 일을 치뤘다는 내 생각과 안도감이 감사함으로 덜 통증을 느끼게 했으려나? 싶기도 하다.
면회가 안 되는 애들에게 손 인사 사진찍어 보내고~~
통증은 지나갈 만 하나 수액 영양제 지혈제등 주렁 주렁 달고 며칠 뒤 빈혈기가 있어 칼슘약까지 모두 주사바늘로 주입, 4시간마다 진통제등을 다시 놓으니 팔이 퉁퉁 붓는다. 이 팔 저 팔 옮겨가며 맞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뇨약을 먹긴 하지만 평소 만보걷기로 관리를 하는 편인데 이 곳에 와서 며칠은 영양제가 바로 투입되니 쫄쫄 굶으면서 당조절이 안 되어 생전 안 맞던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니 억울하기도 했다.
수술 전날이랑 수술 후 4일동안 멀건 밥물과 동치미국물을 미음이라 주면서 못 먹다 5일만에 흰죽이랑 반찬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우리 식으로 의식주든 미국식으로 식의주든 정말 사람에게 먹는 것이 일번으로 중요한 건 맞는 거 같다. 에너지 공급원 이상의 정서,심리적 효과도 있기에 말이다. 영양제가 고단백으로 넘쳐서 인슐린 주사까지 맞는데도 배는 고프고 삶의 질이 확 떨어지는데 흰죽에 반찬 두세가지가 금방 내 삶의 풍미로 다가오니 그도 좋은 체험이었다.
그리고 나서 병원에서의 하루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오는 시간인 지라 하루가 다르게 소변줄과 피주머니 마지막 항문을 가리던 보호막대기까지 빼고 나니 정말 날아갈 듯 했다. 하나씩 제거 될 때마다 그런 자유,해방이 없다.
몸의 구속이나 장애뿐 아니라 돌이켜보면 우리의 정서적, 심리적 장애도 마찬가지일 거다. 예를 들면 두려움이란 감정도 한 국면 씩 뚫고 나갈 때 그것이 정녕 새끼줄이었음을 알 때 환호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새끼줄을 뱀인 양 착각하며 살고 그 두려움때문에 때론 정면돌파를 하지 못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끌려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육신의 장애처럼 마음의 장애를 하나씩 넘을 때 마다 반야심경의 암송처럼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로 두려움이 없어지니 원리전도몽상 하여 최고의 깨달음에 멀지않다 본다.
이제 내 삶에서 8월의 한 마당 연극이 끝났다.
나는 내가 창조해가는 삶이 매 번 내가 연출자요 주연이며 감독이요 시나리오 작가라는 말에 동감하는데 이번 8월의 연극 주인공들은 가족이었다. 가족애와 지인들 사랑으로 힘입어 치뤄낸 한바탕 큰 무대였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감사한다.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창가 병실은 신의 한수였다. 애들과 식사를 한 후 잠시 카페에서 쉬다 입원했다. 항암 안해도 된다는 소식에 아들이 감사하며 하늘을 보니 무지개가 떴다고 지금 내 마음이라며 찍어 보내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몸을 경시하지 않고 마음과 같이 균형있게 잘 돌보며 살아가야겠다 생각한다. 그렇게 몸 리셋 마음 리셋해서 더 연장 받은 시간 가운데 나누며 서로 돌아보며 그리 살다가야겠다고 비 온뒤 더욱 맑아진 하늘을 보며 이제 바람결이 달라진 가을 초입에 서서 다짐해봤다.
수술후 조직검사 결과 다행히 병기는 1기로 나와서 내심 마음 졸이던 남편이랑 할렐루야를 외쳤다. 상처와 종양크기는 컸으나 반면에 림프관 핏줄로 전이된 것이 없는 깨끗한 상태였다 한다. 실비보험 하나도 없는 내게 항암치료 면제는 이 또한 엄청난 심리.경제적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이요~~
모두가 감사로움이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