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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ug 06. 2023

사랑 앞에서는 모두가 감사하다~암 조차도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인생에서

나는 7월 25일 그간 미뤄뒀던 종합건강검진을 했다. 검진 결과 위, 대장 내시경 결과 대장에 4센티의 혹이 있다고 다. 마침 보호자실에 와 있던 남편이랑 같이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전날부터 고생한 금식과 물 마시기에 지친 나는 본죽에서 내가 좋아하는 호박죽, 팥죽을 사 가지고 와서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당장 대장암에 좋은 음식을 찾아서 미역과 아몬드, 마를 갈아서 마시라고 하는데 내가 아직 모르잖아~의사왈 조직검사 나와봐야 한다고 했는데...하니 남편이 버럭~! 한다. 어찌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듣냐고!


남편이 들은 버전은

~ 크기와 훼손정도를 봐서 암인데 조직검사 나오면 확정하겠다 였고

내가 들은 버전은

~ 혹이 있으나 조직검사 결과 봐야 암인 지 아닌 지 알 수 있다~였다.


이렇게 의사의 똑 같은 말을 각자 알아들은 우리말 한 끗 차이가 크고 순간 얼굴이 흙빛이 된 남편과 내시경 마취에서 덜 깨어난 건지 무덤덤했던 나와의 간극차이가 마음의 명암을 달리했다.

평소 막무가내 낙천주의, 묻지마 긍정파인 나도 암이란 소리는 들었지만 ....암튼 내가 생각해도 나는 가끔 2프로 부족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서 이틀 뒤에 확실한 암이란 걸 판정받고 아빠는 두 아들과 단톡방을 열어 엄마의 상태를 알리고...전화가 온 큰 아들,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혹시~아들이 무슨 말을 들었구나 짐작은 하는데....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니....ㅠㅜ


나는 죽음은 단순히 장막뒤, 커튼 뒤의 세계일 뿐이라 믿고 있고 평소에도 사고사 아닌 암이 걸린다는 건 축복이다~적어도 자신의 인생정리, 마감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이런 말도 자주 했었는데....근데 막상 30대 아들의 오열 앞에선 나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상급병원으로 가라고 지시하는 의사말을 따라 일단 용하다는 의사 선생님을  아들이 부랴 검색해서

용인 세브란스 대장 전문의 선생님께 8월 1일 바로 진료 예약을 했다.

가서 CT랑 다시 온갖 검사를 다 하고 8월 4일 검사결과를 보고 수술 일정을 잡고 내려왔다.

수술은 8월 22일 하게 된다.


4센티 혹을 보고 암 선고받고 수술일정 받기까지...불과 10일 동안 쏜살같이 일어난 일들인데

그 와중에 번개처럼  지나가는 생각들, 얼핏 죽음에 대한 검은 그림자와 애들과의 뭉클한 감정들이 많아

정신없이 보낸 거 같다.


엉뚱하게도 암 선고받고 첫 번째 든 나의 생각은  아~ 나 남미여행 예약해 둔 거 어쩔?~이었다.

내년 2월에 예약금까지 지불한 남미여행...그러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들, 해야 할 일들이 많아~에서

가족 친지에게 암잉아웃~ 암인 거 알리는 어렵고 힘든 일, 그리고 두 아들과 몇 차례 눈물바람, 그리고

나서 이제는 정말 마음이 덤덤해졌다.


찾아보니 암이란 게 이제 흔한 병이라 수술하고 다행히 전이가 없으면 항암치료는 안 해도 되고

개복 아닌 복강경 수술로 갈 거라 하니.... 어쨌든 암임에도 감사할 뿐이다.


대장암 증상이 미미하다지만...지나고 보면 아 그게 그거였구나 하게 된다.

작년 5개월 혼자 여행할 때도 그랬고 지난  6월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한 달 여행할 동안도 내 유일한 여행 아킬레스는 불규칙한 배변습관이었다.

배가 살살 아프다 잦은 화장실 찾기와 갑작스러운 배변필요에 항상 어디 가면 화장실 위치부터 파악하는 습관도 생겼다. 과민성 대장염 같은 증상과 복부 팽만감등이 오래토록 있었지만 그런데 그게 대장암인 줄은 몰랐었다.


이제부터라도 몸을 잘 체크하고 관리하며 가라는 신의 한 수 경고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나의 암선고를를 계기로 가족의 사랑을  확실히 느끼며
우리는 '하나'임을 절대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나에겐 이야말로 암이란 불행중 감사한 일이다.

차까지 내고 병원에 따라온 아들과 며느리

한 쪽이 아프면 다른 한 쪽도 고생이다 ㅠㅜ 나의 병원진료를 기다리는 남편


두 아들과 며느리는 내가 비형 간염 보균자에 당화 혈색소 높은 당뇨환자에 폐결절까지 있다는 소식에  수술을 못 받거나 전이가 있을까 봐 며칠 마음을 졸이다 마지막 검사결과 확인날 안심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말에 다시 울먹거렸다.


평소에는 아들들이라 딸 가진 부모들과는 소통법도 다르다 했는데 엄마가 아프다니 두 아들이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어 그저 고맙고~~ 이 사랑에 힘입어 잘 이겨내고 나도 더 큰 사랑으로 나누며 세상을 살다갈 수 있길 바래본다.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우리네 인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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