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Toulouse 여행을 마칠 즈음에나 들를까 했던 곳에 예상보다 빨리 왔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검색하던 중 3분의 1 가격에 나온 뱅기표가 있어 바로 예약해 버렸다. 어쩌면 이 또한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은 심경이었다. 여행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내가 살던 추억의 곳으로 안내해 주는....
뚤루즈는 나의 이십 대 절반, 5년을 살았던 곳이다. 머물렀다 하기엔 긴 기간이라 그냥 살았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억에 남는 장소이니.
그때는 그랬다. 처음 나온 외국이고 80년대 중반은 아직 해외문명이 낯설 때였고 반공연수도 받고 나온 유학생들은 서유럽은 가능해도 동유럽 여행도 금지되던 때였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미뤄뒀던 동유럽, 동남유럽을 많이 갔다. 김포공항발 비행기가 소련 상공을 못 지나니 알래스카를 경유해서 21시간이나 걸려 파리에 도착하던 시절이었다.
암튼 오기 전부터 설레었다. 90년에 떠나온 이후로 한 번도 안 가 봤으니... 어떤 감정일 까, 나의 이십 대를 소환하는 장소, 그냥 무덤덤히 변하지 않은 도시로 그냥 보게 될까, 그 시절 그 사람들 떠올리며 회억 하는 추억이 새록 떠오를까~등등
호텔 로비에서 물어 내가 살던 기숙사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다. 3년 기숙사 살고 2년은 나와서 아파트와 프랑스집에 살았는데 그래도 처음 도착해서 살았던 기숙사가 가장 기억났다. 없던 지하철이 생기고... 어쩐지 그때보다는 길이 넓어진 느낌도 들고... 지하철 역에 내리니 동서남북 감이 안 온다. 할 수 없이 강 방향을 물어 뙤약볕에 한참을 걸어가니... 아... 나뭇잎 사이로 철교가 조그맣게 보였다. 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난다.
저 녹색 철교다리 위를 오가며 강 건너편 까지노 Casino(마켓)에서 바게뜨빵을 사서 뜯어먹어며 오던 다리, 버스 시간 맞추려 큰 귀고리를 덜렁대며 뛰어가던 길, 어떨 땐 힘 없이 지쳐 또박또박 혼자 걸어오던 길~~ 강변에 나무들이 그때처럼 물 그림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이런 강을 보는 거 자체가 그땐 내게 정신적 풍요로움을 주었다. 그전에 내가 살던 한국지역에서는 그렇게 늘 강물이 한결같은 곳을 보지 못했으니 그것 자체도 신기했었다.
기숙사 지역 들어가니 나무들이 여전하다. 건물도 발코니와 도색만 좀 다르고 그냥 그대로다. 그것 만으로도 반갑다. 내가 살던 꼭대기 아래 4층에 마침 머리만 보이는 누군가 베란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가 보면 이상하겠지만 사진도 찍어둔다.
잠시 나무에 기대어 앉아 건물을 바라보다 왔다 간 기념으로 깔고 앉은 모자랑 배낭 사진을 찍었다. 밥을 먹던 식당이랑 다니엘포쉐 기숙사 앞의 간판, 이곳에서 검은 반바지 차림으로 찍은 풋풋한 사진이 있는데~하면서 찍어본다. 불현듯 세월은 빠르고 아무것도 아닌 듯 그냥 지났는데 사람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어졌다.
인생전체가 신비로운 아직은 몽환적 아름다움이고 어디로 튈지도 모를 가능성만 가득했던 이십 대, 가끔 경상도 말로 툭툭 임팩트를 날리는 나를 누군가는 흑진주 같다 했는데 ㅋㅎ 그 흑진주가 이제는 얼마나 다듬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원석의 아름다움만은 여전히 간직했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기숙사 건물 안으로도 한번 들어가 보려는데 버튼식으로 바꿔놓아서 겉만 본 것으로 만족하고 기숙사 뒤편 숲으로 가 봤다. 산책 때 가끔 왔던 곳인데 이곳 역시나 바뀌어있다. 그때는 그냥 울창한 야생숲과 개울물이었고 공장 건물 같은 것이 있던 장소인데ㅡ 일명 게이숲 ㅎㅎ 게이들의 접선장소였다 한다. 나 더러 그기 왜 가냐 해서 게이숲이면 정말 안전해서 간다, 왜~했다. 실제 남자들이 만나 얘기하다 데이트하러 사라지곤 하는 걸 봤지만 일반 동네주민들이 주로 산책하던 곳이다.
지금은 길도 번듯하게 도로식으로 닦아놓고 전쟁 시 사용했던 공장건물에 대한 역사 소개사진도 있고 없던 시계탑도 생긴 곳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개 목욕시키며 산책하는 분, 동네 할아버지들과 얘기 좀 나누고 돌아왔다. 외국인이 찾아갈 곳은 아닌데 나를 보면 왜 여기 왔냐 싶을 거고 나도 한 때는 이곳 현지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노라며.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왔다. 너무나 익숙했던 이름, 아직도 잊으래야 잊을 수 없던 이름의 장소를 찾아가 본다. 쁠라스 윌슨, Place Wilson 윌슨광장이다. 시내에 오면 항상 앉아 쉬던 곳, 이제 가니 엄청 붐빈다. 아이들 타는 회전목마까지 생겨 호젓한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그냥 왁자지껄한 도시의 중심이다. 구석에서 자기 음악 연습하는 사람들, 잔디밭에 누워 주무시는 노숙자님, 벤치에 노부부, 아기엄마들, 젊은이 주로 여행자보다는 뚤루쟁, 뚤루젠느 들인데 꽉 차 앉을자리도 없었다.
광장에서 시원한 분수 소리와 얼음 넣은 오렌지 착즙주스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이제는 동상 머리 위로도 올라가 쉬는 비둘기들 그 모습 빙긋 웃으며 담아봤다.
예전 동선 따라 카피톨 광장 가는 길, 카피톨 뒤편 광장에도 지하철역이 생기고 큰 나무들이 심겨있다. 아이들 물놀이 분수가 있어 다시 신나는 소음이 가득하다. 도시가 예전에 검은 스카프 두른 할머니들이 조용 조용히 걸으시던 모습과 고즈넉함으로 내게 기억된다면 이제는 아이들과 주민들을 배려한 공원도 엄청 많아져서 더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온다.
카피톨광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도시의 시청 중심광장인데 축구 같은 경기를 하고 있다. 임시경기장을 만들어놓고 주변에서는 맥주 마시며 보고 난리다. 놀라서 이거 자주 하는 거냐니 그런 건 아닌데 며칠 도시 축제행사 일환으로 이렇게 하는 거라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이 삼십 년 정확히는 그곳에 간 86년 이후로 36년이 되었으니 암튼 유럽이고 프랑스니 안 변했겠지~하는 나의 상상과도 다르다. 그래도 안 변한 건 역시나 유유히 흐르는 가론느강물과 오래된 건물이다.
다시 동선 따라 퐁 네프로 가 본다. 프랑스 어느 도시에라도 있을 Pont Neuf는 단지 New Bridge 새 다리란 뜻이다. 기숙사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면 항시 그 강물 따라 시내로 왔었고 강변에서 한국 유학생언니가 준 원피스를 입고 교회 갔다 오면서 찍은 사진이 있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고 지금 보니 강폭이 제법 넓다. 가론느강 상류지역이라 그런 지 뚤루즈를 Haute Garonne라고도 한다.
Toulouse는 파리, 마르세이유, 리용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흔히 얘기한다. 마르세이유는 항구도시고 리용은 잠시 가 봤는데 공업도시라 그런 지 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반면 뚤루즈는 남서불에 위치하면서 건물의 독특한 붉은색으로 이전부터 Ville Rose 장미의 도시로 불렸는데 프랑스적인 것을 체험하고 싶은 분들은 오셔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 작은 도시나 마을도 이쁘지만 파리를 이미 가 보셨고 갈 필요가 없으신 분들에겐 음식과 문화등 두루 체험할 괜찮을 여행지 destination이다.
그리고 나에겐 이십 대 처음 온 외국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서'가 되는 두루 특별한 곳이다.
내가 머물 때도 그랬고 지금도 뚤루즈는 대학도시다. 도시 인구가 45만 명인데 학생인구는 14만 명이다. 학생 천국이라 해도 좋을 젊은 도시다. 뚤루즈 대학이 1229년에 설립되어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유럽의 대학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에 방탄의 옛 투 컴, Yet To Come (The Most Beautiful Moment)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 나의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ㅎㅎ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다. 지나간 시절이 아무리 신선하고 광휘로웠다 해도 다가 올 시간에 비하면 아니다. 왜냐면 나뭇잎이 매일 더 반짝이며 자라듯 우리 인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노화를 마치 정신의 몰락처럼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웃는다. 과일이 익어가기 위해선 오직 안으로만 더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잘 익은 과일로 자기 인생도 결실되려면 젊음의 상징인 무성하던 나뭇가지 같은 건 절로 떨어지게 내버려 둬야 하고 남은 시간 내실을 더 기해가야 할 것이다.
내실이 무언가? 미뤄뒀던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본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캘리그래피와 요가를 집중 배웠을 것이다. 내 평생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좋아하는 명구절을 '내 마음 가는 데로 아름답게' 실컷 써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간 자투리 시간으로 배운 요가를 몇 달 제대로 투자해서 내 몸에 맞는 요가로 최적화로 만들어 지구별 삶이 끝나는 날까지 건강체조를 해볼까 했었는데 지금은 여행 중이다.
암튼 이렇게 요리든, 운동이든, 취미 문화생활이든 본인이 속에서부터 하고 싶어 했고 지금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실행하는 것이 맞다 본다. 그걸 하면서 지내다 보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날은 날마다가 될 것이 아닐까 싶다. 6월 12, 2022 6:54:43 오후
프랑스 지도와 내가 살던 남서불 Toulouse 빨강표시
없던 지하철이 생긴 게 첫 번째 변화다
기숙사 가는 철교를 발견하고 눈물 찔금 ㅎㅎ
기숙사 건물은 그대로다. 4층을 올려다봤다
언제나 수량이 그대로인 강을 보는 것도 그때는 신기했었다
시간은 없는 것과 같다, 단지 여기 있다 저기로 휙 날아갔다 온 느낌일 뿐!
기숙사 다니엘 포쉐 식당 앞 간판
시내 중심의 윌슨 광장
카피톨 광장에 행사 중이다
올드 브리지가 이름이 다 새 다리라는 뜻의 퐁 네프다 ㅎㅎ
물이 빨리 통과하도록 낸 중간 구멍앞에 빨간동상아이가 세워져 있다. 그 아래 계단도 물살을 가르기 위해 과학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80년대 내가 좋아했던 보도길~또각또각 구둣발로 걸어다니면 구두굽이 너무 빨리 닳아 수선집에서 징을 박아 신었는데 이젠 그냥 걷기 편한 운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