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 Jul 22. 2023

뚤루즈 미라이 대학

청춘의 절반을 보낸 곳


뚤루즈에 와서 이전에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학교도 역시 많이 바뀌어서 정문 앞에 지하철역이 들어서고 이전 소박하던 교문은 없고 건물도 대부분 증축 내지는 신축으로 더 확장된 느낌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학교 이름까지도 바뀌었다. 30년 전에는 여기 인문학부를 미라이대학이라 불렀다.  


당시는 건물이 그냥 밋밋한 네모난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좀 문학, 철학, 예술학부답게 칼라도 입혀지고 새로운 게 신선해 보였다. 학교이름이 Toulouse Jean Jaures 대학이라 되어있는데 시내 중심 지하철 역이름도 같은 이름 장 조레스라 그에 대해 찾아봤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이자 사회당 활동가이다.


 1904년에 진보적 일간지인 《위마니테(Humanité)》지를 창간하여 그 주필을 맡았다. 《위마니테》지는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다. 그는 그 유명한 드레퓌스사건 때 그를 옹호한 작가 에밀졸라를 옹호하다 함께 지탄을 받는다. 그가 가는 곳마다 가톨릭교회와 왕당파들이"졸라 타도", "조레스 타도"를 외치며 돌을 던지고 냄비를 두드리고 집요하게 공격했고 결국 그는 의원직도 상실하고 이후는 언론집필로서만 활동한다.


드레퓌스사건은 군부와 가톨릭 기득권, 그리고 왕당파까지 포함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인권유린, 간첩 조작사건을 말한다. 그의 저서 "사회주의와 자유"에서 사회주의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이며, 신학, 가정, 국가 모두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지, 사람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그건 부정해야 할 사상이요, 족쇄요, 끔찍한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 그는 진보적인 인문주의자이기도 했다.


1차 대전을 앞두고 프랑스의 적성국가였던 독일과의 화해를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그는 프랑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민족주의자들에게 독일의 간첩이라는 정치적 공세에 시달렸고 프랑스의 가톨릭 계열 신문들은 조레스와 독일 황제와의 사진을 1면에 나란히 싣고 조레스가 독일을 위해 일한다며 비난했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기 위해 유럽 각국 정부들을 설득했고 특별히 독일, 프랑스의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의 동반 파업으로 다가올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위마니테"에 전쟁을 반대하는 글을 쓰며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단결을 호소했으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이루고자 했던 그의 비폭력적인 노력은 결국 그의 비극적인 죽음의 원인이 된다. 위마니테 편집자들과 저녁식사 도중에 국가주의자 라울 발랭에게 결국 1차 대전이 일어난 사흘 뒤에 암살당하였다.



비교적 길게 그에 대해 찾아 올려본 것은 그래도 프랑스란 나라 자체가 이런 사람을 인문 대학 이름으로 짓고 뚤루즈 시내 가장 중심역이름으로 붙이니 프랑스라 하고 싶어서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이후에도 깨어있는 지성들과 시민들의 수 없는 발자국, 희생들로 오늘의 이 나라가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그 이름 장 조레스역 시내 중심에 내려 걸어 다니다 생 세르넹 대 성당을 갔다. 사진만 찍고 나오려는데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그러다 어쩌다 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지금껏 다니면서 수 없이 대성당, 작은 성당을 보고 촛불을 켜고 기도는 해 왔지만 이렇게 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은 이곳이 첨이다.

사제가 흔드는 향로로 앞줄에 앉은 내게까지 향내가 진동하고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의 찬송가로 눈을 감은 내게 밖의 노이즈는 완전 차단, 이 안은 완전 다른 피안의 천상세계가 된다.
사제의 나누는 성경구절조차 깊이 와닿는다. 땅과 바다가 만들어지기 전에 내가 있었노라~~ 예수님은 물론이고 우리 영혼도 그러했을지도~~ 나도 모르게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왜 그랬을까 그냥 대성당 분위기와 향냄새, 천상의 멜로디 때문일까. 그 많은 성당을 누볐지만 예배참석은 처음 이어서일까. 암튼 나는 성경 자체를 불어로 처음 읽었다. 여기서 기독신앙을 처음으로 접했었고 초대교회같이 자발적으로 유무상통 나누던 형제들의 교회를 다니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헌금자명까지 밝히며 돈에 대해 당연한 듯 언급하는 목회자를 보고 경악했었다. 이 천년동안 종교를 팔아먹고사는 사람들이 많고 교리조차 이데올로기 화하여 사람을 세뇌시키고 정치지배 도구로 사용하는 종교의 잘못된 면이 많다.


그러나 두 줄기 눈물은 창조주 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사랑으로 인한 눈물이었으리라~
감사의 눈물, 그리고 다시 신의 품에 돌아와 안기며 쉬는 눈물~~ 처음으로 신앙을 시작했던 곳에 돌아와서 안착하며... 내 인생 전반부에 대한 총체적 감사의 눈물등~~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Toulouse   6월 13, 2022 6:25:52 오후


성당에서 좀 울고 나오니 허기가 져서 내가 프랑스 와서 처음 먹은 요리, 카술레를 시켜 먹었다. 흰 강낭콩, 소시지, 오리고기가 들어가는 여기 지방식 스튜다.

카피톨광장 앞 레스토랑가 통로

붉은 테라코타 벽돌 도시 뚤루즈 골목 사이로 멀리 셍 세르넨 성당이 보인다
성당 천정과 셍 세르넨은 유럽 로마네스크 양식 최대 보존성당이다.
미사도중 눈물이 흘렀다 ㅠㅜ / 미라이 대  축구장, 기숙사 새 건물, 학생 자전거가 보이고 방학인데도 남아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카피톨 광장, 뚤루즈 십자가가 있고 각 사방끝에 별자리가 있다. 나의 물고기좌에 발을 얹어본다

새 대학건물 위 하늘이 곡선으로 보이게 한 점이 보기 좋았다

지식의 공짜? 의미심장하다. 내가 알기론 프랑스는 생후 3주 영아원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다

뚤루즈 대학

카페테리아에 각 나라말 한글도 있다. 다국적 학생들을 존중한 점이 돋보였다.

물의 성, 오래 전 부터 사진 전시관으로 사용중이다.
전시주제가 새, 사람눈처럼 살아있고 표정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청 같은 곳인데 쓰인 글귀가 마음에 들어온다. 자유, 평등, 박애등 내용인데 더 심오하고 따뜻하다.



이전 01화 살기 좋은 도시 뚤루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