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어쩌다 문예지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이 되었다. 그래서 시낭송을 알게되니 배우고 싶어졌고, 어차피 배울 거면 배움의 엑셀레이터를 밟기 위해 대회에 참가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회 한 달반을 앞두고 부랴부랴 시를 외우고 연습하여 동영상 촬영도 찍어보내어 예선 통과를 하였다. 사는 지역이 경남이라 진주 개천예술제 시낭송 대회에 첫 출전을 했다.
개천예술제는 개천절 즈음에 진주 남강 유등축제와 함께 펼쳐지는 73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유서 깊은 행사다. 촉석루를 끼고 남강 위에 띄운 유등으로 밤을 밝히며 장장 16일 동안 각종 문화, 예술공연행사가 줄을 잇는다.
시낭송대회는 어제 10월 13일 진주 박물관 강당에서 오전에는 초중고등부 학생들로 그리고 오후에 대학생, 일반부 대회로 치뤄졌다. 주차 걱정으로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남편과 나는 근처 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다. 날씨는 좋았고 주인 아저씨는 좋은 한우 고기만 쓰는 식당이라고 자랑도 하시며 육수와 밥도 더 갖다 주셨다.
강당에 도착하니 벌써 먼저 오신 분들이 간단한 마이크 테스트와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 하는 걸 듣다 보니 ‘나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과 멀리 전국에서 오신 다들 낭송 경력이 최소 몇 년으로 여겨지는 사람들 뿐이었다. 대회를 나가겠다고 덜컥 시작해놓고 제대로 지도받은 것은 불과 한 달도 못 되는 내가 참으로 무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대회는 시작되었고 나는 처음 와 본 낭송대회니 구경이나 실컨 하고 가자 싶어서 몰입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러다 내가 외운 시 다 까 먹는 거 아닌가? 하며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가고 드뎌 내 차례가 왔다. 본선에 나온 사람들은 총 48명인데 내 순서는 47번이었다.
낭송의 어려움은 감정과 힘을 너무 실어버리면 웅변이나 신파가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너무 힘을 빼면 지루하고 단조로워 지는 점인 것 같다. 그러니 절제된 감정과 메시지를 입술로 다 담아 표현해 낸다는 게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이다.
이는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로 정말 무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 만나게 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어려움일 것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대에서 나는 내가 배우고 연습한 것을 그나마 다 쏟아내었던 것 같다. 비록 시의 뒷부분에서 표현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그건 초짜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본다.
고수와 베테랑이 괜히 고수와 베테랑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내가 시를 이해한 만큼은 지금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표현한 것에 만족하려 한다.
그리고 시낭송을 통해서 시를 더 깊이 있게 알게되고, 감성도 섬세해져서 시쓰기에도 도움이 되고, 더불어 내 언어생활과 함께 마음도 순화되어간다 생각하니 감사할 뿐이다.
지금 내 나이는 하루로 치면 오후 서 너시요, 계절로 치면 가을 초입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오십대에수렴한 것들을 정련하고 정제하여 작품으로 형상화해내는 시점이라 봐 진다.
내 인생의 작품은 뭘까? 그게 무엇이 되었건 시와 시낭송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일상과 다른 글쓰기를 통해서 아름답고 진실되게 나를 표현해가는 것이리라 본다.
가장 나 다운 글을 쓰도 가장 개인적인 것이 또한 가장 보편적인 감동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심층에서는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마치 바다의 섬들이 떨어져 있으나 밑뿌리는 닿아있고 우리 모두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이 지구별이라는 한 행성 위에 있듯이 말이다.
최우수, 우수 3명과 장려상 7명 중에 나는 장려상을 수상했다. 상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첫 도전에서 나는 그 열 명중에 들었다는 게 영광스러웠다.
나 보다 더 잘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거 같다. 물론 나로선‘지성이면 감천이다’를 되뇌이며 대회 날 아침까지도 연습에 몰입했던 것은 사실이다.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나에게 200번 암송해보라 했는데, 막상 200번을 했다고 하니 한 시를 1000번을 하면 더 이상 잊어먹지도 막히지도 버벅거리지도 않을 것이라 했다. 내가 연습한 종이를 보니 거진 3~400번 암송을 했던 거 같다.
두 차례 여행기 책을 낼 때 나는 책 출간에 꼬박 석 달이 걸렸는데 이번에 시낭송 준비로 한달 반 동안 일체 몰입했었다.
행사가 끝나고 나니 매번 뭐든 목표한 바를 이뤄내기 위해 집중했던 시간 그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초중고 학생수상자들과 함께 기념촬영
대회날 아침까지 연습했던 종이를 시낭송공부 묶음으로 철하고 보니 30장이 넘었다 ㅎㅎ
대회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진주성 산책도 하고 유등축제를 덤으로 감상했다.
강물 위에 띄운 부교를 건너 진주성으로 올라가고 강 위에서 연주하며 춤추는 형상들을 보니 가을밤의 낭만이 느껴졌다
남편과 강변에서 간식도 사 먹고 수천개의 염원을 담은 긴 소망등 통로를 걸으며 나도 우리 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염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