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가을 파리
오늘은 몽마르트로르 가보자며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가다가 중간에 피라밋 역이 보이기에 남편에게 피라미드 보고 가자며 갑자기 내렸다.
내가 여행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항상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이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던가? 살면서 예정대로 되는 일보다 중간에 일어나는 많은 변수들이 지나고 보면 오히려 더 깊은 의미를 더해주지 않았던가?
계획은 변경되기 위해 미리 짜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아침에 대충 동선 일정을 그어서 나오지만 가는 동안 더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매번 바뀌기 때문이다. 이날도 쇼핑계획은 없었지만 가다가 윈도에 걸린 옷을 보고 들어가서 남편의 외투를 하나 사는 득템을 했다. 그러니 여행도 사는 것도 다 이런 변수의 묘미가 있다.
루브르 박물관 입구의 피라미드는 1989년도에 세워졌다. 남편과 나의 결혼도 그 해 겨울 피라밋도 본 그 여행에서 확정되었다.
어차피 이번 생 인생도 지나고 보면 한 차례 추억으로 남을 것인데 이번 여행에 더해 지난 여행 추억도 포개보자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십 년 이십 년 후 인생의 노년 겨울이 오면 우리가 부지런히 씨 뿌리고 가꾸며 수확했던 봄, 여름, 가을을 다 추억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메인 입구역할을 하게 된 유리 피라미드는 에펠탑에 이어 또 다른 파리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피라밋 역시 에펠탑을 둘러싼 비난처럼 처음에는 고전적인 박물관 건물에 현대적 유리 구조물을 세운다니 루브르를 망쳤다는 많은 반대 여론이 있었다.
에펠탑은 원래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1789 → 1889)을 기념하여 열린 세계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다.
그리고 박람회 후 철거 예정이었으나,
라디오, 전파 송출에도 활용되며 점차 프랑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남게 되었다.
당시, 파리 사람들과 예술가, 지식인들은 “파리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망친다”
“쇠로 만든 흉물(La grande chandelle, ‘거대한 촛대’)”라며 탑을 싫어했다.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 안 레스토랑에서만 식사하며 “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라서”그렇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쨌든 에펠탑은 당시에는 “흉물”로 불렸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고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매년 약 7백만 명이 방문하는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듣기로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영국이 파리의 에펠탑에 상응하는 '런던아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매해 300백만 명이 탑승한다고는 하나 내가 보기론 에펠탑이 주는 효과에 비하면 조족지혈 비교불가라 본다.
루브르 앞에는 대형 피라미드 외에도 작은 피라미드가 함께 배치되어 균형감을 준다. 루브르가 원래 왕궁이었던 점을 착안하여 입구에 신. 구의 조화처럼 이집트 피라밋형태의 현대식 건물을 지었고 이는 80년대 미테랑 대통령의 “대루브르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루브르 박물관 입구 동선을 획기적으로 바꿔 관람객 흐름을 원활하게 했고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의 현대 건축 상징물로 사진 명소가 되었다.
피라미드에서 맞은편을 보면 작은 개선문을 통과해서 튈르리 정원이 있다.
16세기 지어지고 17세기에 재정비된
프랑스식 정원의 대표작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왕실 전용 정원’에서 시민에게 개방된 첫 공원이기도 하다.
곳곳에 로댕, 자코메티 등의 야외 조각이 전시되어 있고 좌우 대칭적 나무들 사잇길을 걸어 나오면 콩코르드광장까지 연결된다.
우리는 콩코르드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몽마르트르로 향했다.
그리고 몽마르트르 Abbesses 역에 내려 출구로 나가는데 나선형 좁은 계단이 끝도 없게 이어졌다.
나는 이전에는 다른 역에 내려 바깥 계단으로 올라갔고 또 이십 대 사십 대 그리고 지금 육십 대 체력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암튼 이번생에 몽마르트르는 마지막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사실 이번에 여기는 안 오려하다가 그래도 파리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곳에 한번 더 가자 싶어서 나섰던 길이었다.
성당은 휘리릭 보고 남편이랑 계단에 앉아서 사람들이 하는 즉석 퍼포먼스 공연을 보았다. 한 동양인 아저씨가 나와서 오페라 몇 곡을 부르는데 내가 보자마자 남편에게 저분 백 프로 한국인이다 했는데 역시 노래 마치고 먼저 우리에게 와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밖에서 한, 중, 일 사람 구분을 잘하는데 반면에 외국사람들은 나를 자주 동남아인으로 여겼다.
자발적 공연을 하신 분은 아마추어라 하시는데 야외에서도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커서 전달도 잘 되었다. 그냥 좋아해서 불러봤다 하시는데 그분께는 세계 여행자들 앞에서 박수를 받은 것이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본다.
화가들 그림을 팔고 초상화 그려주는 몽마르트르 중심 광장
몽마르트르 이름은 전설에 따르면 3세기경 파리의 최초 주교가 이곳에서 순교해서
"순교자의 언덕(Mons Martyrum)"에서 유래했다.
몽마르트르는 파리 외곽 농촌 지역이었고, 세금이 저렴하여 값싼 술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그 후 물랭 루주 같은 카바레, 카페, 아틀리에가 들어서면서 보헤미안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피카소, 반 고흐, 뚤루즈 로트랙,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 화가들의 집거지가 되면서 몽마르트르는 가난했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예술의 요람과 성지가 되었다.
몽마르트르는 파리 북쪽 18구에 위치하며 파리 시내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이나 해발 약 130m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언덕 위의 사크레퀘르 대성당 (Basilique du Sacré-Cœur)은 1875년 착공하여 1914년 완공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 후 1919년에 봉헌되었다.
내부에 있는 세계 최대급 모자이크인 ‘그리스도의 영광’ 장식이 유명하며 하얀 석회암으로 지어졌기에 시간이 지나도 흰빛을 유지하며 파리 시내 어디서든 잘 보이는 상징적 건축물이 되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자주 즉석공연이 펼쳐진다.
몽마르트르의 맛집으로 추천받은 '닭과 아들'이란 뜻의 '르 꼭 앤 피스'에 갔다. 원래 닭은 안 좋아하는데 한번 로스팅해서 요리를 해서인 지 맛있었다. 내 경험으로 아프리카 출신이 하는 닭요리는 무조건 맛있다. 소,돼지가 아닌 닭이 그들 주요 육식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
중세거리같은 골목길을 내려오며 포도원도 감상했고 지하철 역을 가면서 길가 벼룩시장을 구경하다 이태리제 가벼운 외투를 득템했다. 보온내의를 안 챙겨왔는데 이제 여행동안 추위는 끝났다 싶었다.
파리시내 있는 유일한 포도원이라 한다
몽마르트르의 가을~~~!
와인색 털 외투 득템
가수 달리다의 동상
올해는 가을이 몇 번째다
4월에 호주에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아보고
다시 파리에서 두 번째 가을이다
돌아가면 한국의 가을 풍경을 맞이할 거니
이래저래 세 번째 가을을 맞이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