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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l 26. 2023

중앙아시아 2~사마르칸트의 구르 아미르 영묘

화려한 무덤을 보며 영원한 것은 없다를 다시 새긴다

2023년 5월 28일


사마르칸트의 아미르 티무르 영묘, 묘지를 방문했다.

티무르는 혈통으로는 칭기즈칸의 후손으로 몽골족이나 출생지나 받은 교육과 문화는 이슬람 쪽이라 우즈베크 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의 선조이다. 


아미르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 제국은 1370년부터 1507년까지 중앙아시아,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왕조였다. 이 왕조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군사력과 오아시스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더욱 번성했다. 그러나 티무르 사후 왕권 쟁탈전으로 제국은 분열되었기에 정치적으로 강력한 국가는 아니었지만, 티무르를 비롯한 여러 왕들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보호와 장려로 화려한 궁정 문화가 발달하여서 중앙아시아 최고의 문화 수준을 자랑했다.


사실 영묘는 묘지가 아니라 대리석관과 금으로 치장한 화려한 궁전처럼 지어져서 무덤이라기보다는 사후궁전처럼 보인다. 이 건물은 티무르가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손자 무하마드 술탄의 이른 죽음을 슬퍼해서 그를 추도하면서 맨 처음 지어졌다. 9개 무덤이 있는데 가운데 중앙의 검은색 관이 티무르 무덤이고 양 옆이 아들, 손자들 그리고 그 위가 친구이자 멘토이면서 그의 스승이었던 사이드 바라카의 무덤이다. 티무르가 유언하길 자신의 스승 무덤 발치에 자기를 안치해 달라고 했다 하니 그는 겸손한 용자, 즉 현자였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실제 시신은 영묘가 아닌 옆건물의 지하 무덤에  따로 안장되어 있었다. 영묘 내부는 그 어떤 사원이나 궁전보다도 장엄하고 화려했다. 이슬람 건축물을 볼 때마다 경탄하는 바지만 아라베스크 문양의 화려함과 정교함이 매전 대단하게 여겨진다. 영묘 안의 벽과 천장 문양 장식에만 8kg의 황금을 사용했다 한다.






그곳을 보고 제지공장에 들렀다. 우리나라처럼 뽕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제지과정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종이 만드는 것은 중국등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파되었는데 그 중간에 이 사마르칸트가 있고 또 그 계기가 된 것이 탈라스 전투였다 한다. 그런데 그 탈라스 전투는 고구려 유민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당군 3만 명을 거닐고 10만 이슬람 연합군에 대항해 싸운 전투다. 751년에 이슬람이 승리하고 당군 포로들이 대거 잡혀가는데 그중에 제지기술자가 있어서 그 후 이곳에 종이 공장만 3-400개가 생겨났다 한다.


이런 식으로 동서의 문물과 문명교류는 기원전부터 비단길을 통한 교역뿐 아니라 불가피한 전쟁을 통해서도 이뤄져 왔던가 싶었다. 이후  종이는 사마르칸트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되었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 종이는 탈라스 전투 훨씬 이전에 이미 이미 동튀르키스탄에서 생산되고 있었고, 소그드인 상인들에 의해 중앙아시아 각지에 보급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당군 포로덕분에 제지기술이 더 나아지기도 했겠지만 소그드인들은 종이를 만들 때 목화섬유를 사용해서  더 보존성이 좋고 더 드러운 종이를 만들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종이제작의 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풍차를 이용해서 뽕나무 껍질을 다지고 하는 것을 보니 종이작업이 만만찮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종이야말로 인류역사 진화와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귀한 수공예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오면서 기념으로  25만 숨을 주고 작은 공책을 샀는데 내 유언장 적을 것이라며 보여줬더니 일행들이 너무 비싸다며 오늘부터 밥 굶으라 농담을 하신다. 그런데 난 2천5백 원인 줄 알고 10쪽도 안 되는 공책을 산 건데 하니 내가 0 하나를 잘못 계산한 거라 한다.

할 수 없이 생각보다 열 배나 비싼 걸 살 수는 없어 도로 가서 죄송하다며 무르니 외국인들이 더러 그런 실수를 하는지 가게주인은 인상 한번 안 쓰고  환불해 주신다.

이곳에 와서 시장에서도 몇 번 물건 사면서 돈 계산을 잘 못하면 이곳 사람들은  일일이 설명을 하면서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것이 상인들의 친절이 몸에 밴 것 이상으로 심성이 참 맑은 사람들이란 인상을 갖게 했다.

제지공장에서 주는 차를 마시고 있는데 인자하게 생기신 할아버지께서 내게 다가오셔 같이 사진 찍자 하셔서 그분 일행들과 함께 찍었다. 아마도 '대장금' 이후로 K 드라마 영향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는 여행지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닐 텐데 정말 각별한 환대요 친근함이다. 

( 우리 그룹은 말레이시아, 한국 여행친구들로 이뤄진 다국적 팀인데 유독 한국인인 우리에게 그런 호감을 많이 표시하셨다. 사진 오른편에 엄지 척하신 분이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고 다가오셔 사진 찍자 하신 분이시다. )






레기스탄 광장에 마드라사를 세웠던 왕이자 천문학자였던 울르그벡 천문대 터를 가 보았다. 불행히도 학자이셨던 왕은 망나니 같은 그의 둘째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된다. 왕이면서도 학문을 너무 사랑했던 그는 아마도 그런 낌새를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탓으로 즉 정치적 현실감각은 없었기에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살해되고 나서 건물 5층높이 40미터의 천문대는 몽골과의 전쟁 중 파괴하여 무너졌다.

가이드 카릴다는 미친놈들 소행이라고 말했다. 나도 동감한다. 하늘의 별을 보는 것에 대해 무슨 이유로 파괴를 한단 말인가? 인류 전체의 역사와 발전에 진화를 가져올 천문학적 문화유산을 파괴한 자는 자신의 탐욕과 무지로 인함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누구든 문명, 문화적 유산을 파괴하는 자는 야만이다.

달나라에 갔던 미국 비행사가 파리에서 열렸던 울르그 벡 관련 전시회에서 그에게 감사와 존경의 조의를 표했던 글과 사진도 박물관에서 보았다.


박물관에는 천정의 별자리지도와 미니어처로 된 관측기구등 흥미로운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회회력-이슬람역법은 세종 때 천문학자였던 장영실에게도 도움과 기초가 되었다고 하고 당시 울르그 벡 왕이 측정한 일 년 365일은 지금과 1분 차이도 안 난다니 정말 대단하다.





영어로 St Daniel이라 적힌 곳이 왜 이슬람국인 이곳에 있지? 하며 갔는데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다니엘 선지자가 맞다. 기원전 600년경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선지자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는데도 사자의 먹이가 되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티무르왕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그 원인을 물으니 다니엘의 영혼이 나라를 보호한다는 말에 이란에 있던 그의 유해에서 새끼손가락 하나를 가져와서 전쟁에 승리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 다니엘 성지무덤은 14세기에 티무르에 의해서 지어졌다가 20세기에 재건되었다. 결국 다니엘 선지자는 유대,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다 같이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고 티무르는 이 선지자를 기리기 위해 언덕 위에 이 무덤을 만들었는데 전설 위에 더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 후 손가락이 무덤 속에서도 나무처럼 계속 자라서 18미터에 이른다며 만들어놓은 기다란 손가락이었다. 카메라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길쭉한 모형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면서 기원전부터 수 천년 페르시아 이란 강국의 지배를 받아온 이곳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 중에서도 특별히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지역엔 이란계 혈통인 타지크인이 과반수 이상으로 절대다수이라 한다. 가이드는 내게 귓속말로 우리 차 운전수인 저 양반도 타지크인이라 하고 가이드의 아버지도 타지크인 즉 이란계 혈통인데 자신은  타지크말을 하지 않는다 한다. 암튼 그런 저런 이유로 이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도 이런 손가락 무덤도 생기지 않았을까며 나의 뇌피셜로 대충 짐작해 보았다.


사실 사마르칸트가 우즈베키스탄의 도시가 된 것은 러시아의 결정이 절대적이었다. 현재 중앙아시아의 국경은 1924년 구소련이 만든 것인데 그 이유는 중앙아시아인들이 연대해서 소련에 반발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구소련은 인종, 민족을 고려하지 않고서 타지크인이 절대적으로 많은 타지키스탄 소유이던 사마르칸트를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우즈베키스탄 영토로 만들어버렸다.


지난 역사를 보면 제국주의 프랑스와 영국이 한 나라의 영토를 결정하면서 아프리카 땅을 부족이나 자연적 경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직과 수평으로 나누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또한 남미대륙을 자기 마음대로  동서로 갈라 나누었던 세계역사를 보면 타지크 인들이 많은 도시 사마르칸트가 우즈베키스탄이 된 것도 씁쓸하지만 강자들의 정치적 선택과 결정으로 얼마든지 가능했으리라.

우리의 남북 분단 역시 결국 강력한 미소 대치구도의 냉전시대 산물임을...ㅠㅜ


15세기 티무르 영묘

사원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영묘입장 시 스카프 착용은 필수다.

청색돔에는 63개의 주름이 있다. 이는 선지자 마호멧이 63세의 나이로 선종해서 그렇게 주름을 넣었다 한다.

말레이시아 친구 알리샤와 우정 인증샷

영묘 안의 레이스같이 섬세한 장식

가이드 카릴다가 당시 티무르 제국 영토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티무르 초상화~실제 그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 지는 모르겠지만 잘 생기셨다 ㅎㅎ

영묘 뒤뜰에서 쉬거나 기도하는 사람들

순금 8킬로가 들어갔다는 천정과 벽의 아라베스크 문양

제지공장 나무 작업

삶아서

풍차를 이용해서 다지고

나무를 삶아서 하는 종이작업

천문학자 울르그 벡왕의 동상~그를 보면 세종대왕이 생각난다- 사실 당시 장영실 등 우리의 천문학도 중국을 통해 들어온 울르그 벡이 이룩한 천문기술이었다 한다.

울르그 벡 왕 천문학 박물관

천문관측 도구 미니어처

천문관측을 위해서 왕이 오르고 내렸던 도구

천문관측 기구

왕의 초상화에도 학자적 품위가 느껴진다

성 다니엘 영묘

나무처럼 자란 손가락 ㄷㄷ하다 ㅎㅎ


다니엘 치유의 샘이라는데 어쨌든 샘의 물맛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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