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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건강 관리-마음

단순하고 단단하게

by ligdow


몸은 대체로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얼마나 지쳐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칠 때가 많다.


스트레스는 몸에 해롭다고 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면역력을 높이고 집중을 돕기도 한다. 문제는 그 ‘적당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무게가 있는 것도,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기준을 세우거나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것이 건강에 해로운지 아니면 도움이 되는지를 대개 후회나 뒤늦은 깨달음을 통해서야 알게 된다.


그래서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는 일이 중요하다. 잠이 잘 오지 않거나 이유 없이 피곤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예민해진다면 그것은 마음이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 그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차분히 들여다보았다면 몸도 마음도 조금은 덜 지쳤을 것이다.


그 생각 이후 나는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근거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하려 했다. 암 전반에 관한 내용 특히 직장암의 치료 과정과 회복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에 집중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의사 선생님들의 직장암 관련 영상은 거의 다 찾아보았고,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도 읽으며 치료 원리와 방식, 부작용과 회복 과정을 차근차근 공부했다. 그러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나만의 회복 전략을 세워나갔다.


하지만 정보에도 경계가 필요했다. 나는 암 환자 커뮤니티나 정보 공유 공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암의 종류와 병기가 같아도 개인의 몸 상태, 생활 습관, 심리적 태도, 환경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 경과와 결과도 같을 수 없다.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경험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불안만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심을 지키려 애쓴 덕분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해야 할 일과 선택 앞에서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 - 대체로 즐겁고 만족한 삶

나는 내 삶에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다. 긍정적인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았고, 남편과 아이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잘 살아내고 있었다.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일상에 충실했다.

앞서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에서 짧게 언급했듯 친정 부모님과의 이별이나 큰오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 외에는 특별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몸이 특별히 아픈 적도 없었고,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암 진단을 받은 직후 - 빠른 수용과 현실적인 준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감정에 깊이 빠져들지 않으려 했다. 두려움이나 막막함이 예고 없이 밀려올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치료를 위한 현실적인 준비였다. 현실을 직면하고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일, 그래서 가능한 한 감정의 소모를 줄이려 애썼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에 집중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았고, 그렇게 차분하게 정리된 마음이 치료를 시작하기 전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준비였다.



*치료 중 -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기

치료를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생각의 중심을 오직 나에게 두었다. 지금 내 몸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했다. 이기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이었다.

내가 치료를 잘 받고 회복해서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한 길이자, 가족을 위한 길이었다. 그 시간은 마음과 몸, 삶의 모든 초점을 나에게로 향하게 했던, 말 그대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치료 종료 후 지켜보기- 희망과 희망 저 끝에 매달려 있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

재발에 대한 불안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로 불쑥 튀어나와 등에 식은땀을 흐르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능한 한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썼다. 미워하거나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라면 차라리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규칙적인 루틴을 만들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하고, 산책하며 충분히 쉬면서 마음의 평온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4년이나 남았지만, 나는 희망과 불안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가며 오늘 하루의 건강과 평안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켜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독이며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려 애썼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암 치료를 위해 갑자기 일을 그만둬야 했고,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생긴 내상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고, 높은 재발률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복합적인 상황이 때때로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우울하게 했다.

침울해 있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이제는 좀 쉬어도 돼. 일 년밖에 안 됐는데 뭘 그렇게 조급해하고 그래. 그냥 마음 편히 쉰다고 생각해. 엄마가 나한테 잘하는 말 있잖아.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무심한 듯 툭 던진 중학교 3학년 둘째 아이의 그 말이 오래도록 큰 위로로 남아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즐기기로 마음먹으니 혼자만의 시간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살아보겠나 싶었다. 그것도 아주 섬세하게, 몸도, 마음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하나하나 돌아보고, 관찰하고, 이해하고, 돌보며, 조급함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중이다.

나는 원래 혼자 공부하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일하고, 혼자 감당하고, 혼자 울기도 했던 사람이다. 꽤 오래 혼자에 최적화된 삶을 살아왔고 또 잘 해내는 편이기에 지금 이 시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파에 있는 암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날의 주제는 ‘자기 칭찬’이었다. 강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보라고 하셨다

“나를 사랑해. 오늘도 수고했어. 그동안 힘들었지?”

평소에 나는 나를 잘 알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몸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입 밖으로 말을 꺼내려니 어쩐지 낯설었다.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견디고 애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처음으로 직접 건넨 따뜻함이었다. 그 말들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말로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일이 이렇게 큰 울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매일 내 마음에 말을 건다. 단순하지만 뜻밖의 위로가 되는 말들이다.



어떻게 매일 맑은 날만 있을 수 있을까.

흐리다가 비가 오기도 하고, 쌀쌀한 바람이 불기도 하며, 어느 날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듯 내 감정과 기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가끔은 건강을 챙기며 살아가는 반복된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유튜브에서 책을 읽어주는 채널을 찾아들었다. 평온한 마음과 자존감,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태도, 나이 듦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잔잔한 물결처럼 내 안의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렇게 나는 나와 조금 더 깊이 마주하게 되었고,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은 분명 몸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몸을 돌보듯 마음도 함께 살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알게 된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는 작고 미세하다. 바쁘게 지내거나 감정을 눌러둔 채 살아가다 보면 금세 묻혀버리기 쉽다. 그러다 어느 날 이유 없이 가라앉는 기분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을 통해 비로소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혹은 암이라는 큰 병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 신호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진짜 회복은 그 조용한 신호를 놓치지 않고 나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잘 먹고, 잘 쉬며, 마음에도 숨 쉴 틈을 주는 것. 아주 작은 습관과 마음 챙김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흔들리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오늘의 나를 다독이며 하루를 살아낸다. 버티는 힘은 거창한 의지에서 오지 않는다. 그런 소박한 마음에서 자라나 내 삶을 단단하게 이끈다.

암을 겪으며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은 더 넉넉해졌고 사랑은 더 깊어졌다. 아니, 더 사랑하기로 했다.

아픔을 지나며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놓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깨달음이 오늘의 나를 살아가게 한다.




지난 가을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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