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보약이다.
얼마 전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라는 글에서 수면에 대해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깊은 잠이 주는 회복의 힘을 오래도록 외면한 채 살아온 것이 가장 아쉽고 안타깝다.
젊을 때는 하루가 40시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았던 시절에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조차 아깝게 느껴질 만큼 늘 바쁘게 살았다. 결혼 후에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생활이었다. 육아와 가정일, 일까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수면은 늘 부족했고 가벼운 피로는 일상이 되었다.
하루 평균 네 시간 남짓. 그마저도 깊게 잠든 기억은 드물고 새벽이면 몇 번씩 깼다. 그래도 일상은 멀쩡했고, 몸도 크게 아프지 않았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잠은 단지 피곤을 덜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몸을 재충전시키고 회복하는 시간임을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우리 몸은 멜라토닌을 분비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고, 면역세포는 더 활발하게 움직이며 손상된 세포를 복구한다. 기억이 정리되고 감정은 안정되며, 몸은 잠을 통해 다시 균형을 찾는다.
반대로 잠이 부족하면, 몸은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이는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당뇨, 고혈압, 암과 같은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무엇보다 면역력이 약해진다.
그동안 수면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그리고 그 무심함이 내 몸을 조금씩 무너뜨렸다는 것을 아주 늦게서야 깨달았다.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세상에서 잠시 비켜난 듯한 시간 속에서 오롯이 내 몸, 내 마음, 내 생존에 집중했다. 생각이 단순해지자 오히려 깊은 잠에 드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누적되면서 다시 새벽은 길어졌다. 화장실에 여러 번 가야 했고 몸의 불편함에 자주 깨서 숙면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2024년 7월 말, 수술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후 산부인과를 찾았다. 방사선 치료의 영향으로 폐경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초음파 화면 앞에 한참을 머물던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난소가 보이지 않아요.”
"아...... "
암 치료를 시작하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난소 상태가 나이보다 10년은 젊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기능을 멈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방사선의 위력에 놀랐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까짓 폐경쯤이야. 난소 기능의 상실쯤이야. 암이 사라진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몸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내린 결정이 놀랍고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선택의 자리를 비워준 난소에게 참 감사했다.
폐경 이후 시작된 새벽 불면은 꽤 힘들었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면 정확히 1시간 30분 후에 깨고, 이후 3시간은 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다시 잠들기 위해 애썼지만 그 몸부림이 오히려 잠을 더 멀어지게 했다. 암 환자에게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어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새벽을 보내면서 나는 그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억지로 잠들려 애쓰기보다 그냥 깨어 있는 시간을 그대로 살아보기로.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그려보며 나와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하품이 나오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기능의학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식물성 멜라토닌(3mg 또는 6mg)을 먹어봤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 자고, 3시간 깨어 있다가 다시 1시간 30분 자고, 또 잠깐 깼다가 다시 자는 조각난 수면의 밤이 이어졌다. 이런 패턴은 작년 여름부터 올해 2월까지 계속되었다.
밤잠이 부족한 데다 아침에는 남편과 둘째를 챙겨야 하니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 개운한 아침은 드물었고,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피로가 몰려왔다. 결국 하루를 버티기 위해 3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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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서일까. 봄이 오자 얼어 있던 내 몸도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강도를 높인 운동, 규칙적인 식사, 햇살을 받으며 걷는 산책, 그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몸은 다시 리듬을 찾아갔다. 이제는 새벽에 깨는 날이 한 달에 손에 꼽을 만큼 줄었고, 잠결에 몇 번 눈을 떠도 이내 다시 스르르 잠드는 걸 보면 확실히 수면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
그것은 몸이 회복된다는 신호이자 삶의 리듬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는 증거였다. 그 안도감으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 나는 안다. 좋은 잠은 단지 피로를 푸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 동안 쌓인 감정과 긴장을 풀어내고 몸과 마음이 다시 균형을 되찾는 회복의 시간이라는 것을.
오늘도 가볍게 몸을 풀고 암막 커튼을 치고, 가족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 뒤 잠자리로 향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나를 돌보는 하루가 저물어간다.
*수면 습관은 이렇게 실천했다.
-암막 커튼은 필수
방 안을 완전히 어둡게, 멜라토닌은 어두울수록 잘 분비되기 때문에 작은 불빛 하나까지도 차단하기
-전자기기 불빛 없애기
핸드폰은 무음으로 설정하고 아침까지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기.
-숙면을 위한 침실 온도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기.
복부에만 전기 온열기를 가장 낮은 단계로 켜두면 몸이 금세 풀어졌고, 덕분에 잠이 쉽게 찾아왔다.
-10시~11시에 잠자리에 들기
대부분 밤 10시 전후로(늦어도 11시) 잠자리에 들기.
일정한 취침 시간은 수면의 질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