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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생애 첫 아르바이트, 성공적

by ligdow


고속도로 휴게소 내 주유소 사무실 안,

왼손에는 뿌리는 왁스를, 오른손에는 걸레를 들고 서 있다. 시선은 창밖에 고정되어 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차가 들어온다. 재빠르게 뛰어 운전석으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잠시 창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겨울이라 주유 금액을 말한 후 창문을 닫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는 00케미칼에서 나온 아르바이트 학생인데요, 이 제품을 판매하는 중이에요. 비가 내릴 때 백미러에 뿌려만 주시면 물방울이 맺히지 않고 흘러내려서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되고요, 보닛에도 뿌리고 이렇게 닦아만 주시면 코팅이 돼서 반짝반짝 윤기가 나죠.

보세요~ 이 제품이 미끄러지는 거 보이시죠."

(주유하는 동안 이 멘트를 하면서 빠르게 양손을 움직여 백미러를 닦고 보닛을 닦으며 제품의 성능을 선보였다)


손님 1: 아, 그래? 그거 얼만데?

손님 2: 됐어. 안 사. 그런 거 많아.

손님 3: 야야, 그걸 누가 사겠냐? 됐고, 백미러나 양쪽 닦아줘.

손님 4: 야, 더럽게 어딜 만져. 저리 꺼져.


"하나 사시면 6,000원, 두 개 사시면 10,000원에 드려요. 두 개 드릴까요?"


손님 1: 그래. 그냥 두 개 주고, 저쪽도 마저 닦아주고.

손님 2: 한 개만 사고 다음에 또 살게. 학생이 열심히 하니까 사주는 거야. 수고해.

손님 3: 뭐가 그렇게 비싸. 난 필요 없어. 그리고 저쪽도 닦아줘야지. 한쪽만 닦으면 더 지저분하잖아. 빨리 닦아줘 가야 하니까.


그렇다. 나의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주유소에서 차량용 뿌리는 왁스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맞은 겨울방학,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라 설렘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방학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교차로와 벼룩시장을 집어 들고 아르바이트 구인란을 샅샅이 훑었다.


"사무실은 00 오피스텔 00호, 주유소(주유하는 일은 아님)에서 근무, 근무 날짜는 자유, 본인 능력에 따라 월급 책정" 그 순간 본인 능력에 꽂혀 들뜬 마음으로 바로 사무실에 찾아갔다.


매일 아침마다 근무 배정을 받은 주유소에서 차량용 왁스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보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는 안도와 열심히 하면 등록금을 모을 수 있다는 기대로 들떠 있었다.


드디어 내 생애 첫 아르바이트의 첫날. 근무지는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내 주유소였다. 처음 보는 20대 초반 남녀들이 봉고차에 올라타 있었고, 나 역시 그들 사이에 끼어 한 시간 가량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행선 휴게소에 세 명이 내리고 나와 남학생 두 명은 상행선 주유소에 내렸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여름방학 때 일해 본 경험이 있다며 자신들이 판매할 때 곁에서 잘 지켜보라고 했다.


“우리 셋이 동갑이네. 너는 오늘 처음이니까 판매는 어려울 거야. 첫날은 긴장되니까 그냥 우리가 하는 거 보고 멘트만 외워. 뭐, 다음 날부터 안 나오는 친구들도 있더라. 근데 해보면 은근히 재밌어.”


낯선 일 한가운데 서서 두려움이 앞섰다. 사무실에서는 따로 교육조차 없었지만, 결국 선배들에게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경력자였고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줘서 나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고속도로 주유소답게 차량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두 학생은 능숙하게 차를 향해 달려 나갔다. 제품을 팔면 얼굴에 금세 환한 웃음이 번졌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는 괜히 못 본 척 덤덤한 얼굴로 걸어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곧 내 차례가 올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은 하루 종일 널뛰기를 해댔고, ‘나도 한번 팔아볼까, 저 차에 내가 달려가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오후 3시, 결국 ‘에라 모르겠다, 아님 말고다!’

왼손에는 제품을, 오른손에는 걸레를 들고 주유소로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뛰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창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다섯 시간 동안 선배들이 읊어대던 판매 멘트와 백미러, 보닛을 닦는 동작이 나도 모르게 제법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니 조금씩 익숙해지는 느낌이었다.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효과였을까, 첫 차 운전자 덕분에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 첫 판매가 성공했다.

“학생, 이왕이면 두 개 줘요. 깨끗이 닦아줘서 고맙고.”

“오늘 저 처음 일하는 건데요, 첫 구매 고객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남학생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야, 너 뭐냐? 우리가 말렸는데도 해보겠다고 나가더니 너 정말 신기록 세웠어. 그것도 첫날! 이런 사람 없었던 것 같은데, 사무실에서 완전 좋아하겠다.”


그날 나는 두 시간 동안 무려 30개나 판매했다.


수익 계산은 이랬다.

-판매 1개당 1,500원 수익

-판매 30개에 보너스 10,000원 추가

-6,000원에 팔면 1,000원은 추가 보너스

-사무실에는 개당 5,000원씩 납부


예를 들어,

*1개씩 30개를 팔면 1,500*30=45,000원

1,000원*30=30,000원 & 보너스 10,000원

총 수입=85,000원

*2개씩 30개를 팔면 45,000원&보너스 10,000원

총수입=55,000원

(그당시 카페 알바는 시간당 2,000원 정도였으니 제법 큰 돈을 버는 일이었다)


봉고차 안은 난리였다. 나만의 판매 전략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두 남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우리한테 아주 잘 배운 건 맞네. 근데 너 겉모습과는 다르게 깡다구가 있나보다.“


그 후 나는 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며 매일 수많은 차량을 마주쳤다. 기본 30개, 평균 40개, 많을 때는 50개까지 판매했다. 첫날 함께 일했던 남학생은 내가 이렇게 많이 팔 수 있었던 이유가 순수한 이미지와 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가끔은 비싼 고급차나 외제차 운전자가 욕을 내뱉기도 했지만, 나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음 차로 달려가는 일이 두려웠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일을 하는 목적과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평일에 시내 주유소에 배정되면 차량이 많지 않아 비교적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판매는 거의 없었지만(평균 5개), 하루 정도는 쉬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사무실과 연결된 주유소인 만큼 근무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판매와 상관없이 모든 차량을 꼼꼼히 닦아주고 주유를 돕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난 1월 중순, 매출이 좋은 아르바이트생 4명을 선발해 대전으로 파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목원대 근처 하숙집을 잡아주고, 지정된 주유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 인사를 시켰다. 새로 맡게 될 곳, 낯선 도시와 주유소를 마주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러운 식사를 챙겨주셨다. 지하방 자취생이었던 나로서는 매일 집밥을 먹는 셈이라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기분 좋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그리고 조금은 성장한 나 자신. 모든 것이 신기하고 설렘으로 가득찼다.


한두 살 차이의 네 명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오빠가 봉고차를 운전했다. 자칭 ‘차량용 왁스 판매의 달인’들은 두 명씩 나뉘어 정읍과 익산 주유소로 이동해 능숙하게 일을 해내고, 저녁 7시쯤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일했던 소녀가장 언니와 오빠, 그리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두 살 어린 동생은 이미 반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며 제법 돈을 벌었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서툴지만, 그들에게 배우면서 나만의 판매 노하우를 조금씩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2월 중순까지 약 5주 동안 우리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내가 쉬면 누군가는 혼자 일을 해야 하니, 서로의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무언의 팀워크가 작용한 것이다. 춥고 눈이 많이 내려도 봉고차는 어김없이 도로를 달렸고, 서로 웃고 떠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눈길과 한기를 뚫고 함께 일하면서 우정을 쌓아갔다.


내 생일날 아침,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미역국과 불고기가 올려진 밥상을 차려주셨다. 전날 저녁에 동료들이 미역과 소고기를 사다 드리며 생일상을 부탁했다고 했다. 눈물 섞인 미역국을 먹으며 느꼈던 그날의 감사와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저녁에는 내 생일 겸, 대전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는 첫 회식을 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노래방에서는 노래마다 떼창을 부르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는 동료들 덕분에, 하루의 피로와 긴장은 어느새 따뜻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바뀌었다.


사무실에서는 내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여름방학에도 꼭 오라고 권했지만, 나는 농사일을 하러 집에 가야 한다고 공손히 거절했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목표를 훌쩍 넘어섰고 세상 경험까지 모든 면에서 값진 시간이 되었다.


추위와 피로 속에서도 매일 최선을 다했던 나 자신과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힘든 시간조차 어쩌면 성장의 과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과 이유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어린 눈에도 기특하고 멋져 보였다. 함께했던 이들의 성실함과 따뜻한 격려 덕분에, 하루를 끝낼 때마다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나, 등록금 벌었어. 몇 달치 생활비도 벌었어.” 하루 종일 차량 사이를 뛰어다니고, 때로는 욕설도 듣고 힘들게 일했던 나날을 떠올리며 전화를 걸었다. 벅찬 기쁨과 함께 나만의 성취감과 뿌듯함이 가슴 속에서 물밀듯 밀려왔다.


매일 부딪히고 배우며 내 능력을 확인한 시간들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앞으로 마주할 어떤 도전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추위와 피로 속에서 땀 흘리며 배운 것,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느낀 감사함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일해 등록금을 벌었다는 성취감까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힘을 직접 경험한 신나고 소중한 날들이었다.






이번 주 남편 휴가를 맞아 가족 여행을 떠났다.

내 컨디션 때문에 휴게소마다 들러 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만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다 중간에 머문 곳이 익산 미륵사지 휴게소였다. 비록 그때의 그 장소는 아니겠지만 ‘익산’이라는 이름을 30년 만에 다시 마주하니 반가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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