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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패션의 현실

오래된 질문에 다시 답해보기

by 다다정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월요일 밤. 원래 정리해 두었던 브런치 연재 목차가 있었지만, 최근 앓고 난 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마다 기록해두는 일이

어쩌면 더 본질적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특히 오늘의 이 주제는, 오랜 시간 나에겐 ‘당연한 이야기’였기에.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어느 순간 간과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 우연히 링크드인에서 내가 존경하는 국내의 한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님의 글을 읽었다.

“빠르게 소비되고 폐기되는 선형 경제 모델 속에서, 한국의 지속가능 패션은 유럽보다 10년 정도 뒤처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혁신적인 친환경 소재가 한국 내에서는 여전히 매우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인장을 원료로 한 비건 가죽 사례를 공유해 주셨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했고, 동시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나 또한 그러한 한국을 떠나서 지속가능한 패션 브랜드가 어떻게 운영되는 지 배우려고 미국 패션 디자인 학사 취득 후 영국으로 떠났으니 말이다. 어느덧 5년 이상 지속가능한 패션을 공부하고 연구해 온 나는, '비건 패션 = 친환경'이라는 공식과 지속가능한 원단에 대한 관대함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꾸준히 주변 사람들에게 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그 사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변화가 있진 않았는지,

최근 자료를 다시 찾아가며 팩트 체크를 더했다.






비건 패션, 정말 이로울까?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다행히도 이미 알고 지내던 친구들 중 다수가 비건이었고, 마트나 식당에서도 비건 옵션이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게 제공되었다. 덕분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비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유연한 채식주의자(Flexitarian)에 더 가깝다. 나는 "동물복지와 환경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라고 믿기에, 영국에서 지낸 지난 4년 동안 고기를 사서 먹은 적은 없지만, 누군가 나눠준 음식은 감사히 남기지 않고 먹는다.


나는 비건 식단은 이롭다고 믿지만 비건 패션은 전반적으로 이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비건 패션'은 동물성 소재를 배제한 윤리적 선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사용되는 소재들이 반드시 환경 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건 가죽이다. '비건 가죽'은 실제 가죽이 아닌, 합성 섬유로 만든 소재인데, 대부분 폴리우레탄(PU)이나 PVC 기반의 플라스틱이다.




@da.dajeong | Charity Shop (기부가게) 에서 구매한 합성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츠



이러한 합성 가죽은 짧은 수명을 갖고 쉽게 버려지며, 폐기 시 환경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몇 번 신고 달아버린 이 부츠를 꾸준히 신고 다닐 것이다.) 특히 폴리우레탄은 석유 기반의 화학물질로 제조되며, 연소 시 유해가스를 방출한다. 피부 접촉이나 호흡기로의 흡입은 신경계 장애, 간 손상,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 있다.


@Desserto | 선인장이 들어간 비건 합성 가죽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선인장, 사과, 파인애플 등 식물성 원료를 일부 사용한 '식물 기반 비건 가죽'이 등장했지만, 이 역시 다수가 내구성을 더하기 위해 폴리우레탄과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선인장 가죽으로 알려진 Desserto는 표준 소재 기준으로, 코팅층에 선인장 33%와 폴리우레탄(PU) 67%가 사용되며, 직물 뒷면에는 폴리에스터 55%와 면(cotton) 45%가 혼합된 소재가 사용된다.)


그리고 자연 섬유와 합성 섬유가 결합된 형태는 재활용은 현재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단일소재의 합성섬유보다 더 분해와 기계적 재활용(Mechanocal Recycling)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활용 과정 자체가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와 비용을 사용하고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즉, 이러한 비건 가죽은 완전한 생분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비건 가죽’은 ‘지속가능한 신소재’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와 디자이너에게 정당성을 제공하고, 시장에서도 잘 팔려나간다. 나 역시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열정적으로 비건 가죽을 찾았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회사는 베지터블 태닝 가죽을 사용하는 브랜드였지만, 나는 비건 옹호자로서 비건 레더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리고 한 달간 열심히 비건 가죽 소싱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다양한 비건 가죽을 찾을 수 있었다. 합성섬유가 섞이지 않은 바이오 소재 기반의 가죽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버섯 가죽(Mylo™), 코코넛 가죽 등이 있지만, 움직임이 많은 옷에는 부적합했다. 코르크 가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엔 천연이지만 실제로는 합성 소재와 본딩 되어 있고, 여기에 쓰이는 화학 접착제 역시 완전히 친환경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처럼 소재의 '겉모습'만으로 친환경성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물론 지속가능한 혁신 소재 자체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지속가능한 소재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우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도 함께 인지할 필요가 있다.


@the TômTex lab | 새우 껍질로 만들어진 가죽


석사 과정 중 지속가능한 소재를 주제로 한 과제에서 나는 베트남에서 버려지는 새우 껍질을 활용한 바이오 기반 소재를 찾기도 했고 (링크), 나의 동기 Ella는 레스토랑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해 비건 가죽 앞치마를 제작했다. (다만 내구성이 매우 낮아 캔버스 원단에 본딩 하여 형태를 유지했으며, 물과 열에 약해 실제 조리용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컨셉 작품으로 제작된 결과물이었다.)



@LCFLONDON | 동기 Ella의 최종 석사 프로젝트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비건 가죽 앞치마

이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한 대체 가죽 소재들은 실험적이고 지속가능성 면에서 흥미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아직은 대부분이 실험실(Lab-scale) 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상용화나 실사용 내구성 측면에서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지금 상용화 기준에서 가장 윤리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가죽은 여전히 베지터블 태닝 가죽(Vegetable Tanned Leather)이다. 이는 식물에서 얻은 천연 탄닌을 이용해 화학 약품 없이 무두질하며, 보통 식품 산업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베지터블 태닝 가죽은 크롬이나 폴리우레탄을 사용하지 않아 인체와 환경에 안전하며, 생분해가 가능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유의 멋이 살아나는 소재다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하며, 물에 닿으면 흔적이 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는 추가적인 동물 사육이 아닌 부산물 활용이라는 점에서 ‘동물복지’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죽이기에 내구성은 물론 합성섬유나 합성섬유가 섞인 식물 기반 비건 가죽과 달리 버려져서 땅에 가더라도 생분해가 된다.



@AP Photo/Misper Apawu | 가나로 버려진 패션 쓰레기 더미 위의 소


우리는 종종 '비건 패션’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쉽게 죄책감을 덜어낸다.

하지만 정말 동물과 지구를 위한 행동이라면, 그 실질적인 전 과정을 들여다보고, 장기적인 시야로 접근해야 한다.


이미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버려진 패션 쓰레기 속에서,

동물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해 버려진 의류를 먹고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동물복지를 위해 비건 패션을 옹호하지만,
그것이 정말 동물을 위한 선택일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비건’과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만으로 패션 생산과 소비를 정당화하기에 앞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폐기물의 흐름과 환경적 영향을 직시해야 한다.




@ABCnet/Linton Besser in Ghana



참고 문헌

Bucher, M. (2024) 'Vegan Leather Guide 2: Coated Materials', Melina Bucher, 17 April. Available at: https://melinabucher.com/blogs/stories/vegan-leather-guide-2


Chen, J., Luo, Y., & Liu, K. (2021). Toxicological impacts of polyurethane materials in textile and fashion industries. Environmental Pollution, 270, 116247.


Choudhury, K., Tsianou, M., & Alexandridis, P. (2024). Recycling of Blended Fabrics for a Circular Economy of Textiles: Separation of Cotton, Polyester, and Elastane Fibers. Sustainability, 16(14), 6206. https://doi.org/10.3390/su16146206


Mustafa, M.A., Noyon, M.A.R., Uddin, M.E. & Islam, R. (2024) 'Sustainable leather tanning with Pontederia crassipes tannin: A promising eco-friendly alternative', Cleaner Engineering and Technology, 18, 1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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