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F의 Climate Advocate로 활동하다. (2)
앞서 말했듯, 나는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의 Climate Advocate(기후 옹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박사과정 지원 중이기에, 값비싼 Graduate Visa (졸업 비자)는 과감히 포기했는데 나의 학생비자가 4월 6일부로 만료되면 법적으로 유급 근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있었다. 원래는 Climate Advocate 활동이 7월까지 근로계약이 되어 있었고, 지구의 날을 위한 Earth Week 이벤트 총괄을 맡고 있었기에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Climate Advocate Lead인 Eve는 내게 비자 만료 전 미리 급여를 받고 참여하기를 제안했고, 나는 학생비자 만료 전 출국 후, ETA 방문자 비자로 다시 입국했다. 이 결정과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지만, 지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영국에서 쌓아온 따뜻한 관계들 - 기꺼이 짐을 맡아주고, 머물 공간을 내어준 이들 덕분에 큰 힘이 되었다.
이번 지구의 날 행사는 내가 학생이 아닌 ‘방문자’의 신분으로 준비한 첫 이벤트였다.
우리는 Circular LCF와 Earth to LCF, 두 개의 행사를 기획했다.
Climate Advocate 2025 Earth Week Event (1)
Circular LCF : 순환 LCF
자본주의의 물질적인 가치를 버리고 나눔과 순환성을 위한 지구의 날 행사
Circular LCF는 한국의 ‘다시 입다 연구소’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이 행사의 핵심 취지는 정주연 대표님의 말처럼 자본주의적 물질 가치 너머, 지역사회와의 ‘나눔’을 통해 순환경제를 실천해 보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티셔츠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재킷을 가져갈 수 있는 식의 교환 시스템을 마련했다. 단순한 ‘중고품 나눔’을 넘어, 패션의 가치 기준을 재정의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입다 연구소는 직접 의류교환 파티를 열 수 있도록 21% 파티 툴킷을 제공하고 있으며 툴킷은 이 링크 를 통하여 다운로드할 수 있다.)
나는 영국 패션학교라는 공간적 특성을 반영해, 의류뿐 아니라 원단도 함께 교환할 수 있도록 기획했고. ‘다시입다연구소’의 철학의 영감을 받아, 패션의 가치가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다시 정의될 수 있도록 메시지를 담아 의류교환을 위한 아이템 택과 교환 티켓을 디자인하여 제작했다.
의류교환을 위한 택은 다시입다연구소의 택을 영어로 변환하였고
의류 교환 티켓은 이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전하고 싶은 순환 경제를 위한 3R을 슬로건을 담았다.
Pactice borrowing and sharing items : 물건을 빌리고 공유하는 연습하기
Repair instead of replace : 새로운 것을 구매하기보다는 수선하기
Rethink of the items you already have :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시 생각하기
Climate Advocate 팀원인 Ernest는 Circular LCF의 짧은 옷장 실태 조사를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준비했고, 우리는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방문자들에게 나눠줄 작은 선물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로 일하며 모아두었던 자투리 원단, 부자재, 샘플들을 꺼내어 ‘제로 웨이스트 지구 키링’ 제작 워크숍을 기획했다. 폐기 시 매립되거나 소각될 수 있었던 재료들이었기에, 오랫동안 보관해 온 것들이기도 했다. 키링은 안쪽을 남은 조각들로 채울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팀원들이 함께 만들 수 있도록 가이드 일러스트도 제작했다. 모두 함께 50개의 키링을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오랜만에 손을 써서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엔 텍스트 기반의 학문적 리서치에 몰두해 왔기에, 이 작업은 감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정서적으로도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
런던예술대는 총 6개의 대학이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다. 각 캠퍼스에서는 지구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렸고, 우리는 점심시간 인파가 많은 학식당이 있는 10층 스페이스에서 3회의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행사 전, 모든 팀원은 세 벌의 옷이나 원단을 준비하기로 했고, 나 역시 Vinted(영국의 당근마켓 같은 플랫폼)에 판매용으로 올렸던 4년간 나의 여정을 함께 했던 폴로 니트 탑과 데님 스커트를, 그리고 학교에서 수거한 사용되지 않은 쉬폰 원단을 가져왔다.
모든 팀원이 무언가를 가져온 반면, 함께 행사를 기획한 Ernest는 결국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그의 옷은 대부분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가 아이템이라 쉽게 내놓기 어렵다고 했다. 단순한 금전적 가치뿐 아니라 감정적 내구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모님의 옷이라도 가져오겠다”라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 이벤트 날까지 빈손이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의 사고방식은 이 행사를 ‘무형의 교환가치’보다는 여전히 ‘금전적 가치’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만든 것일까. 같은 기후 옹호자조차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일반인에게는 더 큰 심리적 장벽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남았다. 또한 다른 팀원들과 나 역시 대부분, ’ 판매를 고려했으나, 팔리지 않은 ‘ 옷들을 가져왔다. 결국 우리도 완전히 물질적 가치를 초월하지는 못한 셈이다. 순환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의 작용과 물질에 대한 가치 판단을 요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행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Circular LCF 테스트 런에서 방문자들은 교환된 옷에 관심을 보였지만, 직접 옷을 가져온 경우는 드물었다. 일부는 옷을 구매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고, 단순히 우리가 제공한 음료나 공간의 분위기에 이끌려 온 이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흥미를 보였지만, 실제로 참여하기까지는 심리적 허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열린 두 번째 이벤트에서는 옷을 직접 가져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우리는 참여자들에게 준비한 아이템 태그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부탁했고, 설문조사와 의류 수선도 함께 진행했다. 다소 분주하긴 했지만,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순환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 새 옷을 사기 전에, 이렇게 함께 나누고 순환할 수 있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Climate Advocate 2025 Earth Week Event (2)
Earth to LCF
또 하나의 이벤트는 기후 옹호자 팀 멤버인 Beau와 Ciana가 기획한 상호작용 전시 Earth to LCF였다.
‘외계인’이라는 상상적 주제를 통해, 방문자들이 지구의 환경 문제를 낯설고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도록 설계된 전시였다.
Earth to LCF 전시의 입장 시, 자신의 지구 이름과 이름의 의미 그리고 방문자들은 스스로 외계인이 되어 새로운 이름을 정하며, ‘지구에 방문’하게 된다.
첫 번째 스테이션에서는 그들이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공유하도록 했고, 우리는 현재 기후 위기로 인해 해당 지역이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 뒤, 그 마음이 어떤지를 물었다.
두 번째 스테이션에서는 다양한 원단 스크랩을 소개하고, 각 원단이 사용 후 지구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설명했다.
동시에 평소 익숙하지 않았던 의복 관리 기호들도 함께 공유했다. 사람들은 직접 천을 만져보며, 무심코 구매한 옷들이 분해되지 않고 지구에 남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했다. 그리고 그 옷들을 오래 입기 위해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도 함께 했다.
마지막 스테이션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2025년에 발생한 해수면 상승 및 자연재해 이미지들을 활용했다. 방문자들은 이 이미지들을 골라 준비된 템플릿 위에 콜라주 하며, 앞으로 다가올 기후 위기에 대비하는 ‘생존형 의복’을 상상하고 디자인했다.
나는 생존형 의복을 디자인하는 대신, 이미지를 콜라주 하여, 해수면이 계속 상승할 경우 결국 물에 잠긴다는 서사를 시각화했다.
적절한 대비 없이 위기를 지나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런던컬리지오브패션이 여러 캠퍼스를 통합하며 대규모 인원이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 역시 행사에 대한 홍보를 다각도로 시도하였다. 그러나 Earth Week 기간 중 하루 2시간씩만 운영되는 제한된 시간 탓에 기대만큼 높은 참여율을 끌어내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험은 지구를 위한 지속가능한 실천이 패션 교육기관 내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직접 체감해 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특히 모두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지구의 날을 기념하는 지속가능한 패션 행사를 기획하여 실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고, 이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Earth Week 행사가 모두 끝난 후 우리는 LCF 스태프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6월에 이번 행사는 우리 학과의 석사 졸업작품 전시가 열렸던 LCF East Bank 1층에 위치한 Wolfson Gallery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다. 오픈 스페이스이기에 외부 방문객들도 참여할 수 있어 더 많은 이들과 이 경험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며 더욱 탄탄하게 준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지구의 날 행사가 탄탄한 방향성과 진정성을 갖고 진행될 수 있도록 큰 영감을 주신 ‘다시입다연구소’ 팀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