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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패션 서밋 DAY 2 : 인사이트

Global Fashion Summit 2025 (3)

by 다다정


Global Fashion Summit DAY 2 (2025.06.04) @da.dajeong


DAY 1이 주로 네트워킹 중심의 일정이었다면, ‘글로벌 패션 서밋’의 밀도는 단연 DAY 2에서 가장 깊이 있게 체감되었다.


올해 글로벌 패션 아젠다(Global Fashion Agenda)가 주최한 2025 글로벌 패션 서밋(Global Fashion Summit)의 주제는 ‘Barriers and Bridges’, 즉 현실적 딜레마(장벽)와 미래적 가능성(다리)였다. 이는 지속 가능한 전환의 여정에서 우리가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직시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함께 질문하는 주제였다.



Global Fashion Summit App @da.dajeong


서밋 전용 앱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프로그램 확인과 세션 예약이 매우 간편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명함을 교환할 수 있어 전체적인 경험이 전문적이고 매끄러웠다. 이런 디테일에서 이 행사의 기획이 얼마나 정교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Federica Marchionni at 2025 Global Fashion Summit @da.dajeong



행사의 주요 순간 중 하나는, 무대 위에 선 Global Fashion Agenda의 창립자 Federica Marchionni의 연설이었다. 솔직히 연설 자체는 다소 평이했고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차분히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현장의 복잡성이나 날것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들였을 수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이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리더십의 무게는 분명 경이롭게 느껴졌다. 산업 구조 안에서 기업과 시민 사회, 정부를 모두 아우르며 이 어젠다를 비영리 단체의 형태로 지속해 온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또한, H&M과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딜레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서포트 크루의 유니폼 또한 H&M에서 제작되었다. @da.dajeong



완전히 모순 없는 이상을 고집하기보다, 거대 브랜드들이 변화에 참여해야 구조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현실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모색하는 태도와 균형 잡힌 실천력을 추구하는 것이 이 서밋이 가진 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Global Fashion Summit 2025 DAY 2 @da.dajeong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덴마크 여왕의 등장 역시, 창립자의 연설 후 별다른 인사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난 탓에 큰 인상을 남기진 않았다. 오히려 이 상징적인 순간보다도, 내가 더 오래 기억하게 될 장면은 Action Stage에서 만난 서밋에 방문자들과의 대화들이었다.



@da.dajeong | @afifaaah94

각자의 맥락과 현장을 가진 패션 산업 종사자들과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실질적 해답을 모색하는 시간. 그것은 단순한 컨퍼런스 이상의 의미를 가진 순간이었다.


전 세계 이해관계자들과 활동가들이 각자의 현실과 과제를 공유하고, 함께 ‘넘을 수 있는 다리’를 찾는 실천의 장이었던 DAY 2 - 그날 내 마음에 오래 남을 패널들의 인사이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Tracking Progress: Operationalising Circularity (진행 상황 추적: 순환성 운영)


@da.dajeong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나중에 덧붙이는 것이 아닌, 비즈니스모델에 처음부터 내재되어야 한다.”

Krishna Manda | VP Corporate Sustainability at Lenzing Group 크리슈나 만다 | Lenzing 그룹 지속가능성 부문 부사장

그의 발언은 명료했다. 단지 이미지 개선이나 마케팅 수단으로 기능하는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일부로 작동하는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사실 이 세션은 대기업 스폰서들이 참여하는 세션이라 처음엔 큰 기대 없이 들었다. 그 덕분에 그의 발언이 더욱 진심으로 다가왔다. 다른 패널들이 브랜드 홍보에 집중하는 인상을 주었던 반면, 크리슈나 만다의 말에는 현장의 무게와 진정성을 실었다. 나는 과거 바우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렌징(Lenzing) 원단을 자주 사용했기에, 이 그룹이 얼마나 지속가능성에 진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발표가 끝난 뒤 뒷좌석의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내가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고, 나는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의 발표에 깊이 공감한 점을 전한 뒤, 이렇게 질문했다. “렌징처럼 대규모 텍스타일 기업이 리사이클링과 재생 소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건 정말 고무적입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 주문형 생산(On-demand production)’ 도입이 가능할까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나의 질문에 응답했다. “지금 당장은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꼭 답변하겠다. “

짧은 순간이었지만, 즉흥적인 답변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중시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메시지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Jobs with Dignity : 존엄성을 가진 직업



@da.dajeong



“방글라데시의 의류 노동자 최저임금(Minimum Wasge)은 월 133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생계임금(living wage)은 그 두 배 이상이어야 합니다.”

Kalpona Akter | Executive Director at Bangladesh Centre for Worker Solidarity (BCWS) 칼포나 악터 | 방글라데시 노동연대센터 대표


그녀는 패스트 패션모델이 가져온 현실을 단호하게 끄집어냈다. 라나 플라자 붕괴 이후,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인권 개선과 공정한 임금 지급을 약속하며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말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불평등으로 가득하다. 방글라데시 내 임금이 되면 바로 집세와 생계비가 함께 치솟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하루 12시간을 일하고도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운 환경은 여전히 노동자의 존엄성을 위배해 왔다.


그녀는 생계임금 (Living Wage)이란 단순히 생존이 아닌, 자녀 교육과 미래 설계가 가능한 삶의 조건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만 보여주는 해결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브랜드들이 단순히 “임금 인상”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제조업체 및 공급자와의 실질적인 대화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노동 문제를 지속 가능성 논의의 ‘주변부’로 밀어내는 산업 내 관행에 대해 강한 메시지였다.





Going Deep: Raw Material Connections : 깊이 들여다본 원자재의 연결고리


@da.dajeong


“우리는 브랜드 ‘가치(value)’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할 뿐이다.”

Sébastien Kopp | Co-founder and Creative Director of VEJA 세바스티앙 코프 (VEJA 공동창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겉치레의 말도, 미사여구도 없었다. 그는 굉장히 솔직했고 유쾌했다. 오직 ‘실행’이 중심에 있었다. VEJA는 광고를 하지 않고 따로 외부 투자를 받지 않는다. 다수 브랜드들이 마케팅에 전체 예산의 60% 이상을 사용하는 반면, 이들은 제품과 사람에 예산을 투자한다.



성장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적은 소재와 소수의 디자인을 통해 더 명료한 방향을 추구한다. 이 브랜드는 ‘가치’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보다, 실천을 통해 그들의 가치를 보여준다. 말보다 실천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Beyond Fashion Categories : 패션 카테고리를 넘어서



이 세션은 개인적으로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무대 중앙에 앉은 H&M 그룹의 지속가능성 리더 Leyla Ertur는, 지속가능성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저렴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구현할 수 있다는 그녀의 발언은 일견 매력적이었다.


@da.dajeong


이 자신감 넘치는 지속가능성의 메시지는, H&M이 2022년 미국에서 그린워싱(greenwashing) 혐의로 집단 소송에 직면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뉴욕 소비자 Chelsea Commodore는 H&M의 ‘Conscious Choice’ 제품군이 실제보다 더 지속가능한 것처럼 소비자를 오도했다며 기만광고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는: H&M이 제품에 표시한 환경 점수(Higg MSI) 수치가 과장됐으며, “친환경”, “지속가능” 같은 표현이 실질적 근거 없이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핵심이었다. 일부 제품은 “물 사용량 20% 절감”이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론 오히려 물 사용량이 더 높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Quartz 보도, 2022). 이 소송은 법적 판단 이전에 미국 미주리 연방 법원에서 기각(dismissed)되었지만, 그 파장은 컸다. H&M은 이후 관련 제품 정보에서 Higg MSI 수치를 웹사이트에서 삭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즉, 법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투명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충분히 제기된 셈이다.


또한 옷이 저렴하다는 것은—앞서 Kalpona Akter가 지적했듯—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아무리 지속 가능한 원단을 사용한 옷이라 해도, 그 생산이 과잉과 소비의 흐름 속에 묻힌다면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실현될 수 없다.



@da.dajeong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간다면, 2030년의 패션 산업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Omoyemi Akerele | Founder and CEO at Lagos Fashion Week and Style House 오모예미 아케렐레 | 라고스 패션위크 및 스타일하우스파일즈 창립자


Leyla Ertur와 달리 Omoyemi Akerele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기술이나 소비자 신념에만 기대지 않고, 공동체와 돌봄(care)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꺼냈다.


Omoyemi Akerele가 제안한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과잉생산과 과소비로 환경적/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에서의 형평성 확보

• 브랜드, 정부, 지역 공동체 간의 공동 창조(co-creation)를 통한 시스템 전환

• 패션을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자립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

• 실제 사용자의 필요에 맞추고 수명을 고려한 디자인을 통해 과잉 생산을 줄이는 방향


이러한 제안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의식과도 깊이 맞닿아 있었다. 특히 공동체 기반 창의성과 책임 있는 실천을 중시하는 나의 프로젝트 DADA와 철학적으로도 연결되었다. 지속가능성은 기술이나 트렌드가 아닌, 공급망·노동·디자인 철학의 구조적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캐치프레이즈나 혁신 기술이 아니라, 책임 있는 실천과 관계 회복이다.



반면, Leyla Ertur는 자신을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겠다”라고 소개하며, 마치 Omoyemi의 발언에 즉각 반박하듯 무례하게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 소비자 행동의 변화에 기대어 낙관적인 미래를 그렸지만, 그 접근은 산업이 안고 있는 노동 착취와 과잉 생산, 환경적 비용을 근본적으로 외면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특히 “2030년의 패션은 긍정적일 것이다”라는 단언은,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위험한 낙관주의처럼 들렸다.


기술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것이 사회적 맥락과 윤리적 책임을 배제한 채 이야기될 때, 기술은 방향을 잃는다. 지속가능성은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이며,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션이 끝난 뒤,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Omoyemi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고, 그녀는 따뜻한 포옹으로 화답해 주었다. 그 순간, Leyla Ertur는 내 시야 속에서 조용히 투명해졌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비판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The Rise of Timeless Fashion : 타임레스 패션의 떠오름


@da.dajeong


“40년을 일해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

Eileen Fisher | Founder of EILEEN FISHER 아이린 피셔 (아이린 피셔 창립자)


아이린 피셔는 단순히 오랜 경력을 지닌 브랜드 창립자가 아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실천하는, 진정한 ‘슬로우 패션’의 실천가다. 사전 소비 폐기물(pre-consumer waste)을 예술 작품이나 인테리어 소재로 전환하고, 재생 시스템(regenerative systems)을 실험하는 등 그녀는 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전 세계 의류의 약 75%가 소각되거나 매립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는 단순한 재활용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역 공동체와 함께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실험의 장으로 ‘아이린 피셔 재단(Eileen Fisher Foundation)’을 설립했다. 그녀는 지속가능한 패션이 단순히 기술적 혁신이나 소재 개발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진정한 전환은 지역과 사람, 그리고 공동체를 중심에 둘 때 가능하다는 것이 그녀의 확고한 철학이다.



@da.dajeong


이날 들은 이야기들은 지속가능성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패션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큰 용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산업, 그리고 지구와 사람을 중심에 둔 구조. 그 방향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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