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Fashion Summit 2025 (2)
운 좋게도, 3교대 중 오전조(7:30–13:00)에 배정되어 3일 내내 일찍 근무를 마칠 수 있었다.
서밋 첫날 아침, 주요 업무는 DR 센터 현장에서의 행사 셋업이었다.
DAY 1은 네트워킹 중심 일정이었기에, 우리 서포트 크루는 준비 작업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그 덕에 오전조 동료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현장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오전조에 비교적 많은 인원이 배치되어 활동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활동이 끝나고 같이 오전조였던 인도네시아에서 온 Afifah와 네덜란드에서 온 Eke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자전거를 대여해 여행을 갔고 우리는 각자 할 일들이 있기에 카페에 가기로 했다.
코워킹을 명목으로 모였지만,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과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Afifah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피크닉을 하며 이야기를 더 나누기 위해 킹스가든으로 갔다.
그녀는 건축가 출신으로, 과거에는 대기업에서 대형 쇼핑몰을 설계하는 일등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체감하면서 극심한 번아웃을 겪었고, 원래부터 인테리어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텍스타일 순환과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 Afifah는 유럽 내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관련 석사 과정을 밟으며, 동시에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소비 전(pre-consumer) 단계에서 발생하는 섬유 폐기물을 활용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특히 지역 장인들과 협업해 의자나 가구와 같은 오브제를 만든다고 했다.
그녀의 여정에 깊이 공감하고 영감을 받으면서도,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가 사용하는 소재들과 재사용성 (Recyclability)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녀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제품의 구조에는 여전히 스틸과 같은 새로운 소재가 일부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을 완전히 바꾸는 건 어렵지만, 덜 나쁘게 만들 수는 있어. 그리고 경제적 지속가능성도 중요하잖아.”
나의 질문은 뜻하지 않게 그녀에게 방어적으로 받아들여진 듯했고, 나는 곧이어 내 고민을 나누었다. 나는 지금, 브랜드를 직접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이 시스템 전체를 연구할 것인지 사이에서 깊이 고민 중이다. 그 고민의 바탕에는, 결국 내가 속한 구조에 대해 책임 있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
“지속가능하다는 이름 아래, 우리는 정말 자원을 ‘덜’ 쓰고 있는 걸까? 혹시 윤리적인 서사로 그저 정당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반복되어 온 의문이기도 하다.
내 생각을 경청하던 Afifah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업을 해야지! 왜 가짜 사업을 하려고 해?”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녀의 논리는 그 현실 속에서 분명한 타당성을 지닌다.
나 역시 지금껏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많은 시도를 해왔고, 그러한 실천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하는 일이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결과(consequences)에 대해 책임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도 함께 자리 잡았다.
비슷한 가치관과 이상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답을 모색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소중하다.
모든 문제에 통하는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고, 나만의 논리 안에 갇히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 되어준다.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내 고민을 비추어, 비판적 사고의 틀 안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점검하게 만든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연구하면서, 나는 산업 시스템과 나 사이에 놓인 간극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사람이 되었다.
지속가능성은 단지 친환경적인 재료나 윤리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구조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