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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날 : 코펜하겐에서의 롤러코스터

Global Fashion Summit 2025 (1)

by 다다정


글로벌 패션 아젠다 Global Fashion Agenda는 지속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받는 비영리단체이다. (https://globalfashionagenda.org)
글로벌 패션 서밋 Global Fashion Summit은 글로벌 패션 아젠다가 주최하는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연례 포럼이다. 글로벌 브랜드, 디자이너, 정책 결정자, 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지속가능성과 순환성, 윤리적 생산 등 패션 산업이 직면한 핵심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협력하는 자리이다. (https://globalfashionsummit.com)


올해 초 Global Fashion Agenda의 Next Gen Assembly를 지원한 계기로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Global Fashion Summit 2025의 Support Crew (자원봉사자)로 선발되었다. 나는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일부러 3일 일찍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들과 직접 교류하며, 그들의 인사이트를 듣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다. 이번 서밋 참여는 단순한 경험을 넘어, 내가 추구하는 변화의 지향점이 국제적 담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자, 그 변화의 접점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글로벌 패션 서밋 브리핑을 하루 앞둔 6월의 첫날 아침, Climate Advocate 동료이자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함께 뽑힌 Ernest와 그의 친구들의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런던에서 코펜하겐에 도착하자마자, 자원봉사 목적으로 왔다는 이유만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안내 없이 전해진 이 소식은, 준비에 한창이던 우리 모두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행사 담당자는 “15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했지만, 몇 시간 뒤 “법이 제정되어 EU 시민이 아니면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이 전달되었다. 결국 공항에서 입국을 거절당한 친구들은 다음 날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새로 끊고, 공항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나는 파리에서 입국해 별다른 보더 체크 없이 무사히 들어왔지만, 만약 런던에서 출국했다면 나 역시 같은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단체 채팅방은 곧 혼란과 불안으로 뒤덮였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이들은 모두 자비로 경비를 부담하고, 시간을 들여 코펜하겐에 왔다. 각자의 노력과 순수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단지 유럽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준비가 무력화된다는 현실은 허무했다.


나 역시 오직 서밋에 참여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의지 하나로 두 번째로 찾은 코펜하겐이었다. 만약 이런 리스크가 사전에 안내되었다면, 박사 인터뷰를 마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곧장 공항으로 향하진 않았을 것이다.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삶이 무너질 만큼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이미 코펜하겐에 있었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맞이한 서밋 브리핑이 있던 다음 날 아침, 날씨는 예보와 달리 맑았다. 예정했던 일정을 잠시 내려놓고, 햇살 아래 거리로 나섰다. 킹스가든의 성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고, 시내 곳곳의 공원을 걸었다. 한참을 걷는 동안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 집중했다.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King’s Garden in Copenhagen - Homemade Open Sandwich smørrebrød @da.dajeong



그리고 브리핑 몇 시간 전,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논유럽 시민도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공지가 올라왔다. GFA의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 COO)가 덴마크 이민국과 경찰 측과 직접 협의한 끝에, 문제는 해결되었고 모든 국적의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병 주고 약 주는’ 듯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가능했던 일이 다시 가능해졌을 뿐인데, 감정 소모는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이 문제는 주말에 발생했고, 행사팀 일부만 근무하던 시점이라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2025.06.02 @da.dajeong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탄 마음으로 브리핑 장소로 향하던 길에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다. 한껏 손질한 머리는 순식간에 젖어버렸고, 메인 입구를 찾지 못해 잠시 당황했지만, 다행히 우산을 들고 있던 독일에서 온 자원봉사자 Marie를 만나 함께 입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날 저녁 브리핑에 무사히 참석하게 되었다.


비자 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 미팅도 함께 진행되었다. @da.dajeong

브리핑 현장의 분위기는 다소 어색했다. 며칠 전 큰 사고가 있었기에 모두가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서포트 크루 리드’를 맡았던 Kate는, 이 전에 있던 일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번 활동에 무려 160명이 넘는 지원자가 있었고, 모든 지원서를 직접 읽고 신중히 선발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때문인지,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흥미로웠으며 덴마크 - 코펜하겐에서 개최됨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사람은 영국에서 ‘리메이크(Remake)’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Rikke 뿐이었다. 리케는 오히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기쁘다고 했다.



(GFA에서 제공한 할인 쿠폰을 이용할 수 있었던 덴마크 햄버거 맛집 Jagger - 나는 할루미 버거 세트를 주문했는데, 꽤 훌륭한 선택이었다.) @da.dajeong



브리핑이 끝난 뒤,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모든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엔 시간이 부족했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온 참가자들과 짧지만 인상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은, 런던에서 온 Maddy였다. 그녀는 영국의 재생에너지 기반 비영리기관에서 일했으며, 한국 정부와도 3년간 협업한 경험이 있었다. 나 또한 런던에서 일하고 공부한 경험이 있어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녀가 준비 중인 ‘의류 교환 기반 이커머스 스타트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만남은 호주 멜버른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Georgia였다. 현재는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며 The Swapshop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지속가능한 패션을 공부하거나, 관련 업계에 몸담고 있거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평일에 진행되는 서밋임을 고려하면, 대부분 일정에 유연함을 가진 이직 준비 중이거나 트랜지션(transition)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를 경험하며 ‘변수’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큰 사건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얼마나 큰 에너지가 소진되고, 감정의 곡선을 타게 되는지 절실히 느꼈다.


외국인으로서, 유럽에 어느덧 4년을 지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나의 신념을 실천하고, 그 속에서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결정이었다. 계획적인 성향을 가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구조를 반복해서 마주할 때면 때때로 무력감을 느낀다.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남지 않도록—받아들이되,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모든 걸 통제할 순 없지만, 그 안에서 나의 선택과 태도만큼은 분명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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