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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패션 서밋 DAY 3 : 현실의 재구성

Global Fashion Summit 2025 (4)

by 다다정


Global Fashion Summit 2025의 마지막 날인 6월 5일은 공교롭게도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자원의 한계와 환경 파괴는 전 세계적으로 현실이 되었다.

이제 패션을 포함한 모든 산업과 기업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특히 자원 낭비가 심하고 환경적·사회적으로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패션 산업은 근본적인 전환이 절실하다.

글로벌 패션 서밋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패션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실현 가능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Barriers and Bridges 장벽과 다리. 지금 이 시점에서 이것만큼 더 적절한 키워드가 있을까.


이날 메인 홀에서 진행된 주요 토크는 DAY 2만큼의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오후에 액션 스테이지에서 열린 세션 중 ‘Reimagining Product Realities(제품 현실의 재구성)’ 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Global Fashion Summit App @da.dajeong



레이첼 아서(Rachel Arthur)20250625 @da.dajeong


이 세션의 진행자는 레이첼 아서(Rachel Arthur).
유엔환경계획(UNEP)의 지속가능 패션 옹호(Advocacy) 리드로 활동하며, 순환경제 전환과 패션 산업 내 커뮤니케이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내가 인턴십에 합격했다면 함께 일하게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자, 오랜 시간 존경해 온 지속가능 패션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세션이 끝난 후,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선발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말을 전하며,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 보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녀가 진행한 세션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연사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Action)입니다.”
— 야이라 아그보파(Yayra Agbofah) | 창립자, The Revival Earth Organization

야이라 아그보파(Yayra Agbofah) 20250605 @da.dajeong


야이라는 패션 산업의 과잉 생산과 소비가 단지 환경을 파괴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의 문화와 경제까지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강렬한 사례로 전달했다.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 The Revival은 가나의 칸타만토(Kantamanto) 시장에 버려진 중고 의류를 지역 장인들과 함께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는 단순한 업사이클링을 넘어, 지역의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공동체 경제를 되살리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세션이 끝난 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감사인사를 전하며, 진행 중인 DADA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다다 프로젝트는 대량생산을 지양하고, 지역성과 유연성을 중심에 둔 새로운 맞춤형 생산 모델로, 가나의 전통 맞춤복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내가 참고한 논문은 2013년에 발표된 것이었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 전통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직접 물어보았다.

이미 ‘쓰레기 식민주의(waste colonialism)’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가나이지만, 그럼에도 이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기를 바랐다.


야이라 아그보파(Yayra Agbofah) 20250605 @da.dajeong


그는 현재 가나의 전통 맞춤복 산업이 중고 의류의 대량 수입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쓰레기 식민주의(Waste Colonialism)’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지역 문화와 정체성, 그리고 경제의 기반까지 무너뜨리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과잉생산의 폐해가 지역성과 문화의 해체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대변했다.







“우리는 환경을 설명하기보다,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 브란 보렌(Brand Boren) | Norrøna 지속가능성 책임자(CSO), 혁신 디렉터


브란 보렌(Brand Boren) 20250605 @da.dajeong


이번 서밋을 통해 처음으로 노르웨이 아웃도어 브랜드 Norrøna(노로나)를 알게 되었다.

2019년, Norrøna는 기존 노르웨이 여행사를 인수해 ‘Norrøna Adventure’라는 독립 여행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광고가 아닌 고객들이 직접 자연을 체험하며 브랜드의 철학을 느끼도록 설계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노로나는 “아웃도어 의류는 오래 사용할수록 가치가 깊어진다”는 철학 아래 업사이클·수선 중심의 디자인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남미의 케추아(Quechua) 장인들과 협력해 제작한 플리스 재킷은 전통 퀼트 기법과 패턴을 수작업으로 적용해, 단순한 친환경 제품을 넘어 문화적 예술 오브제로 거듭시킨다.



노로나 X 케추아 장인들과 협력해 제작한 플리스 재킷 20250605 @da.dajeong


Norrøna에게 순환성이란 단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가 맺는 관계와 책임의 방식이다.

그들의 실천은 단순한 친환경 경영을 넘어, 브랜드 철학이 삶의 방식(Lifestyle)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진정성은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어떤 언어로, 어떤 구조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다시금 묻는다.







나이키(Nike)와의 모순적인 만남
골나즈 아르민(Golnaz Armin), 나이키 지속가능성 부문 부사장

골나즈 아르민(Golnaz Armin) 20200605 @da.dajeong



이번 세션에서 골나즈 아르민(Golnaz Armin)은 나이키의 Re-Creation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생산 공정시 발생한 남은 원단(deadstock)을 지역 디자이너들과 함께 재해석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로, 순환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지향한다.


그녀는 자원 낭비에 대한 문제를 단순한 수치나 효율성의 언어로 접근하지 않고 이야기 중심의 서사와 지역 사회 기반의 실천으로 풀어나갔다. 특히, 디자이너 교육의 중요성과 협업을 통해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구체화하여 실행 가능한 현실로 옮겨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션 말미, 골나즈는 Re-Creation 프로그램이 지역 사회의 창작자(creatives)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지향한다고 밝혔고 한 관중은 질문을 던졌다.

“The Revival은 나이키가 아직 찾고 있는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함께 협업하면 어떨까요?”

이 발언에 청중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골나즈 또한 잠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키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모순을 느낀다. 나이키는 지난 수년간 지속가능성 전략을 강조해 왔으며, 2013년에는 런던예술대학교 지속가능패션센터(Centre for Sustaianle Fashion)와 협력해 디자이너들이 지속가능한 소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Making 앱’을 개발한 바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이키는 여전히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인 의류 생산 공장들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잉 생산 구조 또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에 H&M과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들과의 근본적인 유사성을 드러낸다.


[열악한 노동 환경 및 인권 문제]
-2024년 10월 캄보디아 Y&W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저임금, 긴 노동시간, 잦은 실신 사례가 보고되었다.
-ProPublica의 분석에 따르면, 해당 공장의 최저임금 대비 임금 수준은 매우 낮으며, 최고 숙련 노동자까지도 최소임금의 15–25%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2024년 9월, 투자자들은 노동자 권리 보장과 강제노동·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구속력 있는 합의체에 Nike가 참여하도록 요구했으나, 나이키 이사회는 이를 거부했다.

참고문헌
-Reuters (2024) Extreme heat puts garment factory workers at risk, study shows. Available at: https://www.reuters.com/business/extreme-heat-puts-garment-factory-workers-risk-study-shows-2024-12-08
​-Reuters (2024) Nike shareholders vote against proposal on workers’ rights. Available at: https://www.reuters.com/business/retail-consumer/nike-shareholders-vote-against-proposal-workers-rights-2024-09-10​​
Reuters (2024) Investor pressure on Nike builds over garment workers’ rights. Available at: https://www.reuters.com/business/retail-consumer/investor-pressure-nike-builds-over-garment-workers-rights-2024-09-05​​


Reimaging Product Realities @da.dajeong


앞선 세션에서 야이라(Yayra)가 지적했듯, 과잉 생산과 과소비는 이미 가나(Ghana)와 같은 국가들에 “쓰레기 식민주의(waste colonialism)“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Re-Creation과 같은 프로젝트는 분명 긍정적인 시도지만, 생산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전환 없이 지속되는 ‘지속가능성’은 결국 문제를 ‘카펫 아래로 감추는(under the carpet)’ 방식에 불과할 수 있다.

글로벌 패션 서밋 앱을 통해 Q&A 세션에 질문을 남길 수 있었고 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했다.



규모 (Scale) 라는 말은 넣지도 않았는데 정말 너무하다! @da.dajeong

“과잉생산으로 인해 지구 남반구의 지형까지 변형되고 있다면, 기업들은 왜 여전히 Made-to-Order(온디맨드 맞춤 생산) 시스템 도입을 주저하는 걸까?”

그러나 내 질문은 요약되어 특정 패널 (Brad)에게 아래처럼 전달되었다.

“과잉생산을 줄이기 위해 주문 제작(Made-to-Order) 시스템이 대규모로 실현 가능한 방식일까요?”


이 질문은 특정 패널인 브레드에게 전달되었고, 이에 대해 그는 완전한 온디맨드 생산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생산 과정에서 후반부에 컬러를 결정할 수 있는 유연성만 있어도 과잉 생산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나중 단계에서 생산지를 결정하거나 적절한 공장과 연결하여 유통까지 조율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레이첼은 “그런 방식은 나이키가 이미 경험이 있지 않나요?”라고 질문했고, 골나즈는 이를 긍정하며 Nike ID (현 Nike by You)와 같은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이 서비스는 소비자가 정해진 소재 팔레트와 다양한 컬러 옵션 내에서 제품을 직접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녀는 “이런 시스템이 아직까지는 완전한 온디맨드 생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적층 제조(3D 프린팅) 같은 미래 제조 기술을 통해, 특히 운동선수의 퍼포먼스에 맞춘 신발을 개인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개인의 발을 스캔하고, 그에 맞춰 성능을 최적화한 신발을 프린트하는 방식”은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지금부터 상상하고 설계해야 할 현실적인 방향“이라는 것이다.


브래드는 이에 덧붙여 “핏(fit)”, 즉 개개인에게 정확히 맞는 착용감이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더 잘 맞는 제품은 더 오래 사용되며,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생산과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에 대한 패널의 답변 @da.dajeong


현대 맞춤형 주문형 생산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 중인 나로서는,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만으로도 이러한 방식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검증해 왔다. 결국 관건은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규모 (Scale)로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그렇기에 더 정밀한 개념인 ‘Made-to-Measure’를 전제로 질문하지 않은 것이 더욱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주요 산업의 리더들과 직접적으로 질문을 주고받고, 변화의 여지를 논의할 수 있었다는 경험은 크나큰 의미였다. 현재 패션시스템의 문제의식과 제안이 단순한 비판을 넘어, 실질적인 대화와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럭셔리와 지속가능성, 그리고 ‘돌봄’은 함께 갈 수 있다.”
— 패트릭 맥도웰(Patrick McDowell), 영국 패션 디자이너
패트릭 맥도웰(Patrick McDowell) 20250605 @da.dajeong


2025년 5월, 그는 웨일스 왕세자비로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상(Queen Elizabeth II Award for British Design)’을 수상했다.
그 공로는 지속가능성, 순환성, 그리고 장인정신에 대한 깊은 헌신이었다.


이날 오전, 그는 ‘The Business of Craft’라는 주제로 자신의 철학과 실천을 공유했다.


그의 브랜드는 대량생산을 지양하고, 맞춤형 제작 방식으로 한정 수량의 옷을 만든다.
이는 단순한 생산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 연결과 돌봄, 그리고 장기적 관리를 중심으로 한 철학적 실천이다.

그의 옷은 빠름이 아닌 ‘의도’로 만들어진다.

기다릴 수 있는 옷, 그리고 기다릴 가치가 있는 철학.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진정한 럭셔리다.

패트릭의 브랜드는 예전처럼 현대 사회도 맞춤형 생산으로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서밋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 함께 나눈 고민과 비전은 내게 큰 에너지를 안겨주었다.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 에세이를 마치며, 나를 이 여정에 함께하게 해 준 글로벌패션아젠다(Global Fashion Agenda), 그리고 전 세계 각지에서 의미 있는 실천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연결들이 끊기지 않고, 더 나은 패션, 더 나은 지구를 향한 다리가 되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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