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리사이클링 기술, 어디까지 왔을까?
기후 위기 시대,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 과잉 생산과 소비로 지목받는 패션 산업에서는, 다양한 규제와 기술 혁신이 시도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재활용(Recycling)'이 자리 잡고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연구해 온 입장에서, 나는 패션 산업의 재활용(Recycling) 대해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로 바라본다.
재활용(Recycling)은 항상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한 면죄부”가 되는 경우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재활용 섬유(또는 일부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사 제품을 ‘지속 가능하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 항상 리사이클링 소재나 제품들이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패션 산업의 리사이클링,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 리사이클링의 허 와 실
지금 우리가 ‘재활용(Recycling): 리사이클링’이라고 부르는 방식은 하나가 아닌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중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H&M은 리사이클 코튼 티셔츠를 출시하며 자사 제품이 친환경이라고 홍보했다.
이러한 제품들은 기계적 재활용(Mechanical Recycling)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폐의류를 잘게 분쇄해 재생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품질 저하가 크고 대부분은 다운사이클링된다. 그래서 보완을 위해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 섬유를 섞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처럼 자연섬유와 합성섬유가 섞이면 사용 중 (세탁 과정)에서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방출이 되고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또 다른 환경 문제를 낳는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새 자원을 이용하면서 순환이 아닌 잠시 폐섬유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다녀온 글로벌 서밋에 따르면, Re&Up, ONCEMORE와 같은 일부 기업들은 혼방 섬유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상용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화학적 재활용(Chemical Recycling) 방식은 섬유를 분자 수준으로 분해한 뒤, 다시 재합성하는 고도화된 공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여전히 높은 비용, 막대한 에너지 소비, 온실가스 배출, 화학물질 사용 등 여러 환경적 부담을 수반한다. 또한 이러한 기술을 실제 구현한 기업들은 기술적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핵심 공정과 방법을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어, 산업 전반의 투명성이나 기술의 확산 가능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전략을 전문으로 하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Anthesis Group에서 그린 디자인 리드(Green Design Lead)로 활동 중인 Ana Carneiro는 나의 석사 논문 인터뷰 (2024)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텍스타일 폐기물 관리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없어요. 현재 제대로 작동하는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해요.
재활용이라고 해도 실상은 다운사이클링일 뿐이고, 화학적 재활용은 오히려 추가적인 화학 폐기물을 발생시킵니다.
그 외 다른 방식들도 대부분은 폐기물을 새로 만드는 수준이죠.
우리가 지금 가진 기술로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어요.
이건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물론, 리사이클링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 중이다.
특히 아래의 세 가지 방식은 현재 업계에서 주목받는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1. 오픈 루프 재활용(Open-loop Recycling) 패션 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 폐섬유를 원료로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건축 자재나 자동차 내장재 등에 사용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지인들이 자주 공유하는 ‘Fabrick’이라는 브랜드는 폐섬유를 활용해 벽돌이나 가구를 제작하는데, 리서치 결과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폐섬유의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섬유들은 본딩(bonding) 공정을 통해 압착되어 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에 남아 있는 분해 산물이 제품 사용 중에 유해 물질로 방출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 연구 결과는 없지만, 본래 섬유로 다시 복원되지 않는 점에서 순환 패션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2. 클로즈드 루프 재활용 (Closed-loop Recycling) 같은 제품군 내에서 섬유가 계속 재생산되는 이상적인 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폐섬유가 다시 원단으로 재탄생해 동일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둔 고순도의 섬유 생산이 필수이며, 재활용 기술 또한 매우 고도화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현재는 대부분 실험적 단계 거나 고가 브랜드를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다.
3. 바이오 재활용 (Biological/Enzymatic Recycling) 효소나 미생물을 이용해 섬유를 분해하고 재생하는 방식이다. 약 2년 전, 런던에서 이와 관련한 프로젝트 인터뷰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 방식은 현재로서는 자연 섬유에 한해서만 가능했다. 아직 초기 연구 단계이며, 적용 가능한 소재와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지만, 리싸이클링을 위한 또 다른 자원을 낭비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리사이클링 기술이 연구되고 발전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과잉 생산을 해도 리사이클링 하면 되잖아'는 식의 무책임한 안도감을 조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Sandin & Peters (2018)는 업사이클링이 단순 리사이클링보다 환경적으로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업사이클링은 폐기물 감소, 탄소 배출 저감, 자원 재사용 등 다양한 환경적 이점을 제공하며, 리사이클링이 가진 낮은 대체율과 청정 생산 공정의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사이클링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현재의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하는) 대량 생산 체계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제품의 퀄리티와 미적 요소에서 제한이 있어 소비자 접근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직접 연구하고 실험하며 몸소 확인하기도 했다.).
결국 업사이클링도 리사이클링도 순환경제의 일부일 뿐이다.
진짜 순환은, 자원만이 아니라 시스템과 인식까지 되돌려야 가능하다.
생태적 복원력, 사회적 책임, 그리고 구조적 전환. 이 모든 것이 함께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친환경하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