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테네에서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사이 (1)

비판적인 생태주의와 Extractivism (추출주의)

by 다다정


Shared Campus Summer School: Critical Ecology 2024 참여기 (1편)



작년 2월 UAL 뉴스레터를 통해 Shared Campus Summer School 프로그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런던예술대학(UAL), 취리히예술대학(ZHdK), 도쿄예술대학, 싱가포르 LASALLE 등 9개 국제 예술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학제적 플랫폼으로, 생태 위기·추출주의·기후 정의와 같은 오늘의 질문을 예술적 실천과 비판적 연구를 통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과정이다.


공동 현장 조사(Fieldwork), 예술 실습, 비판적 글쓰기, 지역 커뮤니티 인터뷰, 그리고 전시형 결과물 제작까지 이어지는 밀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나의 석사 연구 방향과 맞닿아 있기에 지원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짧지 않은 에세이들까지—지원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여름 방학 전 합격 소식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UAL 펀딩도 지원받아 전 세계 예술·디자인·리서치 분야에서 20명 내외만 선발되는 Shared Campus Summer School: Critical Ecology 2024의 일원으로 아테네로 향했다.



Critical Ecology: 아테네에서의 변곡점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아테네—

나에게는 오래된 역사와 휴양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도시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프로그램이 이렇게 깊고 전환적인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참여 전, 내가 품고 있던 질문은 비교적 단순했다.

“예술은 어떻게 생태적 메시지를 더 넓은 대중에게 확장할 수 있을까?”

“추출주의(Extractivism)는 실제로 어떤 형태로 작동하는가?”


그러나 아테네에서 보낸 시간은 이 질문들을 훨씬 넘어섰다.

세계의 구조, 나의 시선,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위치까지 다시 묻게 되는 근본적인 변곡점이 되었다.




추출주의(Extractivism)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 주제는 ‘추출주의(Extractivism)’

한국어 ‘추출’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땅을 파서 뭔가를 캐내는 행위를 떠올리기 쉽지만, Extractivism은 훨씬 더 넓고 깊은 의미를 가진다.


Extractivism은:

• 단순한 자원 채굴이 아니라,

• 자연·노동·문화·토지 등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끝없이 가져다 소비하는 경제·정치 구조이자,

• 이익은 ‘중심부’(글로벌 북·대기업)에 쌓이고

피해는 ‘주변부’ 지역과 커뮤니티에 집중되는 극도로 불균형한 시스템이다.


즉, “땅을 판다” 이상의 구조, 도시의 문화·풍경·관광 자원, 심지어 사람들의 삶과 건강까지 수탈하는 현상을 포괄한다.

대표적인 예는 아테네 시내에는 지역주민들이 살 곳이 없어 노숙자들이 많다 - 왜냐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에어비앤비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알면서도 우리의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마련한 Shared Campus 담당자의 모순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됐다. @da.dajeong


아테네에서 경험한 추출주의의 얼굴


아테네에서 추출주의를 경험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테네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Elefsina 방문이었다.


도착하고 먼저 마주한 해변은 평화로워 보였다.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가족들이 바다에서 놀고 있는 모습은 그저 아름다웠다.


그 따뜻함과 윤슬에 이끌려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려 하자,

지역 커뮤니티를 안내해 주던 자원봉사 가이드가 재빨리 말렸다.

“안 만지는 게 좋아요. 우린 갈 길이 멀었어요.”


이유를 듣지도 못한 채 5km 정도 떨어진 해안으로 이동했고,

우리는 곧 다른 세계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해변’ 뒤에 숨겨진 풍경


따스한 해변을 지나자 맞은편 산은 이미 깎여 나가 황무지가 되어 있었고,

거대한 공장들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우리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카메라를 든 학생들은

“사진 찍는 거 아니냐”며 제지당하기도 했다.


잠시 후, 강한 오일 냄새가 공기를 뒤덮었다.

그리고 해안가에는 버려진 거대한 배 한 척이 있었다.


외국 자본가가 소유했던 배였고,

사고로 기름이 새자 그는 배를 그대로 버려둔 채 사라졌다고 했다.

그 오염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리스 정부가 25년째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너무 더워 물에 들어가려는 아이를 말려 우리의 물을 나누어주었다 @da.dajeong


“알아요. 하지만 선택지가 없어요.”


나는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차분하게 말했다.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여름은 해마다 더 뜨거워지고,

아이들도 견디기 힘들어요.

바다가 위험하다는 걸 알아도,

몸을 식힐 수 있는 곳이 여기에요. 선택지가 없어요.”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오염된 바다를 알고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삶.

추출주의의 폭력성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닿는지,

그 현실을 그 순간의 바람과 냄새, 공기의 온도로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읽던 개념이 아닌 ‘살아 있는 현실’


그날 나는 추출주의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 외국 자본이 토지와 산업을 장악하고

• 관광 수익은 지역에 돌아오지 않으며

• 권력은 늘 중심부로 이동하고

• 기후 위기의 그늘은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 결국 취약한 커뮤니티가 가장 큰 피해를 겪는 구조.


누군가의 일상이며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인간의 자아(Ego)와 관점의 차이


아테네의 산업지대, 폐공장, 농지, 항만, 그리고 고대 유적지까지—

우리는 실제 ‘추출주의의 지형’을 몸으로 걸으며 관찰하고 기록했다.


매주 오전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그룹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과정들 @da.dajeong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가, 연구자, 디자이너들과 현장에서 토론하며

인간이 가진 ‘관점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대적 특권일 수 있다는 사실,

•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과 힘이 공존하는 이유,

• 구조적 문제 속에서는 개인의 고통이 더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이 경험은 단순한 지식 교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에 가까웠다.





불편함과 모순을 직면하는 법


프로그램 전반을 관통한 감정은

익숙한 것들이 흔들릴 때 찾아오는 불편함,

그리고 현실의 층위를 들여다볼수록 드러나는 모순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중요했다.

그 불편함은 나를 다른 질문으로 이끌었고,

그 질문들은 나의 연구와 삶의 방향을 다시 확장시켰다.


환경 문제는 단순한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연구, 나의 직업적 관심, 내가 살아가는 방식까지

모두 다시 질문하게 했다.


@da.dajeong


2편에서는, 이 경험이 어떻게 예술적 실천과 팀 프로젝트로 이어졌는지 이어서 이야기하려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