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Project (1) 영국 석사 연구 제안서 쓰는 법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LCF)의 Fashion Futures MA는 ‘미래 패션’을 상상하는 실험실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패션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근본부터 다시 묻는 과정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을 넘어, 패션 시스템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연구자적 관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Fashion Futures는 다른 석사과정과 달리, 입학 단계부터 Research Proposal 제출을 요구되어 학문적 연구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연구제안서를 썼어야 했다.
다행히 그 당시 플랫메이트였던 Phoebe가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석사를 막 마친 터라 많은 조언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연구 제안서를 처음부터 혼자 구조화해야 했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직접 경험한 석사 연구제안서 (Research Proposal) 작성 과정을 정리한 이 글이 비슷한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참고 자료가 되길 바란다.
LCF Fashion Futures의 Research Proposal 기본 구조
LCF Fashion Futures에서 요구하는 Research Proposal은 2,500 단어 분량의 마스터 프로젝트 설계 문서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보다 어떤 연구를, 왜,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명확히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학교에서 제시한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Introduction(Research Question · Problem Framing · Context)
Introduction은 연구 제안서의 출발점으로, 먼저 연구 질문(Research Question)을 명확히 제시하고,
그 질문이 어떤 사회적·산업적·환경적 맥락에서 등장했는지를 설명한다.
나의 경우 단순한 왜 이 문제가 지금 중요한지,
패션 산업 구조 안에서 어떤 긴장과 한계를 드러내는지
그리고 연구자로서 내가 이 문제에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함께 서술하며,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구조화하는 과정이었다.
2) Research Aim and Objectives 연구 목표와 세부 목표
“이 연구를 통해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를 분명히 하는 단계다. Research Aim은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목표이며, Objectives는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수행할 연구 과제들이다.
연구 목표와 세부 목표가 명확할수록, 이후의 문헌연구와 방법론, 그리고 최종 산출물까지 일관된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다.
3) Literature Review 문헌 연구 Research Context의 확장과 Research Gap 도출
문헌 연구는 Introduction에서 설정한 연구 질문과 배경이 기존 연구와 산업 담론 속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인용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연구 배경과 맥락(Rationale & Context)을 확장하면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연구 갭(Research Gap)을 도출하는 핵심 단계라고 할 수 있다.
4) Research Methodology and Methods 방법론과 연구 수행 방식
앞서 설정한 연구 목표와 질문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어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수집하고 분석할 것인지 인터뷰, 관찰, 실험, 프로토타입 제작 등 연구 질문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야 하며, 각 방법이 왜 필요한지도 함께 설득해야 한다.
LCF에서는 방법론이 이론적인 관점보다 실제로 수행 가능한가를 중요하게 본다. 윤리적 고려와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 역시 이 단계에서 함께 다뤄진다.
5) Projected Outcomes 예상 산출물
Proposal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결과물의 방향성과 형태다.
나의 경우 시스템 프레임워크, 디지털 도구, 프로토타입, 리포트 등을 예상 산출물로 제시하여 연구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6) Conclusion 연구 제안서의 요약과 정리
Conclusion에서는 앞서 제시한 연구 질문, 목표, 방법론, 산출물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이 연구가 마스터 프로젝트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확인한다.
7) 연구 일정 계획 Gantt Chart
연구 일정 계획은 대부분의 석사·박사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된다. 석사 준비 당시 Phoebe가 가장 강조했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Gantt Chart는 아이디어의 수준이 아니라, 이 연구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실제로 연구 일정과 단계를 시각적으로 정리하면서 프로젝트의 현실성과 완성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 점은 석사 과정 인터뷰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고, 학사 학위 없이 준학사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 선발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Research Proposal에서 흔히 발생하는 실수
Research Proposal 유닛에서는 개인 작업뿐 아니라, 동기들의 연구제안서를 그룹별로 발표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주제와 접근 방식을 접할 수 있었고, 동시에 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보였다.
그중 특히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실수는 다음과 같다.
1) ‘프로젝트 소개’로 끝나는 경우
무엇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만,
“왜 이 연구가 지금 필요한지”를 끝까지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Research Proposal이 답해야 하는 질문은 단순히
“내가 무엇을 만들겠다”가 아니다. 이 연구는 왜 수행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기존 연구나 산업 담론 속에서 어떤 빈칸을 채우는가에 대한 답이다.
2) 연구 범위를 지나치게 크게 설정하는 경우
이 부분은 내가 가장 크게 어려움을 겪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 Research Proposal 유닛에서 최종적으로 B+를 받는데 그 이유 역시 이 지점과 맞닿아 있었다.
내 연구의 출발점은 ‘글로벌 순환 패션 시스템’이었고, 교수님의 첫 피드백에서 바로 제동이 걸렸다.
특히 박사과정보다 훨씬 짧은 석사과정의 연구에서는,
지역, 시간, 이해관계자, 기술 범위를 얼마나 명확히 한정했는지가 설득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범위를 좁힐수록 연구 질문은 더 또렷해지고, 방법론과 연구 일정 역시 실제로 실행 가능한 형태로 정리된다.
3) 데이터만 나열하고 내러티브가 없는 경우
또 다른 흔한 실수는 데이터와 사례를 많이 제시하면서도, 그것이 연구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Fashion Futures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데이터 -> 의미 -> 인사이트 -> 실천
이 네 단계의 연결이다.
발표 중 교수들이 가장 자주 던지던 질문은 늘 같았다.
“So, what does this mean for your research?”
이 수집한 데이터가 너의 연구에 어떤 의미인 거야?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자료를 제시해도 Proposal의 힘은 약해진다. 데이터는 목적이 아니라, 연구를 앞으로 밀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Research Proposal을 쓰며 배운 점
1) 하고 싶은 것을 줄이는 일이 가장 어렵다
처음에는 순환경제, AI, 소재 분석, 지역 시스템 등 가능한 모든 관심사를 포함하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연구는 많은 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핵심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정의하느냐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지만, 그 선택을 통해 연구의 방향성이 선명해졌다.
2) 방법론은 이론이 아닌, ‘실제로 가능한 계획’이다
Proposal에서 방법론은 멋있게 보이는 목록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행해도 무리가 없는 현실적인 로드맵이어야 한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방법론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 현업 디자이너 인터뷰
• 지역 기반 파트너 조사
• 소재 지속가능성 실험
과정을 단순화했을 때 프로젝트의 밀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이 경험을 통해 “어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Proposal 작성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3) 연구 질문은 고정된 문장이 아니라 계속 다듬어지는 과정이다
처음 설정한 연구 질문은 너무 넓고 추상적이었다.
초안을 쓰고, 자료를 다시 찾고, 문제 구조를 다시 그리면서 연구 질문은 여러 번 수정되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가 함께 선명해졌다. 연구 제안서 작성은 연구의 시작이자, 스스로의 사고방식을 정리하는 단계였다.
Research Proposal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1. 연구 질문이 명확하면 프로젝트의 절반은 완성된 것이다.
2. 문헌연구는 양이 아니라 흐름이다.
3. 방법론은 반드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설계해야 한다.
4. 연구제안서는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논리는 명확해야 한다.
5. 마스터 프로젝트는 정답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이다.
패션의 미래를 연구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여정을 설계하는 일이다. Research Proposal은 그 여정의 출발점이며, 마스터 프로젝트는 그 설계를 실제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글이 지속가능한 패션과 연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Master Project 인 DADA-Framework - Holistic Framework와 개발 과정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