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처럼

by 글이로


우두커니 창문을 바라본다.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가 서 있다. 한때는 잎이 무성했고,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소리를 냈을 텐데,

지금은 가지 사이로 공기만 조용히 흐른다. 마른 잎사귀 하나가 힘없이 떨어진다. 소리도 없다.

떨어지는 순간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듯, 그저 사라진다.


문득 삶이 떠오른다.

우리네 삶도 저 나무와 다르지 않다. 젊을 때는 푸르름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나서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았고, 말해야 할 때는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 곧 존재의 증명이라고 믿었다.

잎이 많을수록, 소리가 클수록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듯, 사람에게도 겨울은 온다.

잎이 떨어진다고 해서 나무가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제야 나무는 나무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군더더기 없는 몸으로 서서, 스스로 지탱하는 힘만 남긴다.

바람에 흔들리되 휘둘리지 않고, 눈이 쌓여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제 자리를 지킨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일인지도 모른다.

앞에 나서지 않는다고 물러난 것이 아니고, 말을 줄인다고 생각을 멈춘 것도 아니다.

다만, 꼭 필요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구분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말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침묵이 무기력함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이다.

조용히 지내는 게 사리에 맞다는 말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한 바퀴 돌아본 사람이 갖게 되는 태도에 가깝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마른 잎처럼,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이별과 양보가 생긴다.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들이 많아진다.

비워낼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가벼워질수록 삶은 단단해진다.


창밖의 겨울나무는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계절을 견뎌온 시간과, 다시 올 봄을 기다리는 여유가 담겨 있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요란하지 않게,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게. 나서지 않아도 존재하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한 삶으로.




이전 02화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