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홈런은 아직

by 글이로


나는 가끔 조용한 밤에 혼자 앉아 내 인생을 떠올린다. 그러면 늘 야구장이 먼저 떠오른다.

관중은 많지 않고, 조명은 살짝 어둡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방망이를 쥐고 헬멧을 눌러쓴 채, 마음속으로 혼잣 말을 한다.

“이번엔 진짜 홈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인생에서 공은 제법 잘 맞는 편이다. 소리도 좋다.

타격음만 들으면 중계진이 벌써 소리를 높일 것 같다. 그런데 공은 담장을 넘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정말 딱 그만큼 모자라게 떨어진다. 그리고 심판의 손이 돌아간다.

'3루타'. 그 순간 나는 허리를 짚고 숨을 몰아쉰다.

“그래… 또 3루타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에 인생을 뒤집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험을 보면 아슬아슬하게 붙었고, 일을 하면 칭찬과 잔소리를 반씩 들었다.

잘했다는 말 뒤에는 늘 “조금만 더 했으면”이라는 말이 따라왔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성실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답답하다고 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매번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주변을 보면 홈런 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시작부터 다르다.

공이 방망이에 닿자마자 담장을 훌쩍 넘긴다. 그들은 여유롭게 베이스를 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면서도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헬멧을 고쳐 쓴다. 아직 내 타석이 끝난 건 아니니까.

3루에 서 있으면 참 묘한 감정이 든다. 홈이 바로 눈앞인데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군가 한 번 더 쳐줘야 한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 기다림이 가끔은 사람을 작게 만든다.

그래도 발밑을 보면, 1루와 2루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다.

살다 보니 알게 된다. 인생에서 홈런은 생각보다 드물다. 대신 3루타는 자주 나온다.

매달 버텨낸 월급날, 큰 탈 없이 지나간 하루, 마음 다치지 않고 넘긴 관계 하나.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니어 보여도, 나에게는 분명한 안타였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홈런만 점수가 되는 건 아니다. 3루타도 점수로 이어진다.

내가 3루에 서 있어야 다음 사람이 편하게 칠 수 있다.

나의 애매한 성공이, 나의 부족한 성취가 누군가에게는 숨 쉴 틈이 된다.

그렇게 이어지는 한 점(點)이 결국 경기를 바꾼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처럼 조급해하지 않는다. 여전히 방망이를 잡고 타석에 서지만,

마음은 조금 느긋해졌다.

“홈런이면 좋고, 아니면 또 어때.”

공이 다시 날아간다. 담장을 넘기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또 달릴 것이고, 헐떡이며 3루에 설 것이다.

내 인생의 홈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한참 뒤 일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나는 계속 경기에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아웃은 아니라는 것.

오늘도 나는 유니폼의 흙을 털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나, 여기까지는 잘 왔다. 그치”


(SBS방송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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