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였다. 밥상에 김치가 없으면 허전하다.
마치 꼭 있어야 할 누군가가 빠진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 예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치를 챙겨 먹는 타입도 아니었고, 오히려 피하는 쪽에 가까웠다.
시다, 짜다, 냄새가 진하다는 이유로 괜히 거리를 뒀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김치가 보이면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간다.
‘김치 좀 더 주세요’란 말을 주저 없이 내뱉는 나를 보며, 가끔 스스로 놀라곤 한다.
그 변화는 어느 날 문득 찾아왔다. 입맛이 바뀐 걸까? 아니면 긴 여행 끝에 돌아온 고향 밥상처럼,
낯익은 무언가가 주는 안도감일까?
그도 아니면, 나도 모르게 익어버린 시간이
슬며시 입맛마저 데려간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든 생각. 나이 탓이 아닐까.
묵은 김치가 맛있어졌다는 건, 나 역시 묵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묵었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왠지 시간이 지나 낡고 쓸모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묵었다는 건, 시간이 그 위에 머물렀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오랜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제맛을 찾은 것, 그게 바로 묵은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 묵은 사람이다.
묵은 김치는 처음엔 단순히 시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속엔 짠맛도, 단맛도, 매운맛도, 쿰쿰한 발효의 향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맛이 어울려 하나의 깊은 맛을 이룬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사람의 삶도 그런 거 아닐까. 겉으론 새금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엔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배어 있고,
시간이 만들어낸 복잡한 층위가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이제 묵은 맛을 아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급하게 넘기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한 조각의 맛에도 오래 머무는 사람처럼 예전의 자극적인 맛에만 끌리지 않고,
속이 편안한 맛을 찾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묵은 사람의 미각일지도 모르겠다.
세상도, 나도, 다 묵었다. 기차도 예전 같지 않고, 거리도 오래된 건물들로 익숙해졌다.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은 빠르게 바뀌지만, 내 눈은 이제 그 빠름보다는 천천히 변해가는 풍경에 더 머문다. 논이 묵고, 밭이 묵듯, 나도 그렇게 한 해 한 해 묵어가는 중이다.
이제는 김치를 보며 웃는다.
갓 담근 김치의 풋풋함도 좋지만, 며칠 지나 국물이 자작해진 김치에서 더 큰 위로를 느낀다.
시간이 스며든 맛, 그건 어쩌면 사람의 말보다 더 정직한 위안이다.
김치 한 조각에 담긴 손맛과 기다림이 입안 가득 퍼질 때, 나는 비로소 시간을 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김치 한 접시를 식탁에 올린다. 어느 날부터 김치는 더 이상 반찬이 아니라 대화 상대가 되었다. 말없이 내 앞에 놓여 있다가, 입에 들어가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제 알겠지?”
묵은 사람에게만 들리는 말이 있다. 묵은 김치처럼, 오래 기다린 끝에야 비로소 귀에 들리는 목소리.
나는 이제 그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김치가 왜 이토록 맛있는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도 왜, 점점 더 묵어가야만 하는지.
묵은 것 속에 깃든 깊이와 여운, 그 맛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나는 묵은 사람이고, 그래서 오늘도 김치를 음미한다. 삶의 맛이, 거기 다 들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