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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이네 Jun 26. 2023

각을 잡다

군대에서는 왜 그렇게 각을 잡으라고 했을까. 그 놈의 각. 인생을 살면서 각을 잡아야할 일들이 생각보다 없는데 군대에 들어가면 아주 사소한 것부터 각을 잡기 시작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포의 모서리를 퐊!

전투복을 관물대 옷걸이에 똑같은 모양으로 퐊!

침상 끝선에 전투화 앞부분을 퐊!

밥 먹을 때 팔 각도를 퐊!

은 아니었고

밥 먹을 때는 다행히 안 건드렸고.


무튼 군복도 각을 맞춰 입어야했고, 베레모 각도 잡아야했고, 그놈의 각각각.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지휘관들이 보기 좋으려고 그렇게 한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중대장 이상 급의 방문이 있다하면 호들각.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각을 잡는 이유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각을 잡는다는 것은 “왜 그렇게 각 잡고 얘기해?” 처럼 진지한 태도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은 단순히 보이기에 좋은 것만은 아니고 그것이 나의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와 ‘내 주변’으로 나눠서 볼 수 있는데, 먼저 ’나’의 관점에서 각을 잡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보려한다.


‘나’를 정리할 수 있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얼굴과 옷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다듬는다거나, 면도를 한다거나, 화장 등을 통해 얼굴을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것은 보이기에도 깔끔하지만, 그런 준비과정과 모습을 통해 우리의 마음가짐도 무의식적으로 정리가 된다.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편안한 츄리닝을 입을 때와 정장을 입고 있을 때의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다를 것이다. 츄리닝을 입고 있을 때는 행동과 마음가짐이 자유롭고 편안하지만 정장을 입고 있을 때는 자세나 태도를 편안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 어디가서 앉아있거나 서 있을 때도 반듯하게 있게 되고, 흐트러진 태도를 의식적으로라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게 된다. 내가 나를 어떻게 가꾸고 입느냐에 따라서 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나’ 이외의 주변의 것들의 각을 잡는 것도 나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는 늘 ‘왜 이불을 개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저녁에 다시 잘텐데 이불을 개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불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은 나의 방을 보면서 내 마음도 “뭐 대충해” 라는 식의 마음이 생겼었다. 아침부터 그런 마음가짐을 먹으니 하루가 다 영향을 받았고 내가 하는 일에도 보이지 않게 영향이 왔던 거 같다. 이런 마인드셋을 고치기 위해 아침에 이불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며 내 주변을 정리하니 조금씩 달라지는 마인드셋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들에서 보면 각을 잡는 행위들이 나의 마음가짐에 보이지 않게 영향을 준다. 내가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듯이,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의 상태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군대와 학교에서 군복과 교복의 각과 매무새를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각과 매무새를 잡음으로서 내 태도와 마음가짐을 잡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여 주어진 본인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물론 의도와는 다르게 다들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기 바빴다... 편한 게 짱이니까.


군복이나 교복의 각을 잡는 것이 이러한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또한 교관이나 선생님들이 옷을 제대로 입으라고 하거나 주변을 정리하라고 혼낼 때도 이런 점들을 염두하고 우리를 혼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랬던 경우도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내가 입는 옷과 주변의 기본적인 것부터가 정돈되지 않았을 때 내 마음도 흐트러졌던 경험들이 있다보니 그때의 일들이 그래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때로는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중에 하나가 각을 잡는 이유였던 거 같다.


여러분은 오늘 무슨 각을 잡는데 집중했는가.

퇴근 각을 보고 있는가?


•Photo by Jozsef Hocza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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